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필수-지역 의료 붕괴.. 증원 우선"
의료계 "필수-지역 의료 유인 위한 지원 방안 우선"

24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제26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24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제26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이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지영 기자]의대 증원에 대한 전공의들의 단체 행동 참여 여부 조사 결과에 유감을 표명하며, 엄정 조치를 예고했던 정부가 지난 24일 열린 '제26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을 상대로 '적정한 의대 증원 규모 의견을 달라'며 의료계 달래기에 나섰다. 정부의 화해 제스처에도 의료계는 의대 증원보다 우선할 사안이 있다며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23일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전협에서 공개한 단체행동 참여 여부 조사 결과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대전협은 지난 21일 55개 수련병원에서 4200여명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에서 응답자의 86%가 의대 증원 강행 시 집단행동 의사를 보이겠다고 답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로서, 정부는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용인할 수 없다"라며 "정부는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필요한 모든 조치를 엄정하게 집행할 계획이다"라 밝혔다.

의료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예고했던 정부는 하루 뒤 열린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언급하기보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의견을 구하며 설득에 설득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정부는 지난 1년간 25차에 걸쳐 의협과 의료현안협의체로 정책패키지를 완성해 가고 있으며, 패키지에는 그간 의료계가 필수의료 기피의 중요한 요인을 꼽아온 의료사고 부담 완화 방안, 필수의료 집중적 수가보상이 있다"며 "이와 병행해 현장 의사 부족이 어느 정도인지 다각도로 확인하고 과학적이고 정교하게 전망해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위해 각 의대가 현재, 향후 투자로 교육 가능한 학생 규모를 파악하고 입학정원 점검반을 운영하며 숫자(의대 정원 확대수)가 실현 가능한 수준인지도 조사했다"라며 "소비자, 시민단체 등 국민 여론과 의료계에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의대 정원 규모와 의견을 요청드렸다"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완화된 입장에도 의료계 측은 여전히 의대 정원 증원은 물론 의대 수요조사 자체에 비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양동호 의협 협상단장(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적정 의사 수가 얼마인지, 이를 위한 적정 의대 정원은 얼마인지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검토해야만 한다"라며 "불확실성에 기반한 오늘의 잘못된 결정으로 10년, 20년, 더 먼 미래에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지역과 꼭 필요한 진료 분야의 의사를 확충할 수 있는 맞춤형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라며 "의협은 의학교육의 질이 담보돼 훌륭한 의사들이 양성될 수 있는 정부 계획과 지원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청하며, 국민 건강과 국가 미래를 위한 올바른 의대 정원 정책이 마련되도록 신중한 판단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2020년,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구로병원 응급실 출입문 앞에 '전공의 파업으로 응급실 진료가 일부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 사진=뉴시스
2020년, 서울 구로구 고려대학교구로병원 응급실 출입문 앞에 '전공의 파업으로 응급실 진료가 일부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 사진=뉴시스

뿌리 깊은 의대 증원 갈등

의료인력 증원 갈등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불거져 나왔다.

1980년대 전국 31개이던 의과대학 수는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며 40개(정원 40명 9개 대학 신설)로 늘었다. 당시 전체 의대 정원 3253명이었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의약분업에 따른 의정 협의 과정에서 정원이 10% 감축됐고 2006년부터는 정원 3058명을 유지 중이다.

1994년 대한결핵협회 저널에 출간한 자료('의대정원 줄다리기')에 따르면, 의대 증원을 크게 확대한 당시 김영삼 정부는 '국민보건과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그 이유로 뽑았고, 이를 위해 최소 800명 이상의 의대생 증원이 필요하다 밝혔다.

당시에도 의협은 "현재의 의대 정원만으로도 의료인력이 넘쳐 의대 정원을 동결해도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자료에서 나타난다.

한 동안 잠잠했던 의대 증원 논란이 다시금 불거진 건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때다. 코로나19 펜데믹으로 공공의료 인력 공백 사태가 발생하자 그해 7월 23일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육성, 한방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시행" 등 4대 의료개혁 정책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1000명 당 의사 수에서 우리나라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적하며, 의대 정원을 연간 최대 400명씩 10년간 4000명 증원할 계획이라 밝혔다. 그리고 이는 전공의 주도로 이뤄진 전국 의사 파업 등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당시 의료계에서 "OECD 평균 대비 의사 수가 적은 것은 맞지만, 의사 연평균 증가율은 OECD 1위이고 현재나 미래와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다"라며 정부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의료의력 부족 지적에 대해 '지역간 편차 및 의료기관·과목별 불균형' 탓이라 언급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5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5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필수·지역의료 붕괴 막자'는 정부

윤석열 정부 또한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의료계 주장을 반영, 붕괴되는 필수의료과와 지역 의료에도 의사 인력이 충분히 유입될 수 있는 정책 혜택을 함께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충북대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전략회의'에 참석 "무너진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이용 체계를 바로 세우고 지역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OECD 최하위 수준인 의사 수를 늘려 필수의료 공백 해소, 초고령사회 전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 분야에 인력이 유입될 수 있도록 법적 리스크 부담을 완화하고 보험 수가를 조정하고 보상 체계의 개편을 뒷받침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의대 정원 확대를 본격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달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의사 정원 확대와 의료사고처리시스템 합리화, 공정한 보상체계 확립 등을 포함한 큰 틀의 방향은 마련됐다"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인 만큼 집중적인 논의를 통해 속도감 있게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의협 회원들이 '제1차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를 열고 의대 증원X라고 적힌 마스크를 쓴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의협 회원들이 '제1차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를 열고 의대 증원X라고 적힌 마스크를 쓴 모습. 사진=뉴시스

의료계, 대책없는 증원에 반대 의견 고수

정부의 의대 증원 움직임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의료계는 공식적 반대 의견을 굳히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열린 제25차 의료현안협의회에서 서정성 의협 총무이사는 "의대 정원이 300명이 늘든 1000명이 늘든 (이들이) 필수의료로 간다는 근거나 유입 방안이 있으면 늘려도 되겠지만 그런 대안이 전혀 없이 의사 숫자만 늘리는 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대학병원에 재직 중인 전공의 A씨도 월요신문과 인터뷰에서 "기피과가 아닌 이상 인력 부족을 느끼진 못하고 있다"며 "의대 증원을 하더라도 역시 기피과는 기피할텐데 적절한 해결책이 아닌데 옳지 못한 해결책을 제시한것 같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을 대부분 반대한다"고 말했다.

개원의 B씨의 경우 더욱 강경하게 대책 없는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B씨는 "현재 의사 수가 적지도 않고 낮은 출산율 등을 고려할 때 향후 필요 의료서비스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문제는 필수의료과의 인력 부족인데 이에 대해 의협은 오래전부터 문제를 지적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진료 수가 정상화가 해법인데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의료보험제도는 40년도 더 된 제도인데 의료 수가에 물가 반영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상당수 개원의들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 일각에선 소폭 증원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 9일 의대학장과 의전원장 등으로 구성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입장문을 내고 "총 증원 규모는 의학 교육 질 저하를 막고 교육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2025학년도 입학 정원에 반영할 수 있는 증원 규모는 40개 의과대학에서 350명 수준이 적절하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증원 규모를 의료계에 먼저 제시하라고 하지만, 의료계에선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로 유입 방안 마련을 우선적으로 제시하라는 상황"이라며 "양측의 입장차가 커 의대 증원 협상이 쉽게 해결되진 힘들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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