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붕괴 주요 원인으로 "낮은 수가, 사법리스크, 의료전달체계" 지적
조민우 울산대 의대 교수, "보건의료시스템, 공급, 수요 모두 개선 필요"

전라북도 의사회 회원들이 15일 전북 전주시 전주풍남문광장에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의대증원 정책 강행 규탄대회'를 열고 의사 가운을 벗어 바닥에 내려 놓은 모습. 사진=뉴시스
전라북도 의사회 회원들이 15일 전북 전주시 전주풍남문광장에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의대증원 정책 강행 규탄대회'를 열고 의사 가운을 벗어 바닥에 내려 놓은 모습. 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지영 기자]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 원인을 의사수 부족으로 보며 의대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며, 정부의 의료정책 패키지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있다. 

22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전날 오후 10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74.4%인 9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64.4%인 8024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의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불법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주동자 및 배후 세력에 대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비상대책위원회 성금 계좌를 개설해 모금을 통해 회원 보호 및 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그동안 의료 현장 개선과 필수의료 수가 인상을 통한 필수의료 개선에는 정부와 뜻을 함께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에는 일관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렇다면 의료계는 왜 의대 증원에 반대할까? 

정부 "의사수 부족" vs 의료계 "다른 지표도 봐야"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 원인을 의사수 부족이라 보고 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적다는 통계를 근거 자료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6일 열린 정부 브리핑에서 "OECD 보건통계 2023에 따르면, 국내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못 미친다"며 "2035년까지 의사 수가 1만 500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OECD 국가별 의사 절대수 지표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병상 수, 생명 기대치 등 다른 지표들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는 20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OECD의 의료 공급 지표뿐만 아니라 의료 결과에 대한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의료 질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라며 "만약 의사의 절대 수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라면 이 정도의 건강 결과와 접근성이 유지될 수 있겠냐"라고 반문했다.

OECD Indicators: 'Health at a Glance 2023'. 사진=Evolution in the number of doctors, selected countries, 2011-21
OECD Indicators: 'Health at a Glance 2023'. 사진=Evolution in the number of doctors, selected countries, 2011-21

실제 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OECD 평균보다 의사 수가 적다. 2023년 OECD가 발표한 지표(OECD 'Health at a Glance 2023')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한국의 의사 수는 2.6명으로 OECD 평균(3.7명)보다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병상수(Hospital beds)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명으로 OECD 평균(4.3명)보다 높은 것을 보여준다. 

OECD Indicators: 'Health at a Glance 2023'. 사진=Health Status, selected countries, 2011-21
OECD Indicators: 'Health at a Glance 2023'. 사진=Health Status, selected countries, 2011-21

건강 상태와 관련한 다른 지표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OECD 평균 대비 양호한 상태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 수명은 83.6년으로 OECD 국가(평균 80.3년) 중 상위권에 속한다.

또한, 회피가능사망률(Avoidable mortality, 질병의 예방활동과 시의적절한 치료서비스 제공으로 막을 수 있는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42명으로 OECD 국가(평균 238명)보다 낮은 수치를 보여준다. 

만성 질환(Chronic Conditions) 수치는 6.8%로 OECD 국가(평균 7%)보다 낮으며 자가 건강 평가(Self-related health) 수치는 14%로 OECD 국가(평균 8%)보다 높은 수준이다.

OECD 지표를 종합해보면, 우리나라는 OECD 대비 의사수는 매우 낮지만 병상수에서는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건강 상태의 질 또한 평균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사례 발생 등 필수의료 붕괴에 대한 지적은 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걸까? 

필수의료 붕괴 주요 원인은? "낮은 수가, 사법리스크, 의료전달체계"

의료계는 필수의료 붕괴 원인으로 낮은 수가와 높은 사법리스크, 의료 전달 체계 등을 지적하고 있다. 

정재훈 교수는 MBC 100분 토론 '의대 증원 충돌, 의료 대란 오나?'에서 "필수의료의 위기라는 것은 의사 사회 내에서 필수의료와 비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의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법적 위험성이나 삶의 질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라며 "전체적인 공급의 문제라기보다는 배분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한내과의사회는 지난 28일 대한내과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제2회 개원·경영 및 학술 심포지엄에서 "합리적인 정책 방향으로 필수의료 저수가 구조 개편과 사법 리스크 완화"를 제시했다.

