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천국에 금수저도 있더라”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노량진 학원가는 우리 사회의 저층 단면을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은 대학입시생과 자격증을 목표로 열공 중인 중장년층, 이들을 주요 수입원으로 살아가는 상인이 모여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노량진 생태계의 제1원칙은 ‘적자생존’이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설파한 ‘적자생존론’은 이곳에서 무자비하게 적용된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를 두드리는 사람들, 그 삶의 현장을 찾았다.

1월 29일 금요일 오전 8시 방문한 노량진역사.

지난달 29일 금요일 오전 8시 노량진역.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학원 간판부터 눈에 들어왔다. 기술직 및 자격증, 교원 임용고시, 경찰·소방·어학 등 각종 전문 학원이 즐비했다. 노량진은 과거 입시 학원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 살펴보니 입시 학원보다 취업 전문 학원 수가 훨씬 많았다. 정확한 비율이 알고 싶어 동작구청에 문의했다.

“노량진 역 주변에 등록된 학원의 수와 종류를 알고 싶다”고 하자 구청 담당자는 “계량화된 통계는 없다”라고 대답했다. 왜 없는지 궁금했다. 학원도 사업장이라서 세금을 낼 텐데, 그 생각도 잠깐 눈앞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운동복 바지에 두툼한 패딩을 걸친 청년,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여성, 큼직한 백팩을 등짝에 지고 한 손에 쇼핑백을 든 청년 등 복장이 다들 비슷비슷했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빠서” “나중에” “아직 밥도 못 먹었어요” 등등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쇼핑백을 든 채 다소 느릿하게 걷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 슬쩍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니 도시락과 옷가지 등이 담겨 있었다. 잽싸게 말을 걸었다.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뭐하시는 건데유”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청년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을 공시생이라고 했다. 그는 “홍성에서 올라왔는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5개월 됐다.”고 말했다. 충청도 청년의 이름은 김정현씨. 나이는 27세.

가장 큰 애로점이 뭐냐고 묻자 곧바로 “생활비요.”라고 대꾸했다. 김씨는 “학원비가 더 부담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지내보니 생활비가 훨씬 많아 들었다. 학원비는 40만원이지만 고시원 한달 비용 35만원 독서실 15만원 식비에 휴대폰 요금 등을 합치면 월 최소 120만원은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알바를 할까 생각도 했지만 포기했다. 주위에서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는 공시생을 봤는데 너무 힘들어 하더라”고 말했다.

노량진학원가의 취업 전문 학원. 

공시생 연령 갈수록 낮아져

학원 인근 병원 앞에서 만난 공시생 박한성씨(29세)는 벌겋게 눈이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박씨는 “이것저것 신경쓰다보니 눈에 뭐가 나서 낫지를 않는다. 7급 일반행정직을 준비한지 2년 정도 되는데 전에 없던 신경성 위염도 생겼다”고 말했다.

하루 일과에 대해 묻자 박씨는 “오늘 아침 6시에 집에서 나왔다. 오후 1시에 수업이 끝나면 10시까지 줄곧 공부만 한다. 더 하고 싶지만 체력 부담이 커 취침 시간에 맞춰 자는 편이다”라고 일정을 소개했다.

박씨의 고민도 앞서 만난 김씨와 같았다. 바로 ‘돈’ 때문이다. 다른 건 박씨는 알바를 하고 있다는 점. 박씨는 “현재 독서실 총무로 일하고 있다. 돈을 받고 일하는 독서실 알바도 있지만 내 경우는 무임금 알바다. 정식으로 일하면 30~40만원 정도는 받지만 그만큼 시간에 얽매야 한다. 쉽게 말해 ‘자리값’만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햇다.

박씨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점심은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저렴한 식사 위주로 때운다. 박씨는 이런 말도 했다.

“노량진 학원이 예전에 비해 달라졌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많이 늘어났다. 2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청년실업난 때문인지 갈수록 공시생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그만큼 경쟁이 심해질 것 같아서 내심 걱정이다”

고시생들은 대부분 편안한 트레이닝 바지에 슬리퍼 차림이다.

