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검찰이 25년간 위작 논란이 일었던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 전문 감식기관인 뤼미에르 테크놀로지의 ‘위작’ 판정을 뒤집은 결론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 배용원)는 19일 해당 작품을 ‘진품’으로 판단하고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미술계 인사 5명을 무혐의 처분,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 1명은 불구속 기소한다고 밝혔다. 앞서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62)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는 “미인도가 위작임에도 불구, 진품이라고 주장한다”며 이들을 사자(死者) 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석채 사용 ▲두터운 덧칠 ▲안료 중첩사용 ▲압인선 존재 ▲밑그림 존재 등을 근거로 ‘미인도’를 진품으로 인정했다. 검찰은 천 화백의 작품 13점과 모작 1점 등을 대상으로 전문가 안목감정은 물론 대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카이스트 등에서 X선·적외선·투과광사진·3D촬영, 디지털·컴퓨터 영상 분석, DNA분석, 필적 감정 등을 활용했다.

검찰에 따르면 ‘미인도’는 천 화백 특유의 작품 제작 방법과 동일하게 만들어졌다. 천 화백의 작품제작 방법은 ‘D화랑’ 화선지를 여러 번 포개 붙이는 배접을 한 다음 백반·아교·호분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수없는 ‘덧칠’과정을 거쳐 ‘석채’안료로 채색을 완성하는 식이다. 검찰은 ‘미인도’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됐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덧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밑그림’이 생기게 되는데 검찰은 해당 작품에도 이 밑그림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위작일 경우 원작을 보고 그대로 베끼거나 약간 변형을 가한 스케치 위에 단시간 내 작업을 진행해 밑그림이 발견되기 어렵다는 것.

육안으로는 잘 관찰되지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이 ‘꽃잎’, ‘나비’ 등 천 화백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미인도에서 나타나는 점도 주요 근거로 꼽았다. 천 화백이 1976년도에 고소인인 차녀 김씨를 모델로 그린 ‘차녀 스케치’도 식별의 근거가 됐다. ‘차녀 스케치’는 그 구도와 세부 묘사에서 미인도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러나 지난달 프랑스 유명 감정팀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미인도’는 천 화백 1981년도 작품 ‘장미와 여인’을 보고 제작한 위작으로 명암대조의 표준편차값 등을 확률계산식에 대입해 보면 진품 가능성은 0.00002%”라며 위작 결론을 내렸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미인도와 천 화백의 그림 9점을 특수 카메라로 수치화한 후 비교·대조해 “미인도는 위작”임을 주장했다.

당시 감정팀은 “눈과 눈동자, 코와 입 등 9개 항목을 1600개 단층으로 세밀하게 쪼갠 뒤 측정한 결과 모든 항목에서 진품과 값이 달랐다”며 “진품은 세밀하고 둥글고 부드러웠지만 위작논란을 받고 있는 미인도는 두껍고 각지고 거칠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사진 이미지 분석을 통한 수학적 수식 산출 방법은 차이점 파악에는 의미가 있으나, 위조 여부의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프랑스 감정팀이 당초 홍보한 내용과 달리 심층적인 단층분석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프랑스 감정팀의 감정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은 “같은 수식에 대입하면 천 화백의 다른 진품도 진품 확률이 4%대로 계산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인도의 원소장자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검찰에 따르면 1977년 천 화백이 중앙정보부 간부에게 미인도를 비롯한 그림 2점을 선물했고 이 간부의 처가 대학 동문인 김재규 부장의 처에게 미인도를 선물했다. 이어 김 부장은 1980년 5월 당시 신군부 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에 미인도를 헌납했으며 다시 재무부와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최종 이관됐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검찰의 진품 결론에 유족인 김씨는 “검찰 발표 내용이 너무 황당하다”고 반발했다. 김씨의 변호인 배금자 변호사는 “항고도 하고, 재정신청도 하겠다.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와 관련 개인들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하겠다”며 추가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밝혔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회에서 ‘미인도’를 천 화백의 작품으로 소개하며 그 이미지로 행사포스터를 인쇄해 홍보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천 화백이 “미인도는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라고 위작을 주장해 현재까지 위작 시비가 계속됐다. 당시 미술관은 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 감정을 의뢰해 일주일 만에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천 화백은 이에 충격을 받아 절필을 선언, 미국으로 떠났고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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