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엔 ‘녹색 얼굴의 악마’ IS엔 ‘저승사자’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세계 각국은 특수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특수부대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다. 그린베레, 레인저, SEAL, 포스리콘, 델타포스와 데브그루 등 6개가 넘는다. 이밖에 영국의 SAS와 이스라엘 사이렛 매트칼, 러시아 스페츠나츠, 프랑스 외인부대 등 다양한 특수부대가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테러의 위협이 점증하고 있는 가운데 특수부대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는 것. <세계의 특수부대> 세 번째 순서로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실과 델타포스에 대해 알아봤다.

 

<사진출처=뉴시스>

네이비실

네이비실(Navy SEAL)은 미국 해군 소속의 특수부대다. SEAL은 해상(Sea), 공중(Air) 지상(Land)을 의미하며, 육해공 어디서나 활동할 수 있는 전천후 부대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네이비실은 1962년 1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명령으로 창설됐다. 1961년 쿠바사태 당시 피그만 침공 작전이 실패하자 케네디는 특수부대와 비정규전 능력 강화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당시로서는 큰 예산인 430만 달러가 해군특수부대 창설에 투입되었고, 1962년 1월 1일 네이비실이 탄생하게 됐다.

네이비실의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선에서의 수중장애물 제거와 수중침투 임무 수행을 위해 창설된 수중폭파대(UDT)에서 시작한다. 한국전쟁에서도 UDT는 큰 활약을 하는데, 수중침투와 수중장애물 제거, 해안 정찰 및 해안 기습타격 뿐 아니라, 때때로 내륙 깊숙히 침투해 교량, 철도, 터널 파괴, 병참선 교란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작전반경을 넓혀 왔다. 한국전쟁 때의 이러한 성과는 훗날 네이비실을 창설하게 되는 기반이 된다. 1962년에 드디어 해중, 해상 작전 뿐 아니라 육상 특수전 능력과 공중침투 능력까지 완비한 네이비실이 창설돼 본격적인 육해공 전천후 특수부대로 거듭나게 됐다.

네이비실은 해군 특수전사령부의 지휘체계 아래에 있으며, 해군특수전사령부는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통합하여 특수작전을 관장하는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의 지휘를 받는다.

현재 네이비실은 8개의 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SEAL 6팀’은 1987년 대테러 특수전개발단(DEVGRU)으로 재창설되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수전개발단은 백악관이 지정하는 매우 민감한 작전만을 수행하는 ‘네이비실 소속 특수부대’이다.

네이비실 1개 팀은 약 3백 명에 이른다. 팀은 다시 3개의 지역대로 나뉘는데, 지역대는 다시 2개의 소대로 나뉜다. 소대는 실팀의 최소 작전 단위다. 각 소대는 2명의 장교와 14~16명의 부사관과 사병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반드시 소대 단위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며, 임무에 따라 소대는 2개의 분대나 4개의 화력팀(4~5명의 대원)으로 나뉘어 전투에 투입되기도 한다.

네이비실 대원이 되려면 8주간의 기초훈련, 24주간의 수중파괴훈련, 28주간의 적성훈련을 포함해 총 30개월에 걸친 훈련을 최종 통과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의 80%가 탈락한다. 선발과정은 엄격하다. 체력 소모가 커 부상을 입더라도 그로 인한 특혜나 봐주기는 허용되지 않는다. 큰 부상을 입으면 자동으로 탈락된다. 지원 기회도 단 한 번뿐이다. 특히 1주일간 잠을 안 재우고 극한의 고통을 경험하게 하는 ‘지옥주(Hell Week)’ 과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네이비실이 유명세를 탄 것은 베트남전쟁 때였다. 네이비실은 메콩델타 지역에서 베트콩에 대한 수색정찰이나 매복기습작전을 수행하면서 ‘녹색 얼굴의 악마들’이란 별명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네이비실은 발전을 거듭했다. 80년대에 있었던 그레나다 침공(1983년)과 파나마 침공(1989년) 때 실팀은 선봉에 투입돼 임무를 수행했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네이비실 대원 6명이 쿠웨이트 해안에서 기만상륙작전을 실시함으로써 이라크군 2개 사단병력의 발을 묶기도 했다. 걸프전 이후에는 영화 ‘블랙호크 다운’으로 유명한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전투에도 참가했다. 보스니아에서는 영국 SAS와 함께 전범 체포 작전을 수행하면서 스레브레니차 학살극의 주범을 체포하기도 했다.

네이비실은 모든 전투에서 용맹성을 보였는데, 특히 2005년 6월에는 탈레반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한 레드윙 작전을 수행하다가 12명의 대원을 잃기도 했다. 이라크에서도 네이비실의 활약은 돋보였다. 전쟁 초기에는 주로 항만과 해안유류저장소 또는 남부의 유전지대를 기습 장악해 아군의 주요 보급로를 확보했다. 또한 이라크군에게 포로로 잡힌 제시카 린치 일병의 구출작전에도 성공해 유명세를 떨쳤다.

이라크 전선에서 네이비실은 전쟁사의 또 다른 신기록을 세웠다. 3팀 소속 저격수 크리스 카일 중사는 160여 명을 저격에 성공,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저격수로 꼽혔다. 실제로 카일 중사는 반군이 넘쳐나던 라마디와 사드르시티에서 아군 엄호 임무를 수행하면서, 한 발로 적 2명을 사살하거나 2km 거리에서 오발 없이 단 한 발의 저격으로 적을 사살하는 등 영화 ‘스나이퍼’의 주인공을 방불케 했다.