노량진 학원가의 커플족

이번에는 경찰전문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2인용 책상이 다닥다닥 붙은 강의실에서 만난 우충호(30세)씨. 우씨는 오전부터 3시간동안 헌법 강좌를 들은 후 잠시 쉬는 중이었다. 우씨는 경찰 전문학원에 등록한 동기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경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주변에서 대기업에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하는데 내 경우는 아예 이쪽으로 올인했다. 본가가 잠실이지만 왕복하는 시간도 아까워 근처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씨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불안감이다. 부모님이 1년 안에는 어떻게든 결과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스스로 생각해도 서른 살 나이에 아직 백수라는 사실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안형근(24세)씨는 자격증파다. 건축기사가 꿈인 안씨는 “다음 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제 정말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국가공인 자격증에 더 집중하게 된다”며 “학교 기숙사도 나오게 돼 근처 고시원에서 단기적으로 머물고 있다. 지원해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먹는 거, 생활하는 거 최대한 아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책값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번에 산 자격증 관련 책만 5권인데 8만원이 넘는다. 책값이나마 벌려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중 운좋게 임용고시 커플을 만났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나 5개월째 사귀고 있다는 오상준(27세)‧김혜미(27세‧)씨. 이 커플이 일반 커플과 다른 점은 첫째가 ‘공부’고 둘째가 ‘연애’다.

오씨는 “여기 생활은 다 개인플레이라고 보면 된다. 혼자 공부하고, 혼자 스스로를 챙겨야 하고... 그러다보면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할 때도 있다. 외로워질 수 있는 시기에 같이 (고시를) 준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의지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애가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혜미씨는 “우려의 시선으로 볼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주위에서 고시 커플을 가끔 보는데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동기부여가 돼 도움이 된다. 가장 큰 목표는 합격이니까 서로 열심히 공부하자고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 공무원 전문 학원의 '2015년도 7,9급 국가공고문시험계획공고문' 

노량진학원가에는 옷가게가 없다?

노량진 학원가는 수요와 공급의 일치가 적나라하게 입증되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노량진 학원가는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그 없는 것 중에는 하나가 옷가게다. 옷가게가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는 비싼 임대료에 비해 찾는 손님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노량진 학원가는 강남과 다르다. 그래도 그렇지 사회 곳곳에 만연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노량진 학원가에는 없단 말인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학원가 일대를 뒤졌다. 가장 많은 곳이 음식점이었다. 그런데 이 식당에도 공시생간 양극화 현상이 존재했다.

흙수저 공시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고시식당이다. 고시 식당의 한끼 식대는 3700원(1개월치 식권을 살 경우)이고 현금은 4500원이다.

고시식당 외에 다른 식당들도 음식값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기자가 식당 곳곳을 둘러 가격표를 확인한 결과, 노량진 학원가 일대 식당 음식값은 서울에서 단연 최저이고 OECD 국가의 주요 도시 식당과 비교해도 월등히 저렴한 편이었다.

예를 들면 베트남음식점 쌀국수값이 3900원이며 만두를 파는 식당에서는 만두 한판(10개~12개)에 1500원이다. 베트남 쌀국수는 강남에서는 10000원은 족히 줘야 먹을 수 있으며 다른 동네에서도 5000원 이상 받는다. 만두값 역시 매우 싸 유커들이 모르기 다행이지 만약 안다면 만두가게를 쓸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싼 곳은 국수집 만두가게 뿐만 아니었다. 카페에서 파는 커피값은 아메리카노 한 잔에 1000원 자몽쥬스는 2000원에서 2500원에 팔았다. 서울 시내 다른 카페에서 자몽쥬의 평균값이 7000~8000원에 비하면 3배 저렴하다.

반면 비싼 음식점이 있긴 했다. 프랜차이즈 식당이다. 퓨전짬뽕전문 '니뽕내뽕' 새마을식당 등으로 음식값이 서울 시내 다른 음식점과 가격대가 비슷했다. 거의 모든 공시생들이 5000원 이하 음식만 사 먹는데 저런 음식점도 손님이 있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손님은 제법 있었다.

노량진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자격증에 도전하는 중장년층

나이 지긋한 늦깎이 공시생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 적용됐던 응시연령 상한제가 폐지되며 제2의 인생도전에 나선 40~50대 중장년층이 노량진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

1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황모씨는 “성향과 맞지 않은 회사에 들어가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복지나 급여도 불만스러웠다. 가족 부양 때문에 꾸역꾸역 다녔지만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만 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며 말문을 떼었다.

황씨는 이어 “나이가 마흔살이 다 되다보니 아무래도 주변 시선에 위축될 때가 많다. 하지만 합격하면 정년이 보장되니 열심히 해서 꼭 목표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전문학원에서는 중장년층의 모습이 특히 눈에 띄었다. 강의실엔 100명이 넘는 수강생이 빼곡이 앉아 공부에 열중했다.

이곳에서 만난 양형란(45세‧)씨는 “전업주부인데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게 싫어서 도전하게 됐다. 여기 학원에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말은 학원에서도 확인됐다. B공인중개사학원 관계자는 “30대부터 50대까지 중장년층들의 수강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학생 비율로 따지면 100명 중 40% 정도는 중장년층이다. 대부분 재취업이 어려워 자격증을 따서 새롭게 도전하려는 분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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