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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역대 대통령 ‘특사 외교’ 명암정권의 이해관계 따라 특사 신분, 역할, 성과 달라
▲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주요국 특사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 김주경 기자] 대한민국 특사외교의 시작은 1907년 이준 열사의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이그 특사는 일본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일제 침략의 실상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후에도 한국은 외교적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상대국의 지리와 사정에 정통한 특사를 파견해 관계회복을 모색해왔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잘 나타난다. 문 대통령은 사드배치, 북핵 문제 등 외교적 난제를 풀기 위해 4명의 특사를 임명했다. 특사의 역할이 주목받는 가운데 대한민국 110년 특사외교의 명암을 살펴봤다.

◇ 이승만 대통령, 조병옥·장면 특사 파견

한국 외교는 건국 초창기부터 곤혹을 치렀다. 1945년 8월 15일 국내외 선포된 대한민국 정부는 합법성을 인정받기 위해 유엔총회에서 정식으로 정부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1948년 8월 5일 국회의원 조병옥을 대통령 특사로 미국에 파견한다.

그해 8월 11일 3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장면, 장기영, 김활란이 임명되었고, 이들은 9월9일 제3차 유엔총회가 열리는 파리로 향한다. 이들은 58개국 대표가 참석한 유엔총회에서 한국정부의 국제적 승인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1948년 12월 12일 48대 6으로 승인을 얻어낸다. 이로써 대한민국정부는 유엔으로부터 ‘한국에 있어 유일한 정부(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라는 인정을 받게 된다.

◇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 김종필 특사 파견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특사를 활용했다. 1963년 10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12월 30일 김현철 전 총리를 대통령 전권특사로 임명한다. 김현철 특사는 2개월간 우방 40여 개국에 친선 방문했다. 김 특사의 주요 임무는 박정희 정권의 정통성을 널리 알리는데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 1월 6일 김용식을 수석대표로 하는 특사단을 일본에 파견하는 한편 한미일 상호협력 등을 어젠다로 미국과 수뇌 회담 물꼬를 텄다.

김종필 전 총리도 역사에 남을 특사 역할을 했다. 한‧일 외교협정과 관련해서다. 한일 협정은 사드 협정처럼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이에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비밀리에 방문해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와 만나 한·일 정상회담을 제안하게 된다.

이듬해 말 김 부장은 도쿄에서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을 만나 일본 손해배상 청구자금의 액수 규모를 매듭짓고 김-오히라 메모를 교환했다. 이를 놓고 한국에선 거센 반발이 있었다. 야당과 학생들은 제2의 을사조약이니 굴욕·구걸 외교이니 하는 비난과 함께 회담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속전속결로 협상을 밀어붙였다. 마침내 1965년 6월 한·일 협정 서명식이 열렸고, 그 해 12월 비준서를 정식 교환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지금, 김종필 특사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공과가 엇갈린다. 대일청구권으로 받은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건설하는 등 경제발전에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성급한 합의로 소탐대실했다는 비판도 따른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을 근거로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배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도 특사 역할을 했다. 1974년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단신으로 평양에 가서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당시 언론에선 그를 대북밀사로 표현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특사였다.

◇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장세동 박철언 특사 활용

전두환 대통령의 특사로는 노태우, 장세동, 박철언 정도가 눈에 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11월 노태우 특사를 임명해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 국가를 상대로 외교를 펼쳤다. 노태우 특사는 11월 스페인, 이탈리아, 바티칸 시국 등을 거쳐 12월 나이지리아, 오트볼타공화국, 서독, 네덜란드와 아프리카, 미국 등을 방문하고 귀국했다. 당시 노태우 특사는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한국에 방문해줄 것을 간청하여 성사시키기도 했다.

정통성과 대표성을 상실한 전두환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에 저자세를 취했다. 또 정통성 시비를 희석시키고자 남북정상회담을 극비리에 추진했다. 이때 막후 역할을 맡은 인물이 장세동 안기부장이다. 장세동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박철언 수석대표 및 수행원 3명과 함께 1985년 10월 17일 2박 3일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그에 앞서 4월 북한의 허담 비서는 김 주석의 친서를 갖고 서울을 방문했다. 답방 차원에서 장세동 박철언 일행이 평양을 방문했지만 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노태우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박철언 특사를 활용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의 정상회담 추진은 의제와 시기 등에서 북측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가 북측이 93년 1월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구실로 남북대화를 거부함에 따라 어정쩡한 상태에서 끝나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 남·북간 특사 교환 제안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주목할만한 특사는 없었고 남북간에 특사 교환이 논의된 적은 있었다. 1993년 북한 핵 위기 때다. 핵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접촉을 갖자는 남측 제의에 대해 북한은 특사교환을 역제의했다. 이후 93년 10월 5일부터 94년 3월 19일까지 8차례 판문점 평화의 집과 판문각을 오가며 실무 접촉이 진행됐다. 그러나 북한의 박영수 대표단장이 8차 회담 도중 ‘서울 불바다 발언’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긴장이 고조됐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한은 94년 7월 25∼27일 사흘간 정상회담을 열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그달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물거품이 됐다.