네이비실은 이후에도 굵직굵직한 사건에 최우선으로 투입되었다. 그중 가장 손꼽히는 임무는 2011년 5월 1일에 있었던 오사마 빈 라덴 제거작전이었다. 최정예인 특수전개발단이 투입돼 불과 30분만에 빈 라덴을 사살하고 주요자료를 회수했다. 9.11 테러로 발생한 미국의 대테러 전쟁의 종지부를 네이비실이 찍은 것이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요인 추적과 암살 작전 위주로 임무가 재편되고 정치적 목적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활용되면서 민간인 대량 살상 논란 및 대원들의 정체성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2002년 ‘오메가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작전에서 네이비실 요원들은 파키스탄의 무장단체 조직원들을 제거한 뒤 DNA분석을 위해 사람의 손가락을 자르거나 두피 일부를 뜯어내는 일까지 수행했다. 하룻밤 출격에 15∼25명씩 사살하는 게 일상이 됐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도 대거 발생했다. ‘최정예 군인’이 ‘인간 사냥꾼’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최근엔 군 당국이 임무 수행에 적합한 헬멧, GPS, 지혈대 등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 대원들이 개인 돈으로 구매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계 최강이라는 명성과 동떨어진 후진적 보급체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델타포스

델타포스(Delta Force)는 미국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소속 특수부대다. 정식 명칭은 ‘제1특전단 델타 작전 분견대(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

미국의 다른 특수부대와 달리 특수전사령부(USSOCOM)의 통제 체계에서 벗어나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지휘체계 아래에 있다. JSOC산하에 있는 부대는 특수부대 가운데서도 가장 비밀을 요하는 임무만을 수행하는 부대로서 해군의 특수전개발단(DevGRU)과 육군의 160항공단, 공군의 제2항공사단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델타포스는 특전단 장교 출신이며 영국 육군 공수특전단(SAS)에서 근무한 바 있는 찰스 베크위드(Charles Beckwith)에 의해 1977년 11월 창설됐다. 당시 미 육군 특전단(Green Berets)의 게릴라전 위주의 임무수행방식에 한계를 느낀 베크위드가 SAS처럼 직접타격에 중점을 둔 새로운 특수부대 창설의 필요성을 미군 수뇌부에 설득한 결과였다.

델타포스는 주로 해외에 거주하면서 정규군이 투입되기 힘든 상황에 뛰어들어 요인암살, 대사관 및 항공기 인질 구출 작전, 마약 및 핵물질 밀매단 와해 공작, 적 기지 파괴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한다. 델타포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구출 작전 때였다. 당시 헬리콥터가 C-130 수송기에 충돌하는 사고로 작전이 실패하고 대원 상당수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델타포스가 뭐냐고 물어오는 기자에게 군 관계자가 “델타포스는 항공사 이름입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델타포스는 비밀스런 존재였다.

미 육군 특전단에는 크게 세 가지의 분견대가 있다. A분견대는 실제로 작전에 투입되는 특전 팀이고, B분견대는 A분견대를 지원하는 특전단 지역대 본부이며, C분견대는 A와 B분견대를 지원하는 특전단 대대 본부이다. 특전단의 편제에는 원칙적으로는 세 분견대만 있는데, 가끔 D분견대를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 D분견대가 델타포스 대원들을 뽑는 창구 역할을 한다.

통상 5년 이상의 군 경력자 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엄격한 체력과 지적 능력 및 심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부대원들이 다시 6개월 동안 저격술, 폭파술, 차량도피술, 요인경호술 등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최종 검정을 거쳐야 정식 대원이 된다. 대원으로 선발된 후에도 1년 동안은 오로지 실전용 훈련만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명성이 자자한 미군 특수부대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초특급 정예부대로 인정받는다. 미군 내에서 이들과 맞먹는 특수부대는 미 해군 특수전개발단정도다.

훈련을 마친 대원들은 적국에 대한 군사공작이나 첩보활동, 대테러 작전 수행, 요인 암살 및 납치 등 일반 특전단이 수행하기에 위험도나 민감도가 높은 임무에 투입된다. 임무의 특성상 체력이나 정신력뿐만 아니라 빠른 두뇌회전,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요구된다. 따라서 대원 전원이 기본적으로 2~3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소지한 대원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델타포스는 사령부 소속이지만 독립적 예산과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대원들의 신분 보안도 철저하게 유지된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 머리를 기르거나 염색을 하는 것은 기본이며, 실제 작전에 나갈 경우를 제외하면 근무시간에도 사복을 입고 다닌다. 어쩔 수 없이 군복을 입을 때도 군복에 붙이는 패치를 떼는 경우가 많다.

부대 규모는 기밀로 되어있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최대 2,000명 정도로 구성되며, 실제 작전에 투입되는 오퍼레이터 요원은 300명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델타포스는 이란 인질 구출 작전에서부터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간 침공과 대 테러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자리매김했다.

막강한 델타포스도 연속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2014년 7월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 ▲2015년 1월 이탈리아 여성 인질 두 명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한 명 등 세 명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IS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 이후 델타포스는 2015년 5월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IS 고위 지도자인 아부 사야프를 사살하고 그의 아내를 체포하는 개가를 올림으로써 명성을 회복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