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최근 한국경제의 저상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도전, 혁신, 미래를 보는 안목, 사회적 책임 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과 고용이 늘 수 있기 때문. 즉, 기업가정신이 회복되면 경기도 회복되고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면 경기도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다.

<월요신문>은 기업가정신과 한 나라의 경제수준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 '열정을 꿈으로 만든 글로벌 CEO 이야기를 연재한다. 열여덟 번째 순서로 미국의 사업가 '필 나이트(Philip Hampson Phil Knight)'의 기업가 정신을 살펴봤다.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 용품 회사 ‘나이키(NIKE)’. 슬로건인 ‘Just do it!’과, 알파벳 브이(V)자를 흘려 쓴 듯한 로고의 나이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68년 설립된 나이키는 리복(1895년) 푸마(1948년), 아디다스(1949년)보다 늦게 출발했으나 제품 개발에 대한 열정과, 스마트한 광고 전략을 통해 글로벌 1위 스포츠용품 브랜드로 성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시장조사기관 밀워드브라운이 함께 집계한 '2016 브랜드Z 100' 보고서는 나이키를 브랜드 가치 순위 28위로 선정했다.

나이키 창업자는 필 나이트(77)다. 그의 유일한 재산은 열정이었다. 그는 나이키 창립 당시 독일제 스포츠화가 휩쓸던 미국 스포츠화 시장을 미국의 브랜드로 휩쓸어 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때가 1964년. 50여년이 지난 지금 필 나이트는 세계 슈퍼리치 반열에 올랐다. 2015년 ‘피플 위드 머니’는 “필 나이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비즈니스맨 랭킹 1위”라고 발표했다.

트럭 행상으로 출발

필 나이트는 1938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중거리 육상선수였던 나이트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육상을 계속했다. 운동을 하던 청년이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프랭크 쉘런버그교수의 창업론 강의를 듣고 창업을 결심한 것.

나이트는 "교수님이 기업가의 자질을 이야기하는데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진정 원하는 일을 찾은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창업 품목으로 택한 것은 운동화 사업이었다. 육상 선수 출신이었기에 소비자들이 편안하고 가벼운 운동화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것. 스타트는 1962년 일본 신발회사 오니츠가 타이거(현 아식스)의 러닝화를 수입 판매였다. 말이 창업이지 직원 한 명 없이 자신의 집 지하 차고에 사무실을 차렸다.

나이트의 생각은 남달랐다. 그는 “고객이 찾아올 가게가 없다면 내가 직접 고객을 만나러 가면 된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가 바로 내 점포다” 라고 생각했다.

필 나이트의 주요 고객은 육상 대회에서 만난 운동선수들이나 전국의 신발 업자였다.

트럭행상으로 이뤄지던 신발 장사가 정식적으로 회사로 만들어지게 된 것은 1964년이다. 혼자서는 역부족이라고 느낀 필 나이트가 육상부 코치였던 빌 바우만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힘을 합치게 된 것. 필 나이트와 빌 바우만은은 각각 500달러씩을 투자해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BRS)'를 창립했다.

승리의 여신이 손짓

이들은 수입한 신발을 파는 것에서 나아가 1972년부터는 직접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성공의 발판이 된 것은 격자무늬 밑창을 깐 운동화, 일명 '와플 트레이너'다.

필 나이트의 동업자 바우먼은 은 어느날, 부인이 와플을 굽는 것을 보고 녹인 고무를 와플 석쇠에 붓는 기발한 생각을 했다. 와플 틀 속에 고무를 집어넣고 고무와플을 만든 것이다. 그는 고무와플을 잘라 신발 밑창에 아교로 붙였다. 말 그대로 밑창에 고무가 달린 가벼운 운동화의 발명이었다.

보워먼은 자신이 가르치던 육상 선수들에게 이 신발을 신고 달려보게 했다. 선수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고무 밑창 덕에 신발의 탄력성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나이트와 바워먼은 이 운동화가 성공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제작에 집중했다.

