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만난 어제의 동지

[월요신문 성현 기자] 한때 사업 파트너이자 1000억원대 부동산 거래 당자사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대한전선과 경안레저산업이 법원 판결도 수용하지 않는 격한 갈등에 빠져 있다. 법원은 최근 서울 남부터미널 부지와 건물 소유자인 대한전선이 임차인인 경안레저산업을 상대로 낸 토지 및 건물 양도 소송에 대해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 소송은 경안레저산업이 임대기간 만료 이후에도 재계약 여부를 통보하지 않고 부동산을 점유한 채 영업을 계속해오자 대한전선이 낸 것이었다. 양 측은 약 6년여 전 남부터미널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만나 3년여 전에는 터미널을 사고파는 협상테이블에도 앉았던 사이다. 그러나 경안레저산업은 이번 판결에 불복, 고등법원에 항소해 이번 분쟁은 해결에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서울 서초구 서초동 남부터미널.
진로그룹으로부터 부지 건물 인수…진로 인사들이 운영
개발사업 MOU 해제 이후 소 제기…경안 항소로 고법행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홍이표)는 대한전선이 출자한 엔티개발제1차PFV가 경안레저산업을 상대로 낸 토지 및 건물 양도 소송을 지난달 29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안레저개발이 흡수합병한 한터디앤디가 엔티개발제1차PFV와 체결했던 임대차계약에 따르면 임대차 기간은 2년”이라며 “경안레저산업도 이를 전제로 원고에게 임대료 인상 없이 계약을 갱신하고자 요청했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故 설원량 전 회장의 결단

대한전선이 남부터미널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전 소유주인 진로그룹 측의 제안 때문이었다.

진로그룹 계열사 임원으로서 남부터미널 사업을 담당하던 조모씨가 서울 양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조세불복심판청구 결정문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2003년 경 고(故) 설원량 대한전선 전 회장을 찾아가 회사 측이 떠안고 있던 국세체납액 정리를 요구했다.

당시 진로그룹 인수를 추진하던 대한전선에 피인수를 대가로 모종의 거래를 직접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설 전 회장은 국세체납액 정리가 아닌, 진로그룹 소유였던 남부터미널 인수를 제안했으며 이 같은 얘기가 오간 뒤인 2003년 6월 대한전선은 공매에 나온 남부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750억원을 들여 실제로 사들였다.

이렇게 맺어진 조씨와 대한전선의 관계는 남부터미널 인수 이후에도 이어졌다.

대한전선은 면허가 필요한 터미널 운영사업을 한터디앤디에게 맡겼는데, 이 회사는 조씨와 진로그룹 전 임원들이 뜻을 모아 세운  회사였다. 기존 직원 400여명에 대한 고용승계가 수월하고 조씨에게 사업 노하우가 있다는 점이 대한전선을 사로잡았다.

조씨 등은 진로그룹의 기존 남부터미널사업 계열사 지분을 사들여 2003년 4월 이 회사를 세웠다.

남부터미널을 손에 쥔 대한전선은 이내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노후화된 남부터미널과 그 일대 토지를 사들여 최신식 복합상업시설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또 창사 51주년을 기념해 미래 50년을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서울 회현동에 있는 본사를 이곳으로 옮기고 회현동 사옥을 비지니스호텔로 탈바꿈 시킨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에 대한전선은 한터디앤디와 같은해 11월 이에 대한 사업시행약정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이 개발사업은 잘 풀리지 못했다. 수익성이 당초 전망보다 낮은 것으로 나와 위험 부담이 커진 탓이었다.

이에 방법을 고심하던 대한전선은 지난 2006년 7월 한터디앤디에게 1148억원을 받고 부지와 건물을 매각했다.

그러나 한터디앤디도 개발사업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남부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사들이면서 빌린 대출금이 너무 많았던 영향으로 전해진다.

이 시점에 대한전선과 경안레저산업이 등장한다. 한터디앤디 채권자이자 남부터미널 개발사업 개입권을 갖고 있던 대한전선은 사업 재개를 위해 한터디앤디 지분 42% 취득했다.

경안레저산업도 전씨 등이 보유한 지분을 사들이면서 지난 2007년 말 이 회사 지분 48%를 보유하게 됐다.

대한전선과 경안레저개발이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대한전선은 또 지난 2008년 7월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인 엔티개발제1차PFV를 설립하고 한터디앤디로부터 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1850억원에 재매수했다. 터미널 운영권과 이를 위한 건물 임차는 한터디앤디를 흡수합병한 경안레저산업에게 줬다.

돌아선 사업파트너

이번 소송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엔티개발제1차PFV는 경안레저산업과 2008년 7월 2년 간 건물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이 기간이 만료되면 갱신도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경안레저산업은 계약 기간이 종료되고 엔티개발제1차PFV가 재계약 여부를 문의했음에도 아무런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채 영업을 계속해왔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계약기간이 종료된 다음 저희 쪽에서 재계약을 할 것인지 나갈지를 경안 쪽에 계속 물어봤다”며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고 대답을 하지 않다 보니 계약 종료 공문을 보내고 소송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경안레저산업은 심지어 임대료도 내지 않았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계약 만료 이후 시기에 대한 임대료를 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한전선이 소송을 낸 것은 계약이 만료되고도 한참 뒤인 지난해 10월이다. 이유는 이 기간동안 양 측이 남부터미널 매각 주체와 인수 후보자로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한전선은 앞선 2009년 재무구조평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이후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상태다. 이 약정은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포기, 현재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다.

이에 대한전선은 2008년부터 최근까지 쌍방울로부터 매입한 무주리조트와 한국종합캐피탈 지분, 프리즈미안 지분, 캐나다 힐튼호텔 지분 등을 연이어 매각하고 있으며 지난 2011년 12월 경안레저산업이 추축이 된 남부컨소시움에게 남부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매각한다는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 잠정합의 된 남부터미널 부지·건물 매매는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들어 MOU가 해제되자 대한전선은 이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경안레저산업과 엔티개발제1차PFV가 계약서로서의 지위가 성립되고 본 계약서를 부정할 만한 증거 자료는 없다”며 “임대차계약은 지난 2010년 7월24일 종료됐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경안레저산업이 임대차 기간이 2년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2년’을 전제로 원고인 대한전선에게 임대료 인상 없이 계약을 갱신하고자 요청한 것은 임대 기간이 2년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안레저개발은 법원 판결에 불복, 지난 15일 항소했다.

경안레저산업 측은 “엔티개발제1차PFV과 한터디앤디 사이에 있었던 부동산 매매계약과 임대차계약 등은 대한전선이 양도차익 174억원을 엔티개발에게 이전해 주기 위한 통정허위표시(가장행위)였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어 1심의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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