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현대중공업>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현대중공업의 6개사 분사안이 주주총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 확정됐다. 지난해 11월 15일 현대중공업 이사회에서 비조선부문을 분리해 6개사로 분사하는 안이 통과된 지 약 3개월 만이다.

27일 오전 현대중공업은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회사를 현대중공업(조선·해양),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현대로보틱스(로봇) 등 4개 법인으로 분사하는 내용의 분할계획서 승인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 현대글로벌서비스(선박 통합서비스)를 현대로보틱스 계열사로,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그린에너지)를 현대중공업 계열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마무리한 바 있다.

신설 회사 중 현대로보틱스는 6개사의 지주회사 형태로 설립된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은 지주회사로서 자회사 지분 요건 충족을 위해 재상장이 완료된 후 일정한 시점 이내 분할존속회사 및 타 분할신설회사의 지분을 추가 취득한다는 계획이다. 지분 추가 취득방식으로는 현물출자 유상증자, 추가 주식 매수 등의 다각적인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현행법상 지주사는 사업 자회사의 주식 20%(비상장사는 4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이같은 회사 분할 결정 배경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각 사업의 역량과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사업이 분할된 각 회사가 각각의 전문 영역에 역량을 집중해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회사 분할 시 순환출자구조 해소로 지배구조 투명성이 강화되고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점도 분사 이유의 하나”라면서 “회사 분할이 완료되면 존속 현대중공업의 부채 비율이 100% 미만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 분할의 진짜 의도가 경영 효율화보다는 대주주 지분율을 높여 지배체제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무소속 김종훈 의원(울산 동구)은 지난 23일 “현대중공업 측은 조선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분사를 추진한다고 설명하지만 이번 분사 추진의 가장 큰 동기는 자사주를 활용해 대주주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데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라며 “기업의 분사나 이전 결정이 재벌의 이해만을 위해 이뤄져서는 안 된다. 사측은 먼저 노조와 성실한 협의 없이 진행되는 분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노조를 비롯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도 반발해왔다. 현대중공업이 추진 중인 인적분할이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3세 경영 승계와 지배구조 강화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사측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 해소 차원에서 회사 분할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정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에 대한 경영권 승계 목적이 강하다”면서 “인적 분할 후 지주회사가 될 현대로보틱스만 지배하면 현대중공업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재벌 오너에게 자사주는 지주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핵심키로 활용돼 왔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다. 일반적으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인적분할 후 지주회사가 신설되는 자회사로부터 배정받는 자사주 몫만큼의 신주에는 의결권이 발생한다. 재벌 총수 입장에서는 돈 안 들이고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현대로보틱스는 분할 과정에서 현대오일뱅크 지분 91.13%와 함께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자사주 13.37%를 넘겨받게 된다. 이 경우 현대로보틱스의 대주주인 정 이사장은 추가적인 지분 매입 없이도 이전된 자사주만큼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 분할 시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은 “대기업들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해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편법적인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해서는 신설법인의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더 이상 자사주의 마법 효과는 볼 수 없다. 최근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삼성전자, AP시스템, 오리온, 크라운제과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인적분할에 나선 것이 사실은 ‘자사주 제한법 통과 전 지배구조를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한편 이날 주총에서 사업 분할 안건이 가결된 4개사는 오는 4월 1일 독립법인으로 정식 출범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주식은 3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거래가 정지되며 재상장되는 현대중공업 및 신설회사의 주식은 5월 10일부터 거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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