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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 6개월을 앞두고 서방 언론의 집중 성토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코노미스트 보도다. 이코노미스트는 2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실패한 총장이자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라며 혹평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 이유로 “반 총장은 강대국에 맞서는 것을 싫어한 활기 없는 총장이다. 반 총장이 10년이나 임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능력과 자질 때문이 아니라 5개 상임이사국이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무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유엔 창설 이후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은 총 8명이다. 1946년 제1대 트리그브 할브란 리 총장에 이어 8대 반기문 총장까지 70년간 8명이 임명돼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사무총장을 출신지를 살펴보면,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지구촌 전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미소영불중(美蘇英佛中) 등 강대국 출신 사무총장은 한 명도 없다. 이유는 유엔 상임이사국에서 사무총장 후보를 내지 않는 관행 때문이다.

유엔사무총장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본지가 전세계의 권위 있는 언론매체와 학계의 평가 기준을 분석한 결과, 역대 유엔 사무총장은 △적극적 지도자형 △신중한 외교관형 △소극적 관리자형 세 가지로 분류됐다.

‘적극적 지도자형’은 국제사회의 여러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결한 전례가 많았다. 언론은 이런 사무총장을 높게 평가했다. 반면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 관리자형’에 머물렀던 총장들은 “무능하다”고 비판했다.

적극적 지도자형

가장 대표적인 ‘적극적 지도자형’은 제 2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스웨덴 출신의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old)다. 냉전 중에 사무총장직을 수행했음에도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추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함마르셸드는 “역대 유엔사무총장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함마르셸드가 1953년 유엔사무총장에 임명되었을 때 전 세계의 언론은 “강대국 모두 서로를 자극하지 않을 무난하고 조용한 사람”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함마르셸드는 이 예상을 보기좋게 깼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다그에게 맡겨봐’라는 말이 국제사회에 통용될 정도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표적인 예가 ‘북경해법(Peking Formula)’로 알려진 중공과 미국 간 갈등이다. 1954년 유엔군사령부 소속 미공군 정찰기가 중국 상공에서 격추되어 15명의 조종사들이 억류됐다. 한국전쟁 휴전 이듬해였다. 당시 미국은 “억류된 조종사들을 귀환시키지 않으면 군사적 조치를 하겠다”고 압박했고,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떠한 잘못된 행동에도 막대한 피해가 따를 것”이라며 강력 대응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다그 함마르셸드는 북경을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이는 당시 전세계 언론이 앞다퉈 보도했을 정도로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이었다.

함마르셸드는 방문 전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유엔총회를 대변하는 사무총장이 아닌 유엔헌장의 정신에 입각한 독립된 사무총장 자격으로 간다”라며 방문 성격을 분명히 했다. 함마르셸드와 당시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는 수차례 논의 끝에 억류된 미국 승무원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함마르셸드의 이런 행동은 유엔사무총장의 역할을 빛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밖에도 함마르셸드는 1956년 수에즈 전쟁, 레바논 분쟁과 라오스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태를 해결했다. 1960년 콩고에서 내전이 발생했을 때도 함마르셸드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과정에서 함마르셸드는 의문사 한다. 1961년 11월 18일, 잠비아 상공에서 함마르셸드가 탄 비행기가 추락한 것. 사후 함마르셸드는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제 1대 사무총장을 지낸 노르웨이 출신의 트뤼그베 할브단 리와 제 7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코피 아난 역시 ‘적극적 지도자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할브단 리는 “사무총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유엔의외연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 이스라엘과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지원했으며 소련군의 이란 철수와 카슈미르 분쟁 중재를 위해 노력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소련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는 한편 유엔의 대한민국 지원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렇다고 미국 유럽 등 서구 강대국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존재를 인정해 유엔에서 중국의 대표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0년 미국 등 강대국의 수도에 '평화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세계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사를 잇달아 개최했다. 그 와중에서 미국 정계 실력자와도 맞붙었다. 미국 상원의원 조지프 R. 매카시가 벌인 ‘유엔 내 용공분자 색출 조사’에 맞선 것. 조사 결과 “유엔 내 미국을 전복시키려는 세력이 있다”는 매카시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할브단 리는 6년 9개월 재임 후 사무총장직을 사임했다. 사임 후 저서 ‘평화를 위하여 (In the Cause of Peace)’를 펴냈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 총장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의 말단 직원에서 출발해 1997년 제7대 UN 사무총장에 올랐다. 아난 총장은 취임 초기부터 유엔의 방만한 조직을 통폐합하는 등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또 국제사회의 인권 유린 사태에 유엔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도주의 개입 원칙’을 확산시켰다. 이 공로로 그는 200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2년 만장일치로 재임에 성공했다.

