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 50대 자영업자 A씨는 얼마 전 보험비 청구를 위해 ‘1588’로 시작하는 한 보험사의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월말이라 대기시간이 길었고, 필요한 서류를 듣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10분이 넘게 휴대폰을 붙잡고 있어야 했다. 이후로도 A씨는 몇 차례 더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업무를 처리했다.

그 후 A씨는 집으로 날아온 휴대폰 요금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보다 많은 통신료가 부과됐기 때문. 이에 A씨는 사용 내역을 조회했고 1588로 걸었던 상담 전화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와 같은 요금 피해를 겪은 소비자들은 많다. 모두 ‘전국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낭패를 본 케이스다.

전국대표번호 서비스는 지역별로 산재된 기업 전화번호를 단일 대표번호로 통합해 전국 어디서나 하나의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1544·1566·1577·1588·1655·1688 등으로 시작하는 8자리 번호 형태가 대표적이다.

대기업, 금융권, 프랜차이즈 업종 등에서 활용되고 있는 전국대표번호 서비스는 고객이 전화를 걸면 발신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자동 연결시켜 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일반 소비자들 가운데 전국대표번호의 통화료를 수신자 부담, 즉 무료 통화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기업이 소비자 배려 차원에서 이와 같은 번호를 쓰고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대표번호 서비스는 소요되는 전화비용이나 기타 추가비용 일체가 소비자에게 부담된다. 이용 요금은 일반전화의 경우 시내통화요금(3분당 39원)을 기준으로 발신자에게 부과되고, 070인터넷 전화나 휴대전화는 이용자의 요금제를 기준으로 계산된다. 뿐만 아니라 사전 고지 없이 발신지와 같은 통화권에 있으면 시내통화, 다른 곳에 있으면 시외통화로 간주돼 요금이 부담된다.

여기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전국대표번호 도입부에 자사 광고를 넣거나 복잡한 ARS메뉴를 넣어 통화시간을 길어지게 만들고, 대기인원이 많다며 재차 전화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의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

특히 은행, 보험, 증권, 카드사 등 고객 전화가 많은 금융사들은 수신자부담전화(080)를 폐쇄하거나 꽁꽁 숨기는 방식으로 연간 수백억 원의 통신료를 아끼고 있다.

지난해 2월 소비자문제연구소인 컨슈머리서치가 국내 주요 은행(12개사), 카드사(8개사), 증권사(10개사), 보험사(20개사) 등 50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수신자부담전화 콜센터 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무려 43곳(86%)이 080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 민원과 상담전화가 가장 빈번한 신용카드와 증권업계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일반 상담이나 민원 전화는 역시 소비자 몫이었다. 080전화를 운영하지만 이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데도 소극적이었다.

미국 기업들은 다르다. 미국 기업 대부분은 08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갖고 있다.

기업 쪽에서 보면 전국대표번호가 8자리로, 11자리를 사용하는 080 수신자 요금부담 전화보다 짧아 외우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를 상품이나 서비스 판매용으로 쓰려면, 수신자가 요금을 부담하는 형태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화료를 몰래 소비자에게 떠넘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전국대표전화가 유료서비스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수익자 비용 부담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기업들의 윤리의식까지 의심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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