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반군 공세 지속, 군사적 위험도 고조
해운사들 수에즈 대신 희망봉으로 우회

11000TEU급 컨테이너선 HMM Blessing 호 사진 = HMM
11000TEU급 컨테이너선 HMM Blessing 호 사진 = HMM

[월요신문=전지환 기자]새해 들어 해상 운임 지수가 급등하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 지역 내 군사적 위험도 고조에 따른 영향으로 해상 운임비 상승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해선 예단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물류 대란 발생에 따른 산업계 악영향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상하이컨테이너 운임지수는 2239.61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과 비교했을 때 약 2배를 뛰어넘은 수치다. 해당 지수는 중국 상하이에서 출항하는 컨테이너선의 항로 운임을 반영한 것으로 글로벌 해상운송 운임 수준 및 해운업황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해상 운임비가 약 두 달 사이 2배 가까이 오른 이유는 글로벌 해운사들이 예멘 후티 반군의 군사적 위협 증가 영향으로 홍해 운항을 포기하고 희망봉으로 뱃머리를 돌렸기 때문이다. 친이란계인 예멘 후티 반군은 지난해 말부터 홍해를 지나가는 상선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운임 지수 증가는 선박들의 이동거리 및 운송기간 증가 때문으로 해운사들이 홍해 대신 희망봉으로 노선을 변경하며, 선박별 운항 거리는 최소 5000㎞에서 최대 9000㎞까지 늘어났고 운항 기간도 약 2주라는 시간이 더 소모되고 있다.

운임비 상승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해선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군에 이어 영국군까지 나서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직접 행동을 경고하고 있으나 반군측이 무력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운임지수 상승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전망이 쉽지 않다"며 "희망봉 노선으로 선박을 추가 투입하면 운임비도 안정화 될 수 있겠지만 기존 선박들의 운항 스케줄을 고려할 때 이 또한 쉽지 않다"고 말했다.

팬데믹 시절보다 공급망 악영향

일각에선 이번 홍해 사태가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글로벌 공급망에 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옥스퍼드대가 운영하는 운송 모니터링 플랫폼 포트워치는 지난 14일 기준 일주일간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유조선 등 상선이 하루 평균 49척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의 70척보다 크게 줄어든 것이며, 지난 2021년 3월 에버기븐호의 좌초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또한 글로벌 선박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 총량) 변화를 측정하는 해상 데이터 분석기업 시인텔리전스는 지난달 셋째주 선복량이 연평균 대비 57% 급감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코로나19가 퍼져나가던 지난 2020년 3월 첫째주보다 감소폭이 큰 것이다.

이 같은 물류 대란에 따라 테슬라와 볼보, 미쉐린은 일부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으며, 이케아와 영국 패션 소매업체 넥스트, 크록스 역시 배송이 지연될 수 있다고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앨런 머피 시인텔리전스 최고경영자(CEO)는 "홍해 위기는 초기 팬데믹 영향보다 훨씬 더 큰 단일 사건"이라며 "홍해 대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항로를 변경함에 따라 운송 시간이 늘어난 것이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픽업하는 선박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일부 완성차 업체들 홍해 사태로 유럽공장 생산 중단 결정

이번 홍해 사태로 인해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겼고 그로 인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테슬라는 성명을 통해 독일 베를린 외곽 지역에 위치한 그륀하이데 공장을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생산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에 대해 테슬라는 후티 반군의 군사적 위협으로 홍해를 통과하지 못해 부품이 부족하다며 다음달 12일부터 공장을 다시 정상 가동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테슬라 측은 공급이 늦어진 부품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테슬라 유럽공장의 생산 중단 결정은 홍해 사태가 유럽 최대 경제국 중 하나인 독일에 타격을 입힌 증거라며, 테슬라는 이번 사태로 생산 차질을 공개한 첫 기업이라고 보도했다.

테슬라의 생산 중단 발표 직후 볼보자동차 역시 다음 주 벨기에 헨트 공장의 자동차 생산을 중단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볼보자동차는 홍해 사태로 인해 기어박스 배송이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원유 공급망 우려

영국의 석유기업 셸(Shell)도 이번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으로 인해 홍해 운항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셸은 홍해를 운항하는 선박이 공격을 받아 대규모 석유 유출 사태가 벌어질 수 있고, 선박 승무원들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셀에 앞서 영국 석유기업인 BP도 지난달 홍해 운항을 일시 중단했으며, 카타르에너지도 같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전 세계 해상 석유 거래의 약 12%가 홍해를 통과하다 보니, 해당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국제유가가 상승의 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와엘 사완 셸 최고경영자(CEO)는 "홍해 지역 혼란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운송 시간이 몇 주 더 걸린 것으로 추측된다"며 "이 사태를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와엘 사완은 "이것은 아직 단기적인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며 "해당 사태가 장기적인 문제가 될지는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커져가는 수출기업 피해

이번 홍해 사태로 삼성전자, LG전자 등 우리 수출기업들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서 유럽 현지 가전 생산공장으로 부품을 조달하는 데 공급망 문제와 단기적인 물류비 인상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는 국내 가전업계의 전체 해상 운송량 중 약 10%가량을 담당하는 주요 항로로도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유럽에서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이카에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LG전자는 이집트와 폴란드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즉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유럽 공장에 필요한 부품을 한국과 다른 동아시아 지역에서 조달하며 이 물량을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선박을 통해 공급한다.

또한 홍해 리스크로 인한 물류비 인상이 현실화되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실적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가전의 경우 물류비가 중간이윤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물류비가 오르는 만큼 가격을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물류비 계약은 통상 분기 말, 반기 말 이뤄지기 때문에 당장 비용이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해운 경기침체 끝날 수 있어

이번 홍해 사태가 산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운임비 상승으로 인해 해운업계에선 득이 될 수 있고,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의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인해 홍해를 우회한 화물 규모를 약 2000억 달러(한화 약 266조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해상운송업체 OL USA 의 최고경영자(CEO)인 앨런 베어는 "더 높은 요율이 2~3주만 더 지속된다면 선사들로서는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추가할 수 있다"며 "또 이것이 3개월에서 6개월 지속된다면 수익은 천천히 2022년 수준에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홍해 사태가 장기간 지속될지 파악할 수 없으며, 팬데믹 이후 구매한 컨테이너선의 공급 과잉 문제도 존재하기 때문에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는 전망도 존재한다.

거점 항만 필요성 증대 

해운업계에서는 이번 홍해 사태로 인해 덴마크 머스크와 독일 하파그로이드의 신규 해운동맹 제미니 협력(Gemini Cooperation)이 제시한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허브 앤 스포크는 각 출발지에서 발생한 물량을 몇 개의 주요 항만으로 모은 뒤, 주요 거점에서 다시 최종 목적지로 배송하는 형태다.

제미니 협력은 허브 앤 포크 전략을 통해 항로를 간결하게 설정하고 돌발 변수에 유연하고 빠르게 대응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제미니 협력은 ▲항로 간의 영향을 최소화 ▲최근 진행중인 홍해 일대의 예멘 후티 반군의 상선 습격 ▲가뭄에 따른 파나마 운하 통행 어려움 등 해운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변수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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