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23일 보건복지부는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직장가입자·지역가입자·피부양자로 구분된 현행 부과체계를 3년 주기, 3단계(1단계 2018년, 2단계 2021년, 3단계 2024년)로 개선한다는 게 골자다. 기본방향은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다. 저소득층 지역가입자에게 과도하게 부과되는 보험료를 낮추는 한편 소득과 재산이 있으면서도 각종 편법으로 무임승차를 일삼아온 고소득층의 보험료를 인상해 형평성을 재고하겠다는 취지다.

보건복지부 개편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지역가입자 ‘평가소득’ 17년만에 폐지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보증금 500만원에 월 50만원짜리 반지하 셋방에 살던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은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제도적 허점을 드러낸 극명한 예로 거론된다. 이들 세 모녀는 소득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달 4만8000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했다. 그 이유는 ‘평가소득’ 제도 때문이다. 평가소득은 연소득 500만원 이하인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하기 위해 소득과 상관없이 세대 구성원의 성별과 나이, 재산, 자동차로 추정한 소득이다. 평가소득을 세 모녀에게 적용한 결과 실제로는 없는 소득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돼 약 3만6000원의 보험료가 부과됐다. 여기에 월세로 사는 집에 재산 보험료 1만2000원이 추가됐다.

반면, 175억원 상당의 자산을 가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이 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 자신 소유의 빌딩에 소규모 건물관리회사를 만들고 자신을 대표이사로 등재해 월 2만원 안팎의 건강보험료만 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월 100만원 이상의 보험료를 내야 했지만 위장 창업이라는 꼼수를 통해 직장가입자로 전환한 후 소액의 월급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납부했던 것이다.

정부 개편안은 이같은 불합리한 평가소득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최저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1단계 개편 후에는 연소득 100만원 이하 가구에 1만3100원, 3단계 개편 후에는 연소득 336만원 이하 가구에 월 1만7120원의 최저보험료가 부과된다.

재산과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는 단계적으로 축소할 계획이다. 1단계 개편에서는 과표기준 1200만원(시가 2400만원) 이하의 주택, 4000만원 이하 전·월세보증금에는 재산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3단계 개편 후에는 과표기준 5000만원(시가 1억원) 이하 주택과 1억6700만원 이하 전·월세보증금에는 재산 보험료가 면제된다. 자동차는 ‘15년 미만의 모든 자동차에 보험료를 부과한다’는 기준을 없애고 4000만원 이상의 고가차에만 부과하기로 했다.

소득 보험료는 당분간 100등급으로 나뉜 소득등급표에 의해 정해진다. 개편 마무리 단계에서는 소득 총액에 보험료율 6.12%를 곱해 산출하기로 했다.

이렇게 부과체계를 바꾸면 1단계에서 지역가입자 77%에 해당하는 583만 세대의 보험료가 지금보다 평균 20%(월 2만원) 인하된다. 반대로 34만(4%) 세대는 평균 15%(월 5만원) 오르고, 40만(19%) 세대는 변동이 없다. 3단계로 가면 지역가입자의 80%인 606만 세대의 보험료가 지금보다 평균 50%(월 4만6천원) 낮아진다.

■ ‘고소득 피부양자’ 무임승차 방지  

A씨는 지난해 5월까지 건강보험료로 한 달에 38만2620원을 냈다. A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과세표준액만 5억5000만원(시가 7억원 상당)짜리다. 은행예금 등 약 10억원에 가까운 금융자산도 있다. 은행 예금에서 매달 수백만원의 이자가 나오고 월 100만원의 연금도 꼬박꼬박 받는다. 그런데도 최씨는 지난해 6월 이후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는 ‘금융소득 4000만원 이하, 연금소득 4000만원 이하(1년 기준), 재산세 과세표준액 9억원 이하’로 규정한 현행 피부양자 인정요건 덕분이다. 지난해 5월 자신의 금융소득이 3961만원으로 전년(4191만원)보다 약간 줄었다는 사실을 파악한 최씨는 이를 근거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의 피부양자로 등록해달라”며 건강보험공단에 요청했던 것이다.

개편안은 이처럼 직장가입자인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았던 ‘부자 무임승차자’들도 특정 기준을 넘으면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보험료를 내도록 했다. 1단계 개편에서는 종합과세소득을 합산한 금액이 3400만원을 넘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2단계에서는 2700만원, 3단계에서는 2000만원을 넘으면 피부양자가 될 수 없다. 다만 연금소득자의 경우 연금소득의 30%(1단계)~50%(3단계)에만 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재산 역시 1단계에서 과표기준 5억4000만원(시가 9억원), 2단계 이후에는 과표기준 3억6000만원(시가 6억원)이 넘는 사람들은 소득이 연 1000만원 미만이어야 피부양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 고소득 직장인 ‘봉급 외 소득’ 기준 강화  

경기도에 사는 이씨는 지난 2005년 6월 주유소에 취직했다. 당시 받은 월급은 60만원, 이를 기준으로 매겨진 건강보험료는 약 1만7000원이다. 여성인데다 칠순이 넘는 이씨가 주유소에 취직한 사실을 이상하게 여긴 건강보험공단이 실태를 파악해보니 이씨는 약 20억원(과세표준액 기준) 상당의 부동산과 한해 3800만원에 이르는 임대소득이 있는 자산가였다. 지역가입자 신분이었다면 매달 약 38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했던 이씨가 직장가입자에게는 임금소득만으로 보험료가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고 아들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위장 취업’한 것이다.

이처럼 임대소득으로 수천만원을 버는 부자가 위장취업으로 직장가입자가 돼 소액의 임금에 대해서만 건강보험료를 내는 꼼수는 이제 부릴 수 없게 됐다. 아울러 직장에 다니지만 주식투자 등으로 월급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직장가입자도 앞으로는 평범한 직장인과는 차별적인 보험료를 내야한다.

지금까지는 연간 보수 외 소득이 72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초과분에 대한 보험료를 부과해왔다. 따라서 소득 외 보수가 72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추가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았다. 예컨대 7201만원의 보수 외 소득이 있는 직장인은 봉급 보험료 외에 월 18만원가량의 보험료를 추가로 낸 반면 7200만원의 별도 소득이 있는 사람은 봉급 보험료 외에 한 푼의 보험료도 내지 않았다.

개편안은 이 같은 ‘절벽 현상’을 해소하고 봉급 외 소득 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7200만원을 기준으로 한 ‘초과방식’에서 보수 외 소득에서 연 3400만원을 공제한 뒤 차액에 부과하는 ‘공제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차액에 대해서는 현재 부과율(3.06%)의 2배인 6.12%를 적용하기로 했다. 1단계에서는 소득 기준으로 3400만원을 적용한 뒤 2단계에는 2700만원, 3단계에는 연 2000만원까지 낮춘다. 보수에 붙는 보험료의 상한선도 현행 월 239만원에서 전전년도 직장가입자 평균 보수보험료의 30배로 올리기로 했다. 올해 기준으로 하면 월 301만5000원이 보험료 최고액이 된다.

그밖에 △소득과 무관한 재산의 경우 최대 5000만원 공제제도 도입 △소득 상위 2%, 재산 상위 3% 세대에 대한 보험료 인상 △공적연금 부과율 상향 등이 개편안에 포함됐다.

복지부는 여론 수렴을 거친 후 5월에는 정부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법안이 상반기에 통과되면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 시행될 수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소득일원화 개편’을 주장하고 있어 향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격론이 예상된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