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공무원, 신상 공개와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 선택
공무원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 "폭언·협박에도 그냥 참는다"
김상구 교수 "민원공무원, 조직이 요구하는 규범에 따라 감정 통제"

8일 오전 경기 김포시청 앞에서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숨진 김포시 소속 공무원 A(39)씨를 애도하는 노제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김포시청 사이트
8일 오전 경기 김포시청 앞에서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숨진 김포시 소속 공무원 A(39)씨를 애도하는 노제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김포시청 사이트

[월요신문=박지영 기자]온라인 카페에서 개인 정보가 유출되고 지속적인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기도 김포시 소속 공무원 A씨의 발인식이 8일 진행됐다. 민원직 공무원이 악성 민원과 협박에 노출되어 감정노동이 심각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으나, 민원공무원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여전히 부재한 상황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8일 오전, 경기 김포시 소속 9급 공무원 A(39세)씨의 발인식이 인천 서구 검단탑 병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발인식에는 유족과 김포시 동료 공무원, 시민 등 약 300여 명이 참석했다.

A씨의 발인식 후, 운구차는 김포시청으로 이동해 동료 직원을 추모하는 노제가 진행됐다. 고인의 동료들은 영정사진이 놓은 추모 공간에서 고인에게 술을 올린 뒤 절을 하고 함께 묵념했다.

A씨의 유족들은 "우리 아들 어디갔니?"라며 오열했고, 고인과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병수 시장은 "일어나서는 안될 안타까운 일이 우리 김포시에서 발생했다"며, "지난주까지만 해도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해 온 가족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해 김포시 전 공무원은 충격과 슬픔 속에 잠겨있다"고 전했다.

김 시장은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불법적이고 악의적인 공격에 법적대응할 것이다. 나아가 강력한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인의 시신은 인천가족공원 승화원에서 화장 뒤 인천시립납골당에 안장될 예정이며, 김포시는 분향소 운영 기간을 9일 18시까지 연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6일 인천 서부경찰서와 경기 김포시에 따르면, A씨는 전날 오후 인천 서구의 한 도로에 주차된 차량 내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으며, 차 내부에서는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황이 확인됐다.

김포시의 한 관계자는 "A씨는 최근 공사 관련 민원이 들어오고, 온라인 카페에서 자신을 향한 직접적인 비난이 이어지자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해당 온라인 카페의 메인 화면. 사진=해당 카페 메인 화면 일부 캡쳐
해당 온라인 카페의 메인 화면. 사진=해당 카페 메인 화면 일부 캡쳐

신상 공개와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극단선택

지난달 29일, 김포의 한 도로에서 발발생한 포트홀(도로 파임) 보수 공사로 인한 차량 정체 현상이 빚어지자, '콜럼버스의 부동산 정보'라는 네이버 카페에 김포한강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는 글이 게시됐다.

이에 한 이용자가 "집에서 쉬고 있을 이 사람 멱살 잡고 싶네요"라며, 공사 승인을 담당한 주무관 A씨의 실명과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를 공개하면서 A씨를 비난하는 글이 잇따랐다.

A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네이버 카페 매니저는 6일 "새벽시간 카페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고 김포시청 주무관님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됐다"며, "주무관님의 안타까운 소식에 저희 카페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밀려온다"고 게시글을 남겼다.

이어 "저희 운영진에서는 단순한 민원성 게시물로 판단하여 신상털이와 마녀사냥식의 댓글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이러한 게시물이나 댓글에 관해서도 운영진이 잘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현재 해당 네이버 카페의 메인 화면에는 "주무관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배너가 메인 화면에 게시되어 있다.

이 사건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해당 네이버 카페는 7일부터 31일까지 신규 회원 가입을 일시 중단한 상태로 확인됐다.

한편, 김포시는 유가족 및 공무원 노조와 함께 해당 온라인 카페 이용자들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위한 진상조사 및 경찰고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가공무원 감정노동실태 첫 조사 결과 일부 캡쳐. 사진=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 감정노동실태 첫 조사 결과 일부 캡쳐. 사진=인사혁신처 

공무원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 "폭언·협박에도 그냥 참는다"

지난해 7월,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이른바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이 발생한 후 얼마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또다시 일어난 가운데, 민원직 공무원의 감정노동이 심각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사혁신처가 지난해 12월 중앙행정기관 소속 공무원 1만 98명을 대상으로 감정노동 실태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감정규제, 감정 부조화, 조직 점검(모니터링), 보호체계' 등 각 진단 영역에서 공무원들의 감정노동 수준이 정상 범위를 벗어난 '위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노동 원인으로는 장시간 응대, 무리한 요구로 업무 방해가 31.7%로 가장 많았고, 이어 폭언·협박(29.3%), 보복성 행정제보·신고(20.5%)가 뒤를 이었다.

 또한, 공무원들은 감정노동 대응 방법으로 외부 지원을 받아 해결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참아서 해결(46.2%)하거나 조직 내 구성원의 도움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정노동이 신체‧심리적 질병으로 발현되는 경우 공무원들 대부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61.1%) 건강관리에 취약한 상황이라고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서 진행한 '공무원 감정노동 측정도구 설문 문항'. 사진="공공부문의 감정노동 : 일선행정 민원공무원에 대한 실증연구" 논문 일부 캡쳐
해당 연구에서 진행한 '공무원 감정노동 측정도구 설문 문항'. 사진="공공부문의 감정노동 : 일선행정 민원공무원에 대한 실증연구" 논문 일부 캡쳐

김상구 교수 "민원공무원, 조직의 요구에 따라 감정 통제"

한국해양대 행정학과 김상구 교수가 수행한 연구("공공부문의 감정노동 : 일선행정 민원공무원에 대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실제 민원공무원의 감정노동을 측정하여 분석한 결과, 민원 공무원의 감정노동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감정노동의 핵심은 실제 감정과 관계없이 표현되는 감정의 인위적 관리"라면서 "주민과 매일 대면하는 일선 민원공무원은 서비스업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민원인의 무례함 등에도 '행정서비스 헌장'이나 업무지침에 의해 개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민원 공무원들은 민원인의 무례함, 반말, 큰소리, 공무원의 설명이나 해명을 듣지 않고 무조건 항의, 협박 등 불쾌감을 유발하는 외부 상황에 직면하는 한편, 그들이 언제나 흥분하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해야 하는 내부 감정 상태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에서 심리적 불편함이나 유발된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공무원 조직인 관료제는 그간 합리성의 가치 이면에 가려진 감정의 영역을 외면하고, 감정관리를 통한 노동을 애써 평가절하 했으며, 공/사 구분과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공적인 업무영역에 대한 사적 감정의 개입가능성을 부정해 왔다"며 "현실적으로 다수 공무원은 정부가 요구하는 감정표현규범(친절, 미소 등)에 따라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고객에게 연출하도록 강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정노동자는 직접적으로 표출은 않지만 감정적 압박감에 의한 직무스트레스, 그리고 나아가 감정적 고갈이나 탈진이 가속화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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