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박지영 기자]최근 정치 혐오로 인한 정치인 테러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야당의 대표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부산에서 흉기에 피습당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괴한에게 돌로 머리를 가격당하는 등의 습격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번 달에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함께 유세를 하던 원 전 장관 후원회장 이천수 씨가 한 남성에게 폭행과 협박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여러 전문가와 정치인들은 최근의 정치 테러를 '증오 정치·혐오 정치'의 극단적 표출로 보고 있다.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물리적인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지도부와 의원들은 이 같은 폭력 사건에 대해 증오 정치를 종식하자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여야 모두 말로는 증오 정치를 끝내자고 하면서도 최근 정치인들의 발언을 보면 전혀 그럴 의사가 없는 듯하다. 총선을 한 달 여 앞둔 상황에서 여야 후보들의 '막말 논란'과 이에 따른 공천 취소가 잇따르며 여야는 더욱더 상호 흠집내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 후보들의 공천을 결정한 당 지도부는 지지자들에게 후보와 당을 대신해 사과하고 자제하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만 목소리를 높이며 네거티브 캠페인에 몰두하고 있다.

더욱이, 정당 간 양극화를 타파하고 비례성을 확보하겠다고 도입한 선거제도는 이번에도 양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각 당 지도부는 책임 공방만 주고받으며 증오 정치 종식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언론 또한 증오 정치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발전함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지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확대되면서, 저널리즘 비즈니스 모델 내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언론은 관심을 끌만한 분열적이고 편향된 보도로 증오 정치에 일조하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 언론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며, "분노하면 1면에 실린다"는 미국 언론의 정치 보도 원칙에서도 드러난다.

언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는 것 뿐이라는 주장은, 정보와 의제 설정 및 선택적 반영이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창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언론에도 상당한 책임이 요구된다.

정치인의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발언, 정략적인 선거제도의 이용으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된 정치 구도, 갈등을 부풀리는 언론,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편향된 정치인 및 이슈 중심의 미디어 소비를 선호하는 시민들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악순환을 이룬다.

이 악순환 속에서 양극화된 정치의 초기 원인을 단순히 규명하려는 시도는, 수많은 복합적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는 현상임을 감안할 때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와 같은 문제로 더 이상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증오가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혐오를 넘어 많은 중립적인 입장의 유권자들을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고물가 등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치권과 언론이 정쟁과 네거티브에 몰두하는 것을 지켜보며 많은 중도층 유권자들은 정치에 대한 혐오와 피로감을 느끼고 결국 관심을 거두게 된다.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이번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겠다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투표를 기피하는 유권자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는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투표에 참여해야만 한다.

현재 정치 구도와 언론이 강렬한 정치적 정체성을 가진 이슈와 인물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고, 이를 소비하는 당파적 유권자들에 의해 그러한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면, 중도적인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투표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의견이 더욱 정치권에 반영되어 증오와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시키고, 변화를 향한 희망 또한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저명한 사상가의 말처럼, 우리는 무와 혼돈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따름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에서 변화하기를 그치는 것, 혼돈스러울 수 밖에 없는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멈추는 것, 그것은 마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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