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법인세가 또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조기 대선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요 대선주자들이 앞 다퉈 법인세 인상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다.

이재명·박원순·유승민·손학규 등은 법인세 최고세율 자체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투자촉진 효과는 없고 기업 금고에 돈만 쌓이게 한 법인세 인하 정책을 폐기하는 대신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재벌 대기업에 쌓여있는 700조 사내유보금이 중소기업과 가계로 흘러내리도록 하려면 ‘법인세 정상화’가 필요하다”면서 “영업이익 500억원이상 대기업 440개의 법인세를 22%에서 30%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법인세를 좀 올릴 필요가 있다”며 법인세 인상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고,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역시 “이명박 정부의 감세 이전 수준(25%)으로 가는 것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문재인·안철수·안희정·김부겸·남경필 등은 법인세 인상보다는 실효세율 인상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그대로 두고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줄여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부산 상공인 간담회에서 “세수확대는 합리적 순서가 중요하다”면서 “고소득자들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가 우선이다.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법인세 인상은 마지막”이라고 주장했다. 문 전 대표는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는 특혜적 조세감면 제도를 고치면 대기업의 실효세율이 올라갈 것”이라며 “이렇게 해도 추가 세수확대가 불가피하면 명목세율을 올릴 수 있지만 이것 역시 대기업으로 한정해 올려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보다는 실효세율 인상을 강조해왔다. 안 전 대표는 “순이익 5000억원 이상 기업들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평균 16% 정도 된다. 그런데 순이익이 5000억 이하인 기업은 실효세율이 18% 정도”라면서 “이런 구조를 바로 잡는 노력과 동시에 세금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국민 공론화를 거친 후 법인세나 소득세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게 맞는 순서”라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달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법인세 인상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면서 “법인세 인상 이슈가 신당의 경제정책을 보수나 진보로 가늠하는 프레임에 묶이도록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소득감면과 소득공제, 비과세 감면부터 손보면 된다. 비과세 감면 제도만 개선해도 30조원은 더 걷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법인세 문제를 공론화하고 나선 것은 법인세 인하를 통한 투자증가 효과가 간접적이며 불확실하다는 불신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세 최고세율이 2002년 27%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22%까지 낮아졌지만 예상과 달리 투자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총 실질설비투자는 2009년 100조원 가량에서 2010년 122조원로 반짝 증가했지만 이후에는 증가율이 크게 늘지 않았다. 또한 법인세 최고세율이 27%였던 2002년~2004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5.1%이었지만 25%였던 2005년~2008년에는 4.4%, 22%인 2009년~2015년에는 3.1%로 점점 하락했다.

재벌 성장 정책의 중요한 논리적 기반이었던 ‘낙수효과’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된 것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2015년 소득 상위 20%의 몫이 1% 증가할 때 경제성장률은 0.0837%포인트 하락해 부(富)의 낙수효과(trickle effect)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지난 20년간 소득불평등 심화로 OECD 평균 누적 성장률이 4.7%포인트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연구원이 내놓은 ‘수출의 국민경제 파급효과 분석’ 역시 “2000년 이후 대기업의 매출액 1% 증가에 따른 하청업체의 매출액 증가는 1000분의 5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법인세 인상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법인세 인상은 기대하는 목표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며 ““세계적으로도 법인세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고, 법인세를 내리는 나라가 오히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부분을 심각하게 검토해 국민의 추가 부담 없는 소득 재분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역시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선진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법인세 인하를 통해 자국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법인세를 올린다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면서 “오히려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세제지원 확대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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