아난 총장은 퇴임사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이 직책에 근무했던 시절이 그리워질 것"이라며 “희망에 찬 우리 공동의 미래를 위해 강인한 의지를 갖춘 사람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신중한 외교관형

‘신중한 외교관형’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미얀마 출신의 우 탄트(U Thant) 사무총장으로 개발도상국 및 아시아 출신으로서는 최초다.

우 탄트는 냉전구도 하에서 ‘신중하고 조용한 외교’로 세계 곳곳의 무력충돌을 조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71년까지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3선 연임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했다.

제 5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페루 출신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도 ‘신중한 외교관형’에 속한다. 1982년 취임 당시 지속된 냉전으로 유엔의 영향력이 약화된 탓도 있었지만 케야르는 임기 동안 ‘중도적 외교관’ 역할을 견지해왔다. 그는 세계 평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빈곤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6대 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도 ‘신중한 외교관형’에 속한다. 이집트 출신인 그는 국제사회로부터 중동 사태를 해결하는 적임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성과는 부진했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대규모 기아 사태에 대한 해결에 나섰으나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때 유엔이 제 역할을 못했다며 비판을 받았다. 앙골라 내전 종식 노력도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96년 사무총장직 재임을 꾀했으나 미국의 거부권행사로 좌절됐다. 역대 유엔 사무총장 중 연임에 성공하지 못한 총장은 그가 유일하다.

소극적 관리자형

‘소극적 관리자형’에 속하는 인물은 오스트리아 외교관 출신의 제 4대 사무총장 쿠르트 발트하임이다.

발트하임 재임 당시 유엔은 중국의 상임이사국 진입과 신생독립국들의 적극적 활동 등으로 힘의 균형이 변하고 있었다. 이에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은 사무총장이 상임이사국의 권한을 약화시키지 못하도록 견제를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트하임은 ‘적극적 지도자’보다는 ‘소극적 관리자’로서 역할에 충실했다. 그는 ‘회원국의 요청이 있을 때에만 사무총장이 개입 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 재임 당시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내 역할은 의례용일 뿐”이라는 자조적 평가는 “역대 가장 소극적인 사무총장”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맞물린다.

제 8대 반기문 사무총장은 퇴임 후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와 관련해 해외 주요 언론의 평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21일 반 총장에 대해 “실패한 총장이자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이라며 혹평했다. 이 평가는 정당한 것일까.

2009년 이코노미스트는 반 총장에 대한 평가 자료를 내놓은 적이 있다. 세부 평가 항목을 살펴보면 ‘강자에 대한 진실성’ 항목은 10점 만점에 3점, ‘조직 운영능력’ 10점 만점에 2점 ‘기후변화’ 8점 ‘평화유지 역할’ 6점을 받았다. 이코노미스트는 평가 말미에 “반 총장이 특유의 성실함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도 표현했다. 즉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십에는 못 미친다는 것. 이코노미스트는 반총장 취임 1년이 지났을 때도 유사한 평가를 한 바 있다.

외교전문지 폴린 폴리시도 반총장의 리더십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폴린폴리시는 2009년 반 총장을 가리켜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라며 비판했다. 폴린폴리시는 그 근거로 “국제적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유엔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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