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눈치 보더니 대통령 지적에 움찔하나


지난 3일 일반약의 슈퍼판매를 사실상 무산시켰던 보건복지부가 시민단체 등의 반발과 이명박 대통령의 불호령에 갑자기 재추진을 고려하고 있다. 약사회의 반대로 일반약 슈퍼판매를 포기했음을 알려 이후 이익단체인 약사회의 눈치를 봤다는 비난을 들었던 복지부는, 이미 추진해 온 사안을 뒤집은 것에 대해 대통령까지 지적하고 나서면서 또 한 번 다른 방향으로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다.

 

일반의약품의 편의점, 슈퍼 등 약국 외 판매 여부가 보건복지부 결정으로 사실상 무산되는가 싶더니 다시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재추진 급선회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약사법 개정 전이라도 현행 분류의 틀 내에서라도 국민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들일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며 지난 3일 복지부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포기 방침을 밝힌 것에서 급변경된 입장을 보였다.

 복지부는 약사회의 것?

복지부는 지난 3일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해 포기 입장을 밝혔었다. 복지부 김국일 의약품정책과장은 "특수장소 지정 확대 방안을 중심으로 (약국 외 판매를) 검토했으나, 약사회가 수용하지 않아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약사회의 반대로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가 사실상 무산됐음을 알렸다.
복지부는 이와 함께 국민들의 의약품 구매 불편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 마련 또한 약속하며, 이달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개최해 현행 의약품의 분류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알렸다.
그러나 이같은 복지부의 약속에도 불구, 시민단체들과 의사단체 등은 복지부의 일반약 슈퍼판매 방안 철회를 두고 반대입장을 강력히 시사하며 비난을 쏟아부었다. 복지부가 이익단체인 약사회의 눈치를 보며 일반약 슈퍼판매를 포기했다는 비난이 주를 이뤘다.
대한의사협회는 7일 프레스센터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수희 복지부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는가 하면, 전국의사총연합은 복지부 명칭을 '약사복지부'로 바꾸라고 비꼬아 말하기도 했다. 의사회는 또, 일반약 슈퍼판매를 촉구하는 가두 서명운동과 집회·시위 등을 통한 대정부 압박에 대한 계획을 꺼내놓기도 했다.
일반 국민들의 비난여론도 거셌다. 복지부 홈페이지에 마련된 자유게시판에는 지난 3일 이후로 복지부의 약사회 눈치 보기식 태도에 불만을 표하는 비난글들이 봇물을 이뤘다.
한 네티즌은 '약사회도 못이기는 대통령.. 참 한심하세요'라는 글을 통해 "일반국민의 70% 이상이 일반의약품의 슈퍼판매 정책을 찬성했는데, 복지부는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의 정책을 관철시키려는 조금의 노력도 없이 너무나도 쉽게 약사회에 백기를 들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음 아고라에는 '대한민국 약사님들 너무하십니다'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약사님들의 파워가 워낙 세다는 것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지만 국민의 편의가 우선이 돼야지 약사님들의 이익이 우선시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약사회의 반발로 슈퍼에서 감기약 등 가정 상비약 판매가 무산된 점은 무척 아쉽고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불만의 글이 올라왔다. 여기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리며 해당 게시판을 달궜다.
'가정상비약 시민연대' 측은 보건복지부에 대해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며 비판을 던졌다. 연대는 국민을 위해 존립하는 것이 정부이고, 따라서 복지부는 국민건강과 권익을 우선해야 하는데 국민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했다며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를 위해 약사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연대 측도 "자기 것이라고 내놓지 못하는 한 이익집단의 이기주의로 국민들의 불편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며 약사회의 입심에 흔들리는 복지부에 대한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국민 편익 고려해야"
그의 말 한 마디에…

국민적 비난 여론에 휩싸인 복지부에 결정적으로 입장을 바꾸도록 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7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 자리에서 진영곤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의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유보 과정을 보고 받고 "국민에게 필요한 조차인데 왜 그런 결정이 내려졌느냐. 전략을 잘 세워서 성사시켰어야 하는데 그걸 못 했느냐"라며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을 염두에 둔 듯 "고위직 공무원들이 사무관급 보고서에 얽매여 있다"며 "일하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는 모습이 답답하다"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가정상비약의 슈퍼판매가 국민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의약품 분류 논의를 통해 일반의약품 가운데 가정상비약을 슈퍼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약사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 "콧물이 나면 내가 아는 약을 사 먹는다. 그러면 개운해진다. 미국 같은 데 나가 보면 슈퍼마켓에서 약을 사 먹는데 한국은 어떠냐"면서 복지부에 일반약 약국 외 판매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던 바 있다.
대통령의 재추진 의사 표현까지 전해지자,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를 의식한 듯 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약사법 개정 전이라도 현행 의약품 분류의 틀 안에서 국민의 불편을 덜어드리는 최선의 조치를 마련하겠다"며 "15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약국이 아닌 곳에서 약을 판매하는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과 합의를 도출해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가정상비약의 슈퍼마켓 판매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약사회의 압력을 받고 눈치를 보던 복지부가 국민들의 계속된 비난여론과 대통령의 추진 의지에 방침을 뒤늦게 변경하기에 이른 것이다.
약사법 개정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약사회의 표심을 우려한 정치적인 논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모든 것은 15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거쳐봐야 최종적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약 슈퍼만매 재추진 소식이 들려오자 약사회 회원들은 약사회 홈페이지 내부게시판 등을 통해 갑자기 입장을 번복한 복지부에 대해 비난을 쏟아부으며 거센 반발의 기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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