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이종주 기자] 새해 벽두부터 에르메스·샤넬·디올 등 명품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섰다. 의류·신발·가방 등이 최고 43%까지 올랐다. 에르메스 샌들 '오란' 중 도마뱀 가죽으로 만든 제품은 기존 245만원에서 352만원으로 치솟아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명품 소비자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는다. 그 중에서도 속된 말로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인 '호갱'이라는 단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저렇게 올려도 사주니까 한국인이 호갱 취급 당하지"라는 식이다.

업체도 따가운 시선을 받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명품 소비자가 호갱이라면 업체는 소비자를 호갱으로 만드는 악덕 기업이다.

가격인상을 이유로 업체를 비난하는 것은 명품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과 무관하지 않다. '기능과 실용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모름지기 사치품을 멀리해야 한다'는 전통적 유교 가치관 말이다.

다만 명품 소비를 기존의 가치관으로 재단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능과 실용성을 이유로 명품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애초에 존재 가치 자체가 기능과 실용성이 아닌 것을 두고 "왜 굳이 비싼 걸 사려 하느냐"는 지적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 뿐이다.

무엇보다 명품은 생필품이 아니다. 쌀이나 밀가루처럼 대체 불가능한 주식(主食)도 아닐뿐더러, 연탄처럼 가격이 오르면 소외계층에게 큰 타격을 주는 재화도 아니다. 명품 가격 인상은 사회 상규에 반하지 않고, 비도덕적 행위로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비(非)생필품인 명품을 생필품처럼 사회가 취급하고 있으니 가격을 올리겠다는 업체가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혹자는 "가격을 올리면 명품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가격을 올리면 피해 보는 소비자는 '생필품 소비자'에 더 가깝다. 야속한 말일지 모르나, 누구나 명품을 걸친다면 그것은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똑같은 에르메스 가방을 멘 사람 30명이 같은 지하철 칸에 서있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이 상황에서 '나는 너보다 돈이 많다'는 메시지를 타인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는가. 30명이 가방을 메면 공산품, 1명이 메면 그때서야 명품이 된다. 이를 바꿔 말하면 가격 인상이 오히려 소비자가 원했던 기대 효용을 충족해줄 수 있고, 소비자 보호 장치로도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대 명품시장으로 성장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특성을 이해하지 않은 채 명품을 취급하는 것이 과연 소비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인지 곱씹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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