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46)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한강은 최근 광주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치유의 인문학’ 강좌에서 “5.18 광주항쟁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낸 순간부터 제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5·18이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뼈아프다”고 말했다.

한강은 “소설을 쓸 때 가끔 자기검열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뒤늦게 그런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검열 없이 작품을 쓴 것 같은데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더라”고 말했다. 또 “서울 연희문학창작촌 옆에 (전두환 전 대통령) 집이 있다. 작가들은 잘 모르니까 창작촌에 와서 자는데 저는 못 자겠더라”고 말했다.

2014년 5월 19일 창비에서 발간한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를 중심으로 5.18 당시 폭력과 상처를 그린 소설이다.

정부가 문화예술계 정치검열을 위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문제 제기된 바 있다. 국정감사 이후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세월호 시국선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 등 네 가지 항목에 서명한 9,473명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문서가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이후 블랙리스트에 오른 각계 인사는 아르코 창작기금 등 정부 지원 선정이나 공연대관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블랙리스트에 한강이 오른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전에 소설 ‘소년이 온다’가 2014년 세종도서 선정·보급 사업 심사에서 배제돼 의문이 제기됐었다. 세종도서 선정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이 주관해 매년 분야별 우수도서를 선정해 공공도서관, 전국 학교 등지에 배포하는 사업이다.

문화계 한 인사는 “‘소년이 온다’가 세종도서에 선정되지 못한 과정에 의문이 많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작품성이 뛰어난데 왜 배제시켜야 하느냐고 따졌으나 무시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상검증 논란에 진흥원 측은 “‘소년이 온다’는 총 25종까지 선정하도록 한 출판사 안배 차원에서 조정(제외)한 것일 뿐 내용상 문제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문화계 인사들은 이런 해명이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문체부는 여전히 블랙리스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5일 열린 국정조사에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며 부인했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 역시 10월 국정감사에서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문화예술단체들은 지난 12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9명을 ‘문화계 블랙리스트 주범’으로 지목하고 특검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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