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직장인들은 법의 규정에 따라 정년이 되면 퇴임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고령화된 사회에 살게 되면서 직장에서 퇴임한 후 오랜 기간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에게는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영어로는 리타이어(retire)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은퇴란 헌 타이어를 새 타이어로 바꾸어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형석 교수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인생에서 제일 좋고 행복한 나이는 60세에서 75세까지이며, 사람이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60세쯤 돼서 조금 철이 들었고, 75세쯤까지는 성장을 했다고 자평한다. 김 교수는 65세에 정년 퇴임한 후엔 더욱 열심히 일했고, 76세에 제일 좋은 책을 출간하였으며, 99세에는 일간지 두 곳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구약성경에는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떠난 갈렙이 85세가 돼서야 약속의 땅 가나안을 분배받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팔십오 세지만,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여 내 힘이 젊을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전투를 감당할 수 있으니,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십시오." 85세가 된 갈렙이 45년 전 자기 가슴 속에 품었던 비전과 사명을 여전히 확신에 찬 어조로 다시 고백하고 있다. "그곳에 거인족 아낙 사람들이 있고, 그 성읍이 아무리 견고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 내가 반드시 그들을 쫓아낼 것입니다."

1970년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으며 대통령과 공화당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땅콩 농장을 경영하는 농부 출신 지미 카터가 정직과 도덕성을 갖춘 신선한 지도자로 혜성처럼 등장하여,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지미 카터는 온 세계의 뜨거운 관심과 기대 속에서 미국의 39대 대통령에 취임했었다. 그렇지만, 대통령 재임 중 그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정치 경험의 부족으로 재임 기간 내내 의회와 갈등을 빚었고, 미숙한 인사 관리로 백악관 내에서도 분쟁이 잇따랐으며, 1970년대 후반의 혼란스러운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처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에 대한 미흡한 대응으로 지지율이 하락해서 그는 결국 재선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미 카터는 대통령 퇴임 이후의 생애가 더욱 훌륭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백악관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이 퇴임 선물로 지프차를 한 대 준비하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알고 지프차 대신 목공 공구 세트로 바꾸어 달라고 부탁하여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면서 목공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퇴임 이후 '사랑의 집짓기' 등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비공식적인 외교 활동으로 세계 평화를 위한 일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그는 2002년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미 카터를 '최고의 전직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암 투병 중에도 네팔을 방문해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지미 카터는 현재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새해 100세를 맞으며 멋있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세계인에게 따뜻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찬수 목사가 코로나 시기에 미국의 한 요양원에 계시는 98세 어머니를 면회하면서 어머니께서 하신 세 마디의 말씀을 전한다. "네가 보기에 내가 참 초라하지? 근데 나 쉽게 안 죽는다. 네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을 내가 끝까지 지켜볼 거다!" 연로하신 몸으로 24시간 누워 계시며 의식마저 희미해져 가면서도 목회자 어머니의 자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가?

/ 유원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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