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근거 논문 살펴보니..2000명 증원 언급 無
야권 "의대 증원 규모 비현실적, 약속대련·정치쇼"

성태윤 정책실장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민생토론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성태윤 정책실장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민생토론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지영 기자]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밀어 붙이고 있는 '의대 2000명 증원' 관련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반론 또한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야권을 중심으로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강행이 총선을 앞둔 정치적 요식행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5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의대 증권 규모가)원래 필요했던 것은 3000명 내외지만, 여러 여건을 고려해서 2000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교육부에서 전국 의과대학에 '어느정도 증원이 가능한지' 3월4일까지 답변하실 수 있도록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안다"며 정부의 의대 증원 강행 의지를 다시 한 번 내비쳤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지난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2000명 증원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며 허황된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며 "이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현재 정부는 2035년 의사 1만5000명이 부족하다는 수급 추계를 바탕으로 연 2000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학적 수급 추계의 근거로는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가 작성한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의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 변화의 노동, 교육, 의료 부문 파급효과 전망' 등의 연구보고서를 언급했다.  

이와 관련 지난 21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보사연은 한 해 의사 진료일을 공휴일 제외 265일로 계산하고, 환자 진료량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2035년 의사 9654명이 부족한 것으로 추계했다"고 밝혔다. 

이어 "KDI는 장래인구추계와 연령별 의료이용량을 토대로 미래 총 의료수요를 계산한 뒤 의사의 연령별 이탈률을 적용해 2050년 2만2000명이 부족한 것으로 추계했다. 서울대 연구는 과거 추이를 토대로 2035년 1만816명, 2050년 2만6570명이 부족하다고 산출했다"고 부연했다. 

의료계는 정부가 제시한 연구자료들이 2000명 증원의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 중이다. 

지난 22일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보건복지부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의대 2000명 증원에 근거가 있다고 주장했다"며 "하지만 이는 연구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고, 해당 연구를 제외하면 증원 논리를 뒷받침할 근거도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진실과 다른 왜곡된 자료와 거짓말로 국민을 오도하지 말고, 의사들의 포기 현상을 가속하는 위헌적 폭압을 중단해야 한다"며 "대한민국 실정에 맞고 합리적, 객관적인 기준으로 이뤄진 대규모 연구를 통해 적정한 의사와 보건의료 인력 규모를 추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는 지난 20일 방송된 MBC '100분 토론'에 출연, "서울대에서 진행한 연구는 시나리오가 하나만 제시가 되어 있고, 특정 시점을 고정해 그 시점의 상태를 기준으로 평가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당 연구보고서 말미 '의사 인력 증원보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우선돼야 한다'는 내용이 있고, 연구 책임자 또한 최근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보건복지부가 자신의 연구를 인용해서 결과를 발표하는데 있어서는 동의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KDI 연구에 대해서도 "KDI에서 발표한 연구는 의대 정원을 연간 5%씩 총 4500명까지 늘리는 것을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가장 적절한 시나리오로 제시했다"며 "한 번에 2000명을 늘리는 방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건사회연구는 굉장히 다양한 가정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져있다"며 "첫 번째 분석 같은 경우는 의사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와있지만 의사생산성이 좋아진다거나 수요의 증가속도가 조금 줄어든다는 가정이 있는 등의 조건을 바꾸는 시나리오일 때는 오히려 의사인력의 과잉이 있을 수 있다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최근 해당 연구 책임자도 '1000명씩 10년 늘리는 점진적인 방안도 있는데 왜 정부는 그런 방안을 선택하지 않았냐'고 말했다"며 정부의 2000명 증원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KDI,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 변화의 노동, 교육, 의료 부문 파급효과 전망 : 의료부분' . 사진=논문 일부 발췌
KDI,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 변화의 노동, 교육, 의료 부문 파급효과 전망 : 의료부분' . 사진=논문 일부 발췌

정부 근거 논문 살펴보니...2000명 증원 언급 無

실제 정부가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 3가지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직접적으로 의대 2000명 증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부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KDI 연구자료를 살펴보면, 현재의 의사 인력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 인력 규모는 "2050년까지 대략 14만 8900명으로, 2050년에 전망되는 의사 인력 규모보다 약 2만 2000명 이상 더 필요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나와 있으나, 보고서 도입부부터 "본 연구는 적절한 보건의료인력 규모에 대한 논의는 배제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의사 인력의 생산성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인력 유입 및 유출 수준이 지속된다는 낙관적 전망에 기반한 결과"라고 언급하며, "의사 인력 규모에 대한 논의에서 단순히 전체 인력 규모만으로 인력 규모의 충분성을 바라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의사 인력의 노동생산성에 대한 고려가 동반될 필요가 있다"고 나와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전체 인력 규모에 대한 대응보다, 근로여건 개선 및 지역별 불균형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정책방안 모색이 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한다.

이어 "현재 3058명인 입학 정원을 2024년부터 2030년 정도까지 매해 5~7% 수준에서 증원하는 방식이 필요 의사 인력 규모에 가장 근접한 의사 인력 규모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판단된다"고 결론 지었다. 

