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외교를 택한 군주 ‘광해군’

[월요신문 김민정 기자] 조선 왕조 500년, 27명의 왕 가운데 조(祖)·종(宗)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군(君)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왕은 연산군(燕山君)과 광해군(光海君) 뿐이다.
연산군은 두차례의 사화(士禍)를 일으켜 100여명의 목숨을 빼앗는 등 폭군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광해군 역시 그렇지만, 최근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친인척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지만, 실용주의와 중립외교를 펼친 뛰어난 왕이라는 것.

이 때문일까?  2012년 개봉해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를 필두로  TV드라마 ‘왕의 얼굴’로, 다시 최근 ‘화정’에 이르기까지 광해군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잇따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광해’라는 인물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로 꼽힌다.

▲여인열전-서궁마마(1982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임진왜란 제5화, 회천문 제6화(1985년 M본부) ▲서궁(1995년 K본부) ▲허준(2000년 M본부) 천둥소리(2001년 K본부) ▲왕의 여자(2003년 S본부) ▲불멸의 이순신(2004년 K본부) ▲탐나는도다(2009년 M본부) ▲광해, 왕이된 남자(영화) ▲왕의 얼굴(2014년 K본부) ▲화정(2015년 M본부) 등이다.

2012년 영화 이후 광해를 재조명하는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조선시대 정작 ‘군’이라 불리며 왕다운 대접을 받지 못했던 광해군이 수백년 지난 지금에야 인기를 끌고 있는 것.광해군은 분명 매력적인 인물이다.

긴 세자 시절을 보내며 말못할 심리적 고초도 많이 겪었고,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의 비극을 간접적으로 겪으며 성장했다.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주는 ‘중립외교’를 시행, 최후까지 비극적이라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광해의 삶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기도 한다.

다만, 역사학자들은 지나친 광해군의 미화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광해군이 실시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히는 대동법의 경우 실제 정책과 알려진 바가 다소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광해의 중립외교 역시 뚜렷한 성과가 입증되지는 못했다고도 입을 모은다.

16년 세자의 서글픈 일대기 ‘왕의 얼굴’

2월 5일 23부작으로 막을 내린 K본부 수목드라마 ‘왕의 얼굴’에서 광해(서인국)를 폐서인 시키고자 하는 선조(이성재)에게 광해가 일갈한다.

“아버님은 평생 왕의 얼굴에 매달리셨습니다. 하지만 군주가 진정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군주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바로 백성들의 얼굴입니다.”

주제에 맞게 선조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왕이 된 광해는 가장 먼저 백성들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방납의 폐해를 없애고자 대동법을 도입한다.

당시 광해를 지지하던 대북파의 거두 이산해는 이를 만류한다. 조선이 세워진 이래 모든 왕이 그 폐단을 없애고자 했지만, 어떤 왕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산해의 저지에 광해는 “바로 공과 같은 대신들이 방납의 이권에 개입돼 있기 때문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그는 각자 소유한 토지에 근거해 공평하게 쌀로 세를 대신 부과하는 대동법을 실시하겠다고 천명한다.

이 장면에서 시청자의 머리와 가슴에는 현재 대한민국 항  이슈가 겹쳐 떠오른다. 정치권에서 논의하고 있는 증세 논란이 그것. 복지 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증세가 필요한데, 과연 그 대상이 누가 돼야 할 것인가를 두고 정치권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이다.

새해가 밝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고있다. 이는 정부가 월급쟁이들의 연말 정산 혜택을 축소, 정권이 부유층에는 각종 혜택을 주면서도 만만한 서민에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있는 데 따른 불만 표출이다.

거역할 수 없던 아비인 선조에게 백성의 얼굴을 일갈하고, 왕이 되자마자 대동법을 시행한 광해. 그가 진심으로 백성을 생각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 거쳐온 길은 매우 험난하다.

