1992년 'LA 4.29폭동'은 아메리칸 드림을 키워가던 미국 한인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보다 1년 전 LA에서는 미국 사회의 인종 갈등 불씨가 된 '로드니 킹 사건'이 있었다. 1991년 3월 LA의 한 고속도로에서 과속주행을 하며 도주하던 흑인 남성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에게 체포되어 곤봉으로 과도하게 구타를 당한 사건이다. 얼마 후 LA에서 '라타샤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15세 흑인 소녀 라타샤가 한인 상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구매하려다가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오해한 상점 주인 두순자 씨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한 것이다.

1992년 4월 29일 로드니 킹 사건 판결에서 가해자 경찰관 4명 중 3명은 무죄, 1명은 재심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에 흑인 사회의 분노가 폭발하여 흑인들이 LA의 법원을 비롯하여 각종 관공서와 언론사를 점거하는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다. 흑인갱단과 폭도들은 점차 코리아타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인 상점 곳곳이 불에 타고 기물이 파손됐다. 한인들은 평생 피와 땀으로 일궈온 결실이 하루아침에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폭동의 여파가 한인 사회로 번진 이유는 코리아타운이 폭동발발 지역과 인접해 있었으며, 로드니 킹 사건과 라타샤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여 한인에 대한 흑인들의 적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LA는 완전한 무정부 상태가 되었으며, 공권력은 부유한 백인 지역을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화재로 많은 상점들이 불탔지만, 화재 신고를 받은 소방관들은 경찰의 보호 없이는 출동할 수 없었다. LA 경찰은 폭동을 진압할 만한 인력이 부족했다. 주방위군 투입이 결정되었으나 탄약 지원 부족으로 폭동이 시작된 지 이틀이 되어서야 겨우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인들은 자체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한인 라디오 방송국들은 비상 방송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자경단을 조직하여 폭도들에 맞섰다. 한인들은 옥상에서 보초를 서며 폭도들의 공격에 대응했다. 그러나 한인 자경단은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위협 사격만 실시하고, 살상은 절대로 금지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사람한테는 총을 쏘지 마라!" 코리아타운이 살인, 방화, 절도 등 폭도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약탈을 당하는 무정부 상태에서 한인 자경단은 살상을 금지하고, 공포탄과 위협 사격으로 코리아타운을 지켰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5월 1일 주방위군이 투입되고, 사건의 피해자 로드니 킹이 기자회견에서 "나는 유색인종들을 사랑한다!"고 호소하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다행히 이때부터 방화와 약탈이 줄어들고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했다. 5월 2일에는 10만 명의 한인들이 거리로 나와서 "Live together!'라는 구호를 외치며, 평화를 요구하는 거리 행진을 벌였다. LA 한인들이 보여준 이런 성숙한 태도가 다문화 시대 인종 갈등 해결의 소중한 열쇠가 된 것이다. "나는 흑인, 황인, 백인이 모두 형제라고 믿습니다." 인권운동가 듀보이스의 말처럼, 흑인, 황인, 백인이 모두 한 형제가 아닌가?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이런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LA 폭동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구촌은 다인종 다민족이 함께 평화로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LA 코리아타운을 지킨 한인 자경단은 "사람한테는 총을 쏘지 마라!"고 하는 고결한 마음으로 한인과 흑인 사이의 적대감을 해소하고, 다인종이 함께 살아가는 평화의 길을 열었다. LA 한인들은 폭동으로 얼룩진 거리를 행진하며 '우리 함께 살아요(Live together)!' 이런 따뜻한 구호로 다인종 지구촌 시대 인류에게 참으로 고귀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유원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