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은행원이 일본 최대 벤처기업가 된 비결은 ‘혁신’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최근 한국경제의 저상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도전, 혁신, 미래를 보는 안목, 사회적 책임 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과 고용이 늘 수 있기 때문. 즉, 기업가정신이 회복되면 경기도 회복되고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면 경기도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월요신문>은 기업가정신과 한 나라의 경제수준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열정을 꿈으로 만든 글로벌 CEO 이야기를 연재한다. 아홉 번째 순서로 일본의 사업가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의 기업가 정신을 살펴봤다.

   
▲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CEO

일본의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라쿠텐(樂天)'의 최고경영자(CEO)인 미키타니 히로시(51)는 일본 IT업계를 선도한 1세대 벤처 창업가다. 그는 일본 인터넷 인구가 500만명에 불과했던 시기에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뒤, 맨손에서 일본의 대표 CEO로 올라선 인물이다.

미키타니는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의 2015년 일본 부호 순위에서 87억 달러의 재산으로 3위(세계 151위)를 차지했다. 업계는 항상 혁신을 추구하는 그의 사업가 정신이 오늘날의 성공을 이룩했다고 평가한다.

6명의 직원과 서버 1대로 시작

미키타니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만 해도 평범한 금융회사 직원에 불과했다. 그는 도쿄대와 교토대와 함께 일본 3대 명문 국립대로 꼽히는 히토쓰바시 대학을 1988년 졸업하고, 미즈호 투자은행의 전신인 일본흥업은행에 입사했다.

그러다 그는 회사 지원으로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 입학한 뒤 학업과 회사 경영을 병행하는 동창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기업가 정신'에 눈을 뜨게 된다. 미국에서 기업가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점에 자극 받아 "나도 언젠가 창업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미키타니는 1993년 귀국해 일본흥업은행 본점 인수·합병(M&A) 부문에서 소프트뱅크 기업 인수 안건을 다루는 등 은행가로서의 탄탄대로 길을 걸었지만 하버드 MBA 시절 꿈꿨던 창업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창업 의지를 실행에 옮긴 계기는 1995년 출신지 고베에서 일어난 한신 대지진으로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들을 잃으면서부터다. 당시 인생무상을 실감한 그는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미키타니는 창업을 결심, 동업자인 혼조 신노스케와 함께 1997년 2월 엠디엠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본격적인 사업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실제 그는 사업 아이템으로 맥주 제조와 빵집 체인점도 고려했으며, 컴퓨터 교실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그는 전자상거래가 성장할 것이란 확신을 갖고 단 6명의 직원과, 작은 서버 1대로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 이치바(Rakuten Ichiba)'를 출범시키게 된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못했다. 라쿠텐이 인터넷 쇼핑몰을 오픈할 당시만 해도 일본의 인터넷 쇼핑몰 시장은 상품 카탈로그를 제공하는 수준일 정도로 활성화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 이를 증명하듯 라쿠텐 설립 후 미키타니가 벌어들인 첫 달 매출은 10만엔에 그쳤다.

이후 미키타니는 일본에 있는 기존 2500개 업체를 낱낱이 조사했다. 이른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업체 홈페이지를 분석하는 일을 1개월간 계속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얻은 결론은 일본 전자상거래업체 대부분이 대기업이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탓에 상품 교체가 느리고, 입점 비용도 최대 월 100만엔(약 1023만원)에 달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미키타니는 이를 철저히 반면교사로 삼았다. 입점업체 스스로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형태를 취해 항상 새로운 상품 진열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들 업체가 라쿠텐에 주는 입점비용도 월 5만엔으로 파격적으로 낮췄다. 구매자들이 여러 입점업체에서 쇼핑을 해도 결제는 한 번에 끝낼 수 있게 하는 시스템도 제공했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스템은 갖췄지만 영업에 애를 먹었다. 지금과 달리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당시, 인터넷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렇다보니 중소 상인들에게 라쿠텐 이치바를 알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미키타니는 포기하지 않고 라쿠텐 이치바를 적극 알려나갔다. 동업자인 혼조와 영업부서 직원들은 전국 각 지역을 방문해 컴퓨터의 기본적인 사용법부터 시작해 라쿠텐 이치바 서비스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미키타니 본인도 하루 15시간씩 주 6일간 일하며 적극적인 영업을 했다.

인터넷 버블 붕괴 때 회사를 더 키워

엠디엠으로 출발한 회사는 1999년 6월, 지금의 라쿠텐 주식회사로 이름을 변경했다.

2000년 4월 라쿠텐은 창업 3년 만에 자스닥에 상장했다. 그때 위기가 또 닥쳤다. 라쿠텐이 자스닥에 상장한 후 거짓말처럼 인터넷 버블이 붕괴됐다.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시장에 쏟아졌다.

미키타니는 이를 기회로 삼았다. 포털 사이트 인포시크와 중고품 판매·매입 서비스인 이지시크를 운영하던 비즈시크, 무료 홈페이지 서비스를 제공하던 HOOPS, 축하 카드 서비스를 제공하던 와이낫, 골프장 예약 서비스를 이용하던 메디오포트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또 2002년에는 라이코스 재팬을 사들여 2003년 9월1일 인포시크와 합병했으며, 2003년에는 마이트래블넷과 DLJ다이렉트SFG증권을, 2004년에는 아오조라카드를 사들였다.

이후 라쿠텐은 옥션, 검색 포털, 여행, 서적, 게임, 방송, 티켓 등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쇼핑몰 사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라쿠텐'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한 것.

현재 라쿠텐은 은행과 보험, 여행과 미디어, 전자상거래기업을 망라하는 거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일본 내에서 더 이상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진 것. 1997년 오픈할 당시 13개였던 라쿠텐의 점포 수는 1998년 1월 91개, 1999년 1월 400개, 2000년 1월 2000개, 2004년 10월 1만개를 넘어섰다.

지난해 기준 라쿠텐의 회원 수는 1억명, 거래액은 약 20조원에 이른다. 라쿠텐은 포브스가 선정한 '2013년 세계 100대 혁신기업' 순위에서 아시아·태평양 기업 가운데 중국 바이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9위에 오르기도 했다.

미키타니가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일본 사회에서 돋보이는 기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업 철학이 한몫했다. 라쿠텐 본사에 들어가면 사무실 곳곳에 ‘성공의 다섯 가지 원칙’이 적힌 포스터를 볼 수 있다.

첫째 늘 개선하고 늘 전진하라. 둘째 열정적인 전문가가 되라. 셋째 가설제기 → 실행 → 증명 → 시쿠미카(시스템화) 넷째 고객 만족도를 극대화하라. 다섯째 빠름, 빠름, 빠름! 이다.

이 5개 원칙을 통해 미키타니가 던지는 메시지는 확고하다.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실천하고, 성공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나는 스스로 도전 정신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는다"며 "꿈과 희망으로 가슴이 뛰는 걸 좋아하며, 한 번 결정하면 저돌적으로 추진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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