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표현의 자유. 안녕들 하십니까?

[월요신문 김지수 기자] 대학가에 때 아닌 대자보 바람이 불고 있다. ‘김일성 만세’, 제목이 심상치 않다. 국가보안법에 걸릴 법한 이 대자보는 그러나‘표현의 자유’라는 거대 담론을 담고 있다.

‘한국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언론(정치)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나는 잠이 올(깰) 수밖에’.

대자보에 적힌 것은 고 김수영 시인(1921~1968)의 유작이다. 언론 검열에 찬성한 장면 정부와 조지훈 시인을 비판하며,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되새긴 작품이다.

2년 전 ‘안녕하지 못한 사회’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뼈있는 질문을 던졌던 대학가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가 안녕한지를 묻고 있다.

   
 

프리덤하우스 “한국 언론자유 67위”

전문가들은 “이들이 말하려 하는 것은 김일성 찬양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며 “‘독재자의 딸’‘전두환 만세’ 등 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논쟁이 확산하는 것은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많이 위축된 현실을 반증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국내 언론자유 수준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의 언론자유 평가에서 한국은 2011년 ‘자유국’ 지위를 상실한 뒤 ‘부분적 자유국’ 지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언론자유 지수(0~100, 낮을수록 자유로움)는 2013년 31점, 지난해 32점, 올해 33점으로 3년째 악화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199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아프리카 국가 나미비아와 함께 공동 67위를 차지했다. 인터넷 언론자유 지수 역시 최근 3년간 32점, 33점, 34점을 받으며 계속 나빠졌다.

프리덤하우스는 보고서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의 언론자유가 계속 위협받고 있다”며 “정부가 국가보안법에 점점 더 의존하고, 선별적으로 적용해 언론인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총평했다. 인터넷언론지수에 대해선 “세월호 참사 관련 수사 강화, 정부 검열을 피하기 위한 카카오톡 사용자들의 사이버 망명,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 사이버 공격 등이 주요 근거”라고 밝혔다.

정부가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 때 ‘유언비어 엄단’ 지침을 내린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정부는 메르스 감염 환자 발생 초기인 지난 6월 병원을 공개하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극에 달한 국민의 불안은 SNS를 통해 확산했으나 정부는 정보 공개 대신 “악의적인 허위사실이나 괴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고 대응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다. 수습 과정에서 여러 의혹이 제기됐는데 정부는 이를 유언비어로 규정하고 통제하려 했다.

지난 7월엔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인 리모트컨트롤시스템(RCS)을 불법 구매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특히 국정원은 국외용·대북용이라는 해명과 달리 카카오톡 검열 기능 및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해킹 방법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UN, 한국에 ‘진실 명예훼손 폐지’ 권고

유엔(UN)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는 지난달 한국에 ‘진실 명예훼손’ 폐지를 권고했다. 권력자가 수사기관을 동원해 자신의 비판 세력을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참여연대가 발간한 ‘국민입막음소송 보고서’에 따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정부정책 비판자들에 대해 제기한 소송 중 대부분은 무죄 또는 원고 패소 판결이 났다. 정부가 비판적인 목소리에 무차별 소송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에서 형사사건 24건 중 유죄가 인정된 것은 2건뿐이었다. 불기소처분 10건, 무죄 확정판결 3건이다. 고소 취하 7건, 수사 또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2건이다. 민사소송은 총 6건이었는데 국가·공무원 비판 시민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한 판결은 단 1건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선 총 9건의 소송이 제기됐다. 형사사건 5건, 민사사건 4건이다. 이 중 뉴스타파 최승호 PD의 국정원 간첩조작 보도 사건은 불기소처분,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홍가혜씨는 무죄(1심)를 받았다. 국가기관이 명예훼손 피해를 주장한 민사사건 1건은 기각됐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입막음소송의 공통점은 대부분 무죄 또는 원고 패소로 결론지어진다”며 “소송의 목적이 정당한 명예의 보호라기보다 정권유지에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불공정 심의’도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실은 보도는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는 반면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는 ‘주의’‘권고’ 등의 조치를 내리는 ‘고무줄 심의’가 비판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방심위는 인터넷상 명예훼손 글에 대해 제3자가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방심위가 직권으로 심의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강혁(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 변호사는 “(개정안은)자발적이고 막강한 지지·비호 세력을 가진 정치인, 기업인, 종교지도자 등에 대한 인터넷상 비판 여론을 신속하게 차단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있다”며 “이는 강제에 대한 약자·소수자의 비판 등 표현의 자유 및 이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의 심각한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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