새 운동화 제작에 맞는 새로운 상표가 필요했다. 나이트의 대학 친구인 제프 존스가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 '니케(Nike)'를 연상해 나이키로 이름을 지었다. 로고는 나이트에게 회계학 강의를 들은 캐롤린 데이비슨이라는 여대생이 만들었다. 데이빗슨은 니케의 날개를 상징하는 'Swoosh' 로고를 그렸다. 나이트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35달러를 주고 로고를 샀다. 당시 데이비슨은 자신이 그린 로고가 전세계를 휩쓴 히트 상품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이후 나이키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운도 따랐다. 1970년대 미국에 조깅 열풍이 분 것. 미국인들은 너도나도 나이키를 신었다. 나이키의 매출은 순식간에 2억 7000만 달러까지 늘어났다.

나이키는 1980년에는 아디다스를 제치고 미국 내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으며, 1993년에는 스포츠화 1억 켤레를 돌파하는 등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스포츠용품 회사로 성장했다.

스포츠용품의 스타 마케팅

스타 마케팅은 나이키의 성장 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나이키가 가장 먼저 스폰서십을 맺은 스타는 루마니아 출신의 테니스 선수 일리에 너스타세다.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7번이나 우승한 너스타세를 후원하면서 나이키는 글로벌 스포츠용품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을 뗐다.

나이키가 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스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이다. 나이키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에어조던'은 1985년 조던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며 만든 신발이다.

이와 관련한 재밌는 일화도 있다. 당시 조던이 이 운동화를 신는 것은 NBA 규정 위반이었다. 당시 NBA는 통일된 색깔의 농구화만 신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흑색과 적색이 어우러진 '에어조던1'은 제재 대상이었다. 그러나 조던은 이 신발을 계속 신었고, NBA는 경기마다 5000달러씩 벌금을 부과했다. 나이키는 조던의 벌금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지만 그 금액과는 비교되지 않는 홍보 효과를 얻었다.

에어 조던의 큰 인기는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새로운 디자인의 에어 조던이 나올 때마다 나이키 매장에 강도가 들이닥치는가 하면 신발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생겨났다. 학생들이 에어 조던 신제품을 사기 위해 결석하는 사례가 잦자 제품 발표 시기를 주말로 바꿔야 했을 정도다.

또 다른 일등공신은 타이거 우즈다. 우즈의 가능성을 엿본 나이키는 어렸을 때부터 그를 전폭적으로 후원하며 계약을 맺었다. 우즈가 주요 대회를 휩쓸면서 나이키골프의 옷과 모자, 골프용품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포브스 지가 2012년 브랜드 연구기관 레퓨컴과 함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나이키는 우즈를 통해 1810만 달러 가량의 광고 효과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그냥 해봐’의 뜻을 가진 나이키의 슬로건 ‘저스트 두 잇(Just Do It)’ 또한 나이키의 손꼽히는 마케팅 전략이다. 검은 화면에 강렬한 하얀색 글자로 된 3단어를 던지는 이 광고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운동화 시장에서 나이키의 시장점유율은 큰 폭으로 뛰었고 ‘저스트 두 잇’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광고 슬로건 ‘톱 5’에 뽑혔다.

시련의 나이키

성공적인 마케팅 뒤에는 나이키를 둘러싼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1996년 국제 비정부기구(NGO) 옥스팜 인터내셔널은 "나이키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 세계의 여성과 어린이의 노동력을 착취해 이익을 내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같은 해 미국의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역시 자신의 저서를 통해 "나이키 제품이 만들어지는 인도네시아의 공장에서는 임신부와 열네 살 소녀가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신발을 바느질하고 있다"며 노동력 착취 실태를 폭로했다.

이는 기업 도덕성에 대한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적인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나이키의 매출이 급감하자 나이트는 하청 공장의 노동 환경 개선을 약속하고 어린아이들을 내보냈다. 또 해마다 인권단체 활동가를 공장으로 초청해 어린아이들이 없음을 보여주는 등 악덕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을 쏟았다.

필 나이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도 비행기를 타거나 오솔길을 달릴 때 언제 어디서건 아이디어가 샘솟고 있습니다. 때문에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도전해야 할 목표입니다.”

나이트의 생활 신조 5가지는 유명하다. 첫째, 지독해야 한다. 그러나 규칙을 지켜라. 둘째, 반드시 이기려고 해야 한다. 셋째, 일단 한번 해봐라 (Just do it). 넷째, 결코 포기하지 마라. 다섯째, 남들보다 더 우월하기 위해서는 결코 모범적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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