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분열 상태, 남한부터 통합해야”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25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주도 서귀포의 롯데호텔에서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간담회에 참석했다. ‘반기문 대망론’이 한창 꿈틀대는 시점에 한국을 찾은 반 총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반 총장은 모두발언에서 “오늘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한 많은 의견교환이 있길 바란다. 제가 유엔 사무총장을 성공적으로 마감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좋은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반 총장은 먼저 10년 가까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근무한 소회를 밝혔다. 반 총장은 “흔히 유엔 사무총장을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이라고 한다. 내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결심한 것도 ‘불가능한 직업’을 ‘가능한 직업’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취임 이후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100m 경주를 하는 기분으로 계속 뛰어왔다. 지난 10년 동안 국제사회에 생각할 수 있는 나쁜 일이 한꺼번에 몰아 닥쳐 전임 총장들에 비해 일도 몇 배나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얘기도 많이 나오고 국제사회가 느끼는 감정이나 좌절도 많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협정 체결에 보람 느껴

반 총장은 또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하는 업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나름 잘 했다고 할 만한 것으로는 ‘기후변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한 점과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향을 제시한 ‘지속가능발전목표’의 채택에 기여한 점 등을 들 수 있겠다”고 말했다.

최근 외신들로부터 쏟아진 “전 총장들에 비해 강대국들에 맞서는 것을 싫어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한 발언도 나왔다. 반 총장은 “나는 가능한 약자 편에 서서 독재자들에게 쓴 소리를 했다”며 “강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고 몇 년에 걸친 협상 끝에 이란 핵문제도 해결했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북한과의 관계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반 총장은 “정치적 문제와는 별도로 인도적 문제를 통해 물꼬를 터놓는 게 좋다. 북핵 문제로 대북 압박을 하는 과정에서도 인도적 문제를 통해 대화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이어 “북한과의 고위급 대화 채널을 계속 열고 있다. 남북 간 대화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제가 유일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무총장직 퇴임 후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퇴임 후에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질문을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정상들로부터도 많이 받아 입장이 난처해지는 경우가 있다. 퇴임 후 ‘국민으로서의 역할’에 관해서는 더 생각해보겠다. 현재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맡은 소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반 총장의 모두발언이 끝나자 한국 사회의 문제, 난민문제, 대선출마여부, 과거 김대중 대통령 동향보고 의혹 등에 관한 기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다음은 간담회 주요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 국가가 분열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문제지만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최근 한국 정치권의 움직임은 ‘정치’라기보다 ‘정쟁’에 가까운 양상을 보여 왔다. 정치지도자들은 남북통일 이전에 남한부터 통합해야 한다. 남북문제와 달리 국가 통합은 뜻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가능하다. 통합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각오로 솔선수범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3~24일 ‘세계 인도주의 정상회의’에서 난민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 난민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 현재 필요한 돈은 1년 동안 국제사회가 지출하는 군사비의 1%다. 9월 유엔총회에서 보고서를 정식 제출해 관련 문제를 협의할 생각이다. 난민이 100만 명이든 200만 명이든 숫자는 문제가 아니다. 돈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대(solidarity)만 할 수 있다면 난민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혀 달라.

▷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학교 때부터 대통령을 꿈꿨다는데 난 솔직히 대통령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무총장이 되고 나서 자생적으로 이런 얘기가 나오는 데 대해 개인적으로 ‘헛되게 살지는 않았구나! 노력한 데 대한 평가가 있구나!’라는 자부심과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퇴임 이후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대선출마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겠다. 내년 1월 1일 임기가 끝나면 그때 가서 고민하겠다.

대선 후보로서 나서기에는 연령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 과거에 비해 인간의 평균 수명이 15~20년 정도 늘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70세, 버니 샌더스는 76세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100m 달리기를 하듯이 일했다.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나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일정을 기록한 자료를 보면 안다. 아파서 결근하거나 감기에 걸려 쉰 적도 없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아파서 결석한 적은 없다고 알면 된다.

1985년 외교부 공무원으로 미국에서 연수할 당시 미국에서 망명생활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상부에 보고했다는 내용의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 언론의 비판 기사를 보면서 기가 막혔다. 솔직히 말도 되지 않는 비판이다. 당시 나는 뉴욕 총영사관에 적을 두고 명예총영사와 유사한 역할을 했다. 나는 대학신문에 난 것을 복사해서 보냈다. 정부와 국가를 위해 있는 것을 관찰, 보고한 것일 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 개인 의견이 들어간 것도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다니면서 그런 것도 아닌데 기가 막히다. 흠집을 내기 위한 건데 내 인격에 비춰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자주 만난다.

▷ ‘박 대통령을 자주 만나느냐’고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도 그랬다. 어느 대통령이건 마찬가지다. 회의가 있어서 가니까 사진에 찍히는 거다. 박 대통령은 7번 만났다고 하는데 다 공개된 장소였다. 그런 것을 너무 확대 해석해서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니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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