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김지원 기자]정부는 지난달 재개발 재건축 추진 아파트에 대해 안전진단 없이 사업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1·10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에 따르면 준공한 지 3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착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지난달 31일 노후계획도시에선 안전진단을 면제하는 세부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상 안전진단 폐지와 다름없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발표는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착공이 줄어들자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사업 속도를 높이고 쉽게 정비사업에 접근할 수 있게끔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정부는 재건축 기간이 2~3년 정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도 안전진단 문턱이 없어짐에 따라 재건축 시도가 우후죽순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오는 2027년까지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는 아파트는 수도권 55만 가구, 지방 20만 가구 등 총 75만 가구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는 1기 신도시 아파트 대부분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것은 시도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일 뿐 정비사업이 순항할 것이라곤 장담할 수 없다. 추진위 구성부터 준공까지는 평균 10년 이상 걸린다. 이 사이에 무수한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은마아파트는 2010년 안전진단 통과 후 조합 설립에만 13년이 걸렸다. 안전진단을 면제한다고 해서 사업이 원활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안전진단 면제가 물꼬를 터줘도 공사비가 정비사업의 발목을 붙잡는다.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사업이 중단되는 사업장이 빈번치 않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공사비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실제로 건설 공사에 투입되는 재료·노무·장비 등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지표인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해 12월 153.26으로 전년 동월(148.56)보다 3.16% 상승했으며 2021년 14.0%, 2022년 7.0% 상승했다. 2020년 12월(121.80)과 비교해보면 3년간 상승률은 25.8%를 기록했다. 이 기간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 (12.3%)을 고려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업계에서는 올해도 공사비지수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한다. 원인으로 지목됐던 고금리, 원자잿값 상승 외에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한 각종 안전 관련 비용과 강화된 층간소음 기준까지 적용하면 공사비 부담은 이전보다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노원구 기대주였던 상계주공5단지는 시공사인 GS건설과 계약 해지했다. 지난 4일에는 부산 사하구 괴정5구역 조합이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컨소시엄과의 계약 해지를 결의했다. 두 곳 모두 조합과 시공사 간의 공사비 협상이 결렬된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외에도 송파구 잠실 진주,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행당 7구역 등이 아직 시공사 해지까지는 아니지만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신당 9구역, 잠실우성 4차 등 시공사 선정을 위해 공사비를 올렸으나 2~3번 유찰돼 아직 시공사조차 선정하지 못한 사업장들도 있다.

정부의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향후 이주 문제로 인한 전셋값 불안, 집값 상승 심리 등을 부추길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이러한 고민은 하지 않은 채 멀리서 뒷짐 지고 바라보기만 한다. 규제 완화 이후의 문제는 다음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1·10 부동산 대책'은 올해 4월 총선을 겨냥한 유권자 마음 잡기에 불과하다는 의심이 든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서울지역 후보자들이 뉴타운 공약을 남발하던 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정부는 제도적인 부분보다 시장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펼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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