내과의사회는 "의학적 근거가 미약한 분야에 쓸데없이 쏟아붓는 재정을 과감히 필수의료 분야에 투입해야 한다"라며 "다른 선진국에 비할 수도 없는 초저수가 기조의 보험정책은 의료의 질적 저하를 유발하고 이는 결국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에 몸담으려 하는 의료인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는 처벌 위주의 사법적 판결이 줄을 잇고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면허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법적인 뒷받침이 없다면 예비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절대 나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 종별 건강보험 급여비 증가분 점유비율: 2005~2014'. 사진=김계현(부 연구위원) 외. 2015. "의료전달체계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 일부 발췌
'의료기관 종별 건강보험 급여비 증가분 점유비율: 2005~2014'. 사진=김계현(부 연구위원) 외. 2015. "의료전달체계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 일부 발췌

의료계에서는 필수의료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2015년 의료정책연구소의 연구('의료전달체계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1980년대 도입된 '환자의뢰제도'는 전국을 행정구역과 생활권에 따라 진료권을 설정하고, 의료기관 역시 1차・2차・3차 의료기관(의원, 병원·종합병원, 대학병원 등 상급 종합병원)으로 분류하여 의료기관 간의 기능 분담을 시도했다"고 설명한다.

이어 "그러나 이는 규제개혁 차원에서 진료권의 개념이 폐지되면서 실패했는데 현재까지 의료기관 종별 기능과 역할이 중복되어 있어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의료전달체계는 의원은 외래진료 중심, 병원은 입원진료 중심, 대형병원은 중증질환과 연구 중심으로 특화한다는 방향의 제도를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의료기관의 분류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병원과 상급 종합병원의 외래진료의 확장으로 동네 의원은 위축되고 상급병원으로 경증 환자가 쏠리는 현상이 되면서 중증 환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의협 협상단 양동호 단장(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또한 '제22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은 몰려드는 환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지역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의 폐원이 속출하고 있다"며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규모 의료기관들이 대형병원과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의료계에 따르면, 필수의료의 낮은 수가와, 필수의료 같은 고위험 의료의 경우, 의료인이 소송에 직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공의들의 필수 의료 분야 이탈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로 수도권·상급 종합병원으로 경증환자의 쏠림 현상이 생기면서 중증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기에 지역·필수 의료의 붕괴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료계의 요구를 반영해 정부는 지난 1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통해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살리기의 근본 해법으로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라는 4대 정책 패키지를 추진하는 한편, 대통령 직속으로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 개혁 실천 로드맵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 또한 20일 국무회의에서 의료진에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의료개혁에 동참해달라"며 "지역 필수의료, 중증 진료에 대해 정당하게 보상하고, 사법 리스크를 줄여 여러분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책임지고 만들겠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필수의료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의료정책패키지에 미비한 점이 있다는 입장이다.

조민우 울산대 의대 교수, "정부 의료 정책패키지, 공감할 부분 있지만 몇 가지 문제점 있어"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조민우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정부의 의료정책 패키지에 대해서는 공감할만한 내용도 많지만 몇 가지 지적할만 내용도 있다면서 세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조 교수는 "정부도 많은 고심을 해서 여러 가지 내용을 담았고 공감할만한 내용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지적할 만한 내용도 있는 것 같다"면서 "먼저 정부의 의료정책패키지에 공급자(의료 전문가, 의료기관)와 시스템 관련 내용은 몇 가지 구성하였지만 수요자(환자) 측면에서의 관리 정책은 부재하다는 측면이 1차적으로 지적될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수요자(환자)가 의료 이용을 일차적으로 결정하는데 이것이 현재 적절하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시기적인 문제도 같이(정부와 의료계가) 고민할 내용인데 정부의 의료정책패키지에 정부는 단기 계획과 중장기 계획을 나누어서 표현하였지만 두 가지 범주에 해당하는 것이 각각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상당히 많은 내용이 중장기적인 대책이라 단기간에 집중해야 할 부분을 먼저 집중적으로 제시하고 중장기적 대책은 방향성을 가지고 함께 논의하여 결론을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또한 "세 번째는 정부의 의료 정책 패키지에 개별 사업과 관련한 구체적인 예산 혹은 지원 규모가 도출되어 제시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산이나 지원 규모는 사업의 구체성과 연관되는 부분인데 이것이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의료계에게)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개선 "의료 시스템, 공급자, 수요자 모두 개선 필요"

조 교수는 필수의료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건의료시스템, 공급자, 수요자 측면 모두에서 개선방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역, 필수의료에 대한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 시스템 측면에서의 개선유도가 필요한데 대표적으로 의료 시설, 전달체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불제도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의료 시설이 있어야 보건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을 텐데 우리나라가 민간에 의존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시장 형성이 안되는 곳(지방)에는 적절한 수준의 의료기관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공의료에서 고민할 부분이 더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와 함께, 기존에 의료기관이 있는 곳에서도 잘 작동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전달체계다"라며 "1-3차 의료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 구성을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서 말한 의료 시설, 전달체계에 대한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불 제도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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