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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책임의식이 결여된 유엔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아동 성폭행 사건을 고발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책임자 안데르스 콤파스가 지난 7일 사임 의사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콤파스는 “유엔은 권한을 남용한 자들에게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았다”며 평화유지군의 성폭행 수사와 처벌에 대한 유엔의 대응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콤파스는 지난 2014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프랑스군에 대한 성범죄 수사를 촉구하며 관련 보고서를 프랑스 검찰에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를 받은 14명의 프랑스 병사들은 음식을 미끼로 2013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9~13세 사이의 어린이 10여명을 여러 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인권단체 ‘에이즈프리월드(AIDS-Free World)’의 폴라 도노반 국장은 “해당 병사들은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접근한 어린 아이들에게 끔찍한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평화유지군의 성폭행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4년엔 콩고의 어린 소녀가 계란 2개를 받고 유엔 평화유지군과 지속적인 성매매를 해 온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2007년엔 모로코 출신 유엔평화유지군이 코트디부아르 현지 여성과 아동들을 장기간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08년 국제 아동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코트디부아르에서 10명의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군인들이 13살 소녀를 집단 성폭행한 뒤 공포에 떨면서 피를 흘리고 구토를 하고 있는 소녀를 그대로 둔 채 가버린 사례도 있었다”며 “피해 아동들은 겁에 질려 말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행위들이 보고조차 되지 않거나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엔은 “평화유지군 소속 군인들의 성폭행 사례들이 폭로될 때마다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진전된 바가 전혀 없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미국 상원의원들이 유엔 평화유지군의 아동 성범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유엔과 반기문 사무총장을 맹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ABC뉴스와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밥 코커 외교위원장을 비롯한 의원들은 “평화유지군의 성범죄 의혹이 2005년 유엔 보고서에 처음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총장을 비롯한 유엔 고위 관계자들은 문제가 곪아 터지도록 방치했다”며 “유엔 평화유지군의 성범죄가 지속될 경우 미국의 자금 지원을 끊는 방안도 고려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코커 위원장은 “반 사무총장은 도대체 왜 그런 것인가. 너무 미숙해서(inept)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인가. 유엔의 미숙한 리더십을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유엔은 국제사회의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동성폭행에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발을 막기 위해선 아동성폭행 군인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부분부터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다. 뿐만 아니라 내부고발자도 퇴출시켰다. 콤파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콤파스는 아동성폭행을 저지른 프랑스 군인을 처벌해달라고 프랑스 당국에 요청했다. 콤파스는 프랑스 정부 당국에 수사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유엔이 프랑스군인들의 아동성폭행사건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유엔 내부 자료를 넘긴 것”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엔은 콤파스의 행위를 문제 삼아 지난해 4월 권한을 정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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