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할둔과 에드워드 기번의 경고

김재홍 시인.

“해질녘 산들에 비치는 그늘처럼 마그레브 전체에 서서히 밀려오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이 ‘그늘’을 내가 설명해야 한다.” 이븐 할둔(Ibn Khaldūn, 1332-1406)은 그의 대작 『역사서설』 서문에서 수백 년 동안 이슬람 세력권에 있었던 지중해 연안의 대영역이 서방 기독교 세력의 지배력 아래로 전이되고 있던 상황을 이처럼 뛰어난 시적 표현에 담았다.

지중해 일대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 이래 아랍 세력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이븐 할둔의 시대에 서서히 ‘그늘’이 되고 있었다. 마그레브(Maghreb)는 오늘날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북서부 아프리카 지역이다. 이 지역은 11세기부터 알모라비데 제국(1056-1147)과 알모하데 제국(1120-1269) 등 강력한 국가가 융성했다가 몰락한 곳이다.

이븐 할둔은 강력한 제국이 왜 시간 앞에서 몰락하게 되는지를 문제시한 역사가다. 그에 따르면 알모라비데 제국과 알모하데 제국은 유목적 기반에 군사적 요소가 더해져 강력한 국가로 성립되었으나, 군사적 아사비야(asabiyya)가 퇴색하면서 몰락을 맞았다. 아사비야는 일종의 공공정신이나 사회적 연대감, 집단의 응집력·결속력 등을 의미한다. 이븐 할둔은 국가의 흥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사비야라고 했다.

국가가 강성해지면서 물자가 집중되는 왕가의 터전으로 국력의 상당량이 집중되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도시 문화적 요소를 한층 강화시키면서 당초 가졌던 유목적·군사적 성격의 아사비야를 점차 잃어가게 된다. 도시화는 사람들의 생활 편의를 증진시키기는 하지만, 동시에 도시를 방어할 수 있는 결속력과 집중력을 약화시키는 모순을 띠게 된다. 제국의 부가 쌓여 있는 도시에서 제국민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고 그것은 유목민들의 강한 야전적 움란(Umran, 한 집단의 생활·심성·문화 등의 총칭)을 위축시키다가 결국 폐망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흑인 국가까지 가는 상인들은 다른 상인보다 더 안락하고 부유하다. (금, 상아 등) 물건이 비싸고 귀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매우 빨리 큰 부자가 된다. 동방과 거래하는 상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무역상은 대재산의 정점에 있다. … 그의 부는 정부 고위 인사와 연결되고, 높은 명성을 갖게 하고, … 그때부터 그는 상업 실무를 벗어나고, … 경멸하고, … 할 일을 스스로 금지하고, … 자신은 명예롭고 위엄 있다고 생각한다.” 할둔은 이와 같은 단적인 예를 통해 유목민들의 강인하고 튼튼한 ‘움란 바다위(badawi)’가 퇴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븐 할둔은 결국 국민들이 국가의 성쇠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아무리 강력한 왕조라도 국민의 보편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강인한 성격을 지속하지 못 한다면 언제든 쇠망의 길로 빠지게 된다는 것을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북아프리카 지역이 영광스런 과거 제국의 교훈을 바탕으로 더욱 활기차고 흥성한 국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아사비야와 움란 바다위를 확고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19세기를 거치면서 북아프리카 일대는 서유럽 제국주의의 분할 통치의 대상이 되었다가 20세기 들어 각각 독립을 했다. 이븐 할둔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것은 마그레브 지역만이 아니라 국가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민족에게 요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의 관심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왜 그 강력한 로마는 몰락하고 말았는가. 왜 제국은 더 오래 지속되지 못 하고 사라지고 말았는가. 기번 역시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잊고 싶지 않은 영광의 시절을 안타깝게 반추했을 것이다.

“서기 2세기의 로마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토와 가장 문명화된 인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광대한 군주국의 변경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명성과 엄격하게 훈련된 용맹으로 지켜졌다. 법과 관습의 온건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은 점진적으로 모든 속주들을 하나로 결속시켜 나갔다. 그곳의 평화로운 주민들은 부와 사치를 마음껏 향유하고 또 남용하기도 했다.”

평화와 풍요는 제국의 군인 정신과 용기를 쇠퇴시켰다. 향락과 사치 속에 빠진 제국민은 강력한 야전적 기질에다 생존을 위해 달려드는 북방 야만족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로마인들은 야만인들에 의해 자유를 상실하고 국가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과거 공화정 로마는 달랐다. 로마 공화국의 시민들은 비르투(Virtue, 공적 미덕)를 가지고 스스로 무장을 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곧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로마인들은 공동체의 일을 자기 일로 여기며 헌신과 희생을 할 줄 알았다. 사적 이해관계와 공적 가치가 일치된 로마 공화국은 초강대국이자 세계 최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토가 커지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초래되고, 넓은 영토만큼 그 군사적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용병을 써야 했고, 용병에게 줄 급료를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자원을 빼앗아 와야 했고, 그것은 항상적인 전시 상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시민이 곧 군사였던 자기 동일성이 사라지자 단지 직업 군인에 불과한 병사들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휘관과 본인을 위해서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반대로 영토가 넓어진 만큼 대토지 소유자가 많아지자 그들은 ‘비르투’를 잊어버리고 오히려 잉여물자를 통해 사치를 누리게 되었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공화국은 제국으로 변신했지만, 옛 영광이 재현되기는커녕 황제 자리는 끊임없는 반역의 위기 속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만성화되었다.

결국 황제 개인의 능력에 제국 전체의 운명이 결정되는 불안정한 체제는 지속적인 부침을 겪게 마련이었다. 사치는 부패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부패의 원천은 결국 전제정 로마에 있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은 영역의 과잉 팽창에 동반된 향락과 사치였다.

민주주의가 더 이상 ‘타는 목마름’이 아닌 시대에 이븐 할둔과 에드워드 기번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영어의 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까지 바쳐 쟁취한 우리 시대의 자유와 고도 산업화의 열매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건강성과 긴장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움란 바다위나 비르투와 같이 자유에 대한 열망과 부강한 국가에 대한 희망을 우리 스스로 더욱 강하게 내면화시켜야 한다.

그것에 이르는 길은 우리 앞에 있는 실질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그것에 충일한 태도를 견지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절대 가난에 인간적 위엄까지 위협받던 때를 기억하고, 보편적 자유가 탄압받던 시대를 상기해야 한다. 동시에 추상화된 이념의 눈이 아니라 현실을 본모습 그대로 보려는 의지를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소중한 터전을 지키고 우리 삶의 현재적 조건을 발전시킬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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