보사연,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 사진=논문 일부 발췌
보사연,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추계 연구'. 사진=논문 일부 발췌

보사연 연구의 경우, 의사 수급 추계를 평균증가율 모형, 로지스틱 모형, 로그 모형, ARIMA 모형인 4가지 모형으로 분석했다. 해당 모형을 적용해 진료일수가 240일, 255일, 265일인 경우 2025년, 2030년, 2035년에 의사 수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예측한 자료다. 

어떤 모형을 사용해 추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이 네 가지 모형 중 정부는 진료일수 265일 가정 ARIMA 모형을 사용한 결과를 바탕으로 2035년에 의사 인력이 9654명 부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가 인용한 자료 외 결과는 달랐다. 같은 진료일수일 때 로그 모형을 사용하면 "2035년 6089명 부족", 평균증가율 모형을 사용하면 "2035년 2만7084명 부족", 로지스틱 모형을 사용하면 오히려 "2035년 1만1716명 과잉"으로 나타났다.  

진료일수를 240일이나 255일로 가정할 경우 결과는 또 달라졌다. 

보고서 저자인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도 최근 가진 KBS와 인터뷰에서 "1만 명 부족하다는 데 이견은 없으나, 9654명 부족이 나온 건 진료일수를 265일로 가정했을 때"라며 "주말 104일이 빠지고 기타 휴일들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홍윤철 교수,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 사진=논문 일부 발췌
서울대 의대 홍윤철 교수, '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 사진=논문 일부 발췌

홍윤철 교수 논문의 경우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적용해 의사 인력 부족 여부를 예측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의사의 공급과 수요가 적절하다고 가정했을 때, 2021년부터 입학정원을 1500명까지 증원해도 의사 인력이 부족하지만, 일정 시기 이후엔 인력 초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65세 이상 의사 인력 생산성이 75%로 줄어든다고 가정했을 때, 2021년부터 입학정원을 1500명까지 증원해도 의사 인력이 부족하고, 역시 일정 시기 이후엔 인력 초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연구 결론 부분에서는 "2018년 OECD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OECD 국가 평균보다 임상 의사수가 적은 반면,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가 연간 16.9회로 가장 많았다"며 "이는 의사수급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이용행태와 더 나아가서 의료전달체계의 개선이 시급함을 이야기한다"고 강조한다.

홍 교수 또한 KBS와 인터뷰에서 "정부가 제시한 1만 명이라는 숫자를 제시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했기 때문에 그 중에 어느 하나가 걸려 있을 수는 있다"면서 "1만 명 부족은 내 보고서를 그대로 이용하지 않은 것 같고 (복지부가) 나름 숫자를 정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홍 교수는 19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도 "의사 인력 증가는 의료제도 개혁이 이뤄진 후에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라며 "현재 정부의 필수의료패키지엔 구체적인 실천방안이나 로드맵이 없는 게 문제"라며 개혁 순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홍 교수는 정부의 의대 증원 근거 자료 발표 이전에도 "문제가 많은 의료시스템을 고친 후 증원 규모를 계산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는데 (복지부가 보고서의) 앞부분만 가져다 쓴 것 같다"고 밝혔다.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야권 "의대 증원 규모 비현실적, 약속대련·정치쇼"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는 19일 오전 열린 개혁신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대해 "비현실적인 증원규모기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이걸 조정하는 척 하면서 표를 가져가려 하는 또 다른 약속대련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번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윤 대통령을 겨냥하여 "수능이 9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3000명이던 의대생을 내년부터 2000명 늘린다는 발표가 입시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모르는 것인가"라며 "입시 현장은 갑자기 의대를 준비하게 된 최상위권 학생들의 사교육 광풍으로 혼란의 도가니"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의 1인당 외래진료회수가 15.7회로 OECD 1위라는 것은 우리의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오스트리아는 우리보다 인구 1000명당 의사수가 2배가 많지만 평균 수명은 우리보다 2년 이상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결국 의사 부족에 따른 문제보다는 특정과에 대한 기피현상이 문제"라며 "소아과 등의 비인기과 공급 증대를 목적으로 한다고 양의 머리를 내걸고 실제로는 고소득 직군인 의사 직군을 때려서 일시적인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보기 위한 개고기를 팔아서야 되겠나"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소아과가 없어서 저출산인게 아니라 저출산이기 때문에 현재 수가 체계에서 소아과를 개원할 동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며 "수가 구조 개혁 외에는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사는 파업을, 정부는 진압쇼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며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의료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적정 증원 규모는 4~500명선이라고 한다"며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문재인 정부 당시 이미 공공, 필수, 지역 의료 중심으로 4~500명 규모 증원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타진해 본 결과, 충분한 소통과 조정이 이뤄진다면 의료계도 이 정도 증원은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파업과 진압이라는 사회적 혼란 없이 얼마든지 대화로 해결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가 일부러 2000명 증원을 들이밀며 파업 등 과격반응을 유도한 후, 이를 진압하며 애초 목표인 500명 전후로 타협하는 정치쇼로 총선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시중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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