적통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왕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선조의 노회한 정략에 휘말려 혹여나 왕의 자리를 넘볼까 시험의 대상이 되고, 밀려드는 왜군 앞에 먹잇감처럼 왕세자가 됐던 광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궁밖으로 내쳐진 그는 홀로 한양에 남아 왕가의 대표자로, 백성을 돌보며 진정한 왕으로 성숙해 간다. 그는 인생 막바지에 “평생을 나라를 좀먹은 선조가 나은 것이 무엇이냐? 왕의 자격에 타고난 신분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는 김도치에게 “그것은 권력과 재물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혼돈의 조선시대 ‘화정’

   
M본부 창사54주년 특별기획드라마 ‘화정’.

광해를 소재로 한 M본부의 새 월화드라마  ‘화정’이 13일 안방을 찾아왔다.

‘화정’은 화려한 정치의 줄임말로, 혼돈의 조선시대, 정치판의 여러 군상들을 통해 인간이 가진 권력에 대한 욕망과 질투를 그린 대하사극으로 50부작으로 기획됐다. 현재 2회 시청률이 11.8%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화정은 역대 최강의 연기자들이 포진, 벌서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화정은 차승원(광해군 역), 이연희(정명공주 역), 김재원(인조 역), 서강준(홍주원 역), 한주완(강인우 역) 등을 주연으로 김창완, 김규철, 강신일, 최종환, 엄효섭, 김광규, 이성민, 황영희, 박원상, 정웅인, 김여진, 신은정으로 이어지는 특급 캐스팅을 자랑한다.

박영규는 정명과 광해의 아버지이자 조선의 14대 왕 ‘선조’로 등장해 강렬한 극의 서막을 연다. 박영규 특유의 선 굵은 연기로 극의 초반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낼 예정이다.

김창완은 당색을 넘어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조선의 명신 ‘이원익’으로 등장해 청백리의 표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반면, 김규철은 인조반정의 총사령관이자 훗날 그 공으로 영의정에 오르는 인물인 ‘김류’를 열연, 권력욕에 찌든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여실히 그린다.

병자호란의 대표적 척화론자 ‘김상헌’ 역에는 배우 강신일이, 광해군의 형이자 성미가 급한 ‘임해군’ 역에는 배우 최종환이 연기 대결을 펼친다.

이성민은 최고의 지성이자 원칙과 소신, 엄격한 도덕적 신념을 깐깐하게 지켜나가는 한음 ‘이덕형’ 역을 맡아 선조 죽음의 진실을 파헤친다. 여기에 조성하와 엄효섭은 극중 막역지간인 ‘강주선’ 역과 ‘홍영’ 역을 각각 맡았다.

김광규는 조선에 없는 유황 광산을 찾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 ‘이영부’ 역으로 등장해 깨알 재미를 안겨주고, 박원상은 화기도감의 염초장인 ‘장봉수’ 역을 맡아 극에 인간미를 불어넣는다.황영희는 화기도감 주방의 책임자 ‘옥주’ 역으로 극에 활기와 재미를 더하고, 유승목은 광해의 처남이자 광해 집권기 동안 권세의 중심에 서는 인물인 ‘유희분’ 역으로 등장해 강렬한 신스틸러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광해 정권의 최대 실력자이자 정명의 가장 큰 적인 ‘이이첨’ 역에는 배우 정웅인이, 이임첨과 손을 잡은 궁인 ‘김개시’ 역할을 맡은 김여진은 악역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을 사로 잡는다.

신은정은 선조의 계비이자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은 ‘인목대비’ 역을 맡았다.

   
화정에서 광해군 역을 맡은 차승원 씨가 12일 막을 내린 서울모터쇼에서 화정 출연을 위해 기른 콧수염을 한 채 깜짝 등장했다. 정수남 기자

한편, 화정은 혼돈의 조선시대, 정치판의 여러 군상들을 통해 인간이 가진 권력에 대한 욕망과 질투를 그린 대하사극으로 ▲환상의 커플 ▲내 마음이 들리니 ▲아랑사또전으로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상호 PD와 ▲마의 ▲동이 ▲이산 등을 통해 M본부 사극을 이끌어 온 김이영 작가가 전통의 드라마 제작사 김종학 프로덕션과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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