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사진=뉴시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이종선 기자]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지난 10~12일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며 3선 연임에 성공했다. 이집트 국가선거청(NEA)에 따르면 엘시시 대통령은 89.6%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엘시시 대통령은 내년부터 2030년까지 6년 더 집권할 수 있게 됐다. 엘시시 대통령이 처음 집권한 2014년 이래 총 기간은 16년으로 늘어나게 됐다.

엘시시 대통령은 1954년 카이로 알가말리야에서 태어나 1977년 이집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기갑부대 사령관, 이집트 북부 사령관 등의 군 경력을 거쳤다. 1992년에는 영국 합동지휘참모대학을 졸업했고 2006년에는 미국 육군 전쟁대학을 졸업하는 등 서방에서 고등 군사교육을 이수했다. 이후 이집트에서 최연소 국방부 정보국장에 오르고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당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하며 군최고위원회(SCAF)를 구성했을 때 최연소 위원으로 참가했다.

이어 2013년 7월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무르시 당시 대통령을 축출했고 2014년 5월 대통령 선거에서 9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엘시시 정권은 시작됐다.

엘시시 대통령은 무르시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 인사들을 탄압하며 권위주의 통치로 기반을 다지는 한편 콥트교 성탄절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기독교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며 종교적 극단주의를 거부하고자 했다.

2018년 치러진 선거에서도 97%의 득표율을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고, 다음 해에는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시키는 것과 함께 3연임 금지 조항을 완화하며 장기 집권의 틀을 마련했다.

다만 이같이 약 10년 가량 집권하면서 '국가 안정'이라는 명목 하에 이뤄진 반체제 인사 정리와 언론 탄압 등 독재와 인권 탄압을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4년 4월 '무슬림형제단' 소속 628명에 한꺼번에 사형 선고를 내린 바 있으며, 같은 해 12월에도 시위 도중 경찰서를 습격한 188명에 또 다시 사형 선고를 내렸다. 2016년 6월에는 자신을 비판한 레바논 출신 여성 앵커를 추방시키면서 언론 탄압까지 이뤄지자 곳곳에서 엘시시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집트 인권단체 '이집트자유와권리위원회(ECRF)' 사무국장 모하메드 로프티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엘시시는 이집트를 중동의 북한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엘시시 대통령을 향한 높은 지지도와 비판이 양립하는 가운데 이집트에 불어닥친 경제난과 난민수용 문제 등 엘시시 정권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물가가 급등하고 설탕 부족 사태를 겪는 등의 경제 위기를 겪은 이집트는 2022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0억달러의 구제금융 지원을 약속받았으나 군부 중심 경제구조 개편 등의 약속 이행이 미비해 실제 지원액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수도 이전 등 대규모 국책 사업을 강행하면서 경제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집트 상황 속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한 '난민 수용'의 압박이 이어지며 이를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지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웃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전쟁을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전쟁의 기운이 이집트까지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당선 소감에서 "이집트인들은 단순히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하지 않았다"면서 "이 비인도적인 전쟁을 거부하기 위해 투표장에서 긴 줄을 섰다"며 해당 문제를 의식한 듯한 발언을 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는 하젬 오마르 대중인민당 대표가 4.5%의 득표율을 가져가며 2위를 차지했고 파지드 자흐란 사회민주당 대표가 4%로 3위에 올랐다. 압델사나드 야마마 와프드당 대표는 2%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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