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되고 경제의 활력과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스타트업은 취업난을 해결하고 국가 차원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도전적인 기업가정신을 지닌 혁신 벤처기업들은 스스로 대기업으로 성장하거나 기존 대기업에 혁신 기술을 신속하게 수혈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애플,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들이 미국의 고용과 성장 회복에 기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일 뿐이다.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지만 기술의 완성도 등 사업의 핵심 아이디어에 역량을 집중하기에도 버거운 스타트업으로서는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챙기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이 성공에 이르는 길은 여전히 좁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10곳 중 6곳이 3년 안에 문을 닫는다. 스타트업계에선 이 기간을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외국의 스타트업들은 어떻게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을까? 이에 본지는 ‘스타트업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생태계 운영 방식을 살펴봤다.

미국

미국 스타트업 환경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스타트업 육성·운영에 관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이 꼽힌다. 이른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다. 액셀러레이터는 개념은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발전됐다. 엑셀러레이터는 혁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가속 페달을 밟아 준다는 의미로 초기자금, 인프라, 멘토링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벤처육성기업이다. 흔히 엑셀러레이션이라면 정보통신기술(ICT)기반의 서비스 및 제품들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의 경우 교육, 에너지, 기업솔루션,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부문에 전문화된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들과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2005년에 설립된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는 미국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다. 와이콤비네이터는 지난 10년간 500개가 넘는 벤처 스타트업을 육성해 왔으며 졸업한 500여개 기업의 평균가치는 4500만달러에 달한다. 현재 시장가치 30조에 이르는 에어비엔비(Airbnb)와 10조를 넘는 드롭박스(Dropbox) 등이 이곳에서 배출됐다. 또 다른 유명 엑셀러레이터인 테크스타스(Techstars)도 센드그리드(Sendgrid), 소셜씽(Socialthing), 온스와이프(OnSwipe) 등의 기업을 배출했다.

그밖에 킥랩스(Kicklabs), 아이오벤쳐스(i/o Ventures), 엑셀레이트랩스(Excelerate Labs), 엔젤패드(AngelPad), 테크스타스 NYC(TechStars NYC), 테크스타스 보스턴(TechStars Boston), 런치패드 LA(Launchpad LA), 500 스타트업스(500 Startups) 등이 미국 스타트업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 랭킹 상위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각자 차별화된 내용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선 프로그램 모집 공고를 낸 후 지원한 스타트업 중 일부를 선정한다. 선정된 스타트업게는 사무실과 회의실 제공 등 물리적 지원과 함게 투자자 소개, 해외 네트워크 개척 등 사업을 일궈 나가기 위한 모든 토대를 제공한다. 물론 무조건적인 지원은 아니다. 이들은 통상 스타트업의 지분 5~10%를 받아 스타트업이 상장하거나 매각되면 수익을 챙긴다. 일정 기간 멘토링 및 교육을 진행한 후에는 벤처캐피탈(VC), 미디어, 대중을 대상으로 데모데이(DEMO Day)를 진행한다. 데모데이는 액셀러레이팅을 받은 스타트업이 투자자 및 일반인들 앞에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발표하는 행사를 말한다.

이스라엘 

미국과 함께 ‘스타트업 천국’이라 불리는 이스라엘은 정부주도 스타트업 정책이 가장 잘 이루어지는 국가로 꼽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청년실업, 민간부문 투자 위축, 성장 동력 부족 등 문제가 심각했다. 하지만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은 유럽 대륙 전체보다 많아졌고, 3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의 연구개발(R&D) 센터가 이스라엘로 들어와 있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탈의 규모 역시 크다. 2016년 기준 이스라엘에는 770여개의 벤처캐피탈이 20억 달러가 넘는 투자금을 벤처기업에 지원을 하고 있는데 이는 독일이나 영국과 맞먹는 규모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변화를 이끈 것은 바로 요즈마펀드다. 요즈마펀드는 1993년 이스라엘 정부와 민간이 합동으로 각각 40%, 60%씩 지분을 출자해 만든 글로벌 벤처캐피탈이다. 이스라엘의 빈곤이 절정에 다다른 1990년대 초반 당시 이스라엘 산업통상노동부 수석과학관이었던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그룹 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에를리히 회장은 “정부가 민간과 함께 벤처기업에 투자해 리스크를 부담하되 수익이 발생하면 민간기업이 정부 지분을 액면가에 살 수 있도록 콜옵션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자”고 제안했다.

설립 당시 2.65억 달러(약 3000억원)에 불과했던 펀드 규모는 2014년 기준 40억달러(약 4조원)로 늘어났다. 벤처기업의 성공으로 늘어난 자금이 또다시 벤처 발굴 및 투자에 사용되면서 벤처 생태계에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우리나라도 지난해 5월 액셀러레이터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는 등 스타트업 지원 방안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현재 국내에는 프라이머, 스파크랩,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매쉬업엔젤스, 퓨처플레이, 패스트트랙아시아 등 20개 내외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가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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