◇ 김대중 대통령, 박지원 임동원 특사 파견

김대중 대통령은 98년 2월 취임식 때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사 교환을 제의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특사를 파견해 북한과 대화를 모색했다. 대표적인 예가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다. 박지원 장관은 김대중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측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 의제를 논의했다. 이런 노력 끝에 결국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또한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뮤니케 발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합의한 것으로 김대중 정부가 막후 역할을 해낸 것으로 전해진다.

◇ 노무현 대통령, 정대철 이해찬 특사 파견

특사 외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시절 새롭게 가동된 정책이다. DJ정부 때까지는 특사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보다 밀사 등과 같은 비공식적인 형태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2003년 2월 노 대통령은 ‘반미주의자’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대철 전 의원을 미국에 특사로 파견했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당선인에 대해 갖고 있던 의구심을 풀어야 할 절박함, 고조된 북핵 문제 등이 특사 파견의 논리로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정대철 특사는 노무현 당선인이 주장한 대미 자주외교가 반미나 주한미군 철수를 이야기한 게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고 한다. 또 일각에서 제기되던 북한 폭격론에 대한 반대 입장도 밝혔다. 체니 미 부통령을 만난 특사단은 노무현 당선인의 북핵 3대 원칙(북핵 불인정,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전달했다.

노 당선인은 또 중국에 이해찬 의원, 러시아엔 조순형 전 의원을 특사로 파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중러일 4개국에 보낼 특사를 임명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이듬해인 2004년 12월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사흘간 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정 장관은 후진타오 국가주석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지도부를 만나 한반도 정세와 북핵 문제 해결을 논의했다.

◇ 이명박 대통령, 친형 이상득 특사 파견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무게감 있는 인물을 특사로 임명하고 활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정몽준 의원이다. 이 대통령은 경쟁자 관계였던 박근혜 의원을 중국 특사로 파견했고, 정몽준 의원을 미국에 특사 파견했다. 일본에는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특사 파견하고 러시아에는 측근 이재오 의원을 특사 파견했다. 4명의 특사는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에선 조시 부시 대통령이 정몽준 특사단장을 접견해 한미동맹을 확인시켜 주었다. 후쿠다 야스오 당시 일본 총리는 이대통령의 취임식에 직접 참석했고. 다만 박근혜 특사의 역할은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없다. 당시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박근혜 특사단장을 예우하면서 '전면적 동반자 관계'라는 표현을 썼지만 외교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평가도 있다.

외교 안보와는 무관한 특사 임명도 있었다. MB 정권 말기인 2012년 1월 사공일 무역협회회장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당시 수행한 인물은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 한승수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이사회 의장,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등이다.

사공일 특사는 포럼에 참석한 전·현직 국가원수와 글로벌 기업 CEO와 함께 세계경제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 박근혜 대통령 특사 1호는 김무성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1월 당선인 시절 중국에 가장 먼저 특사를 보냈다. 미국이 아닌 중국에 먼저 특사를 파견한 첫 사례였다. 당시 김무성 의원은 박 당선인의 친서를 들고 시진핑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면담했다. 특사단에는 조원진 심윤조 의원이 수행했다.

미국에는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보냈지만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의아한 점은 일본과 러시아에는 특사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미국와 중국에는 특사를 보내면서 일본과 러시아에 특사를 안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외교 전문가들은 당시 박 당선인이 일본과 외교관계 복원에 냉담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국민의 반일감정을 감안해 서두르지 않았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러시아에 특사를 보내지 않은 이유는 외교적으로 서두를 현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한반도 주변 4대강국이라는 점에서 ‘균형외교’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은 2015년 4월 친박계 윤상현 의원을 특사로 임명해 러시아에 파견했다. 파견한 이유는 러시아 전승절 행사 때문이지만 대북 밀사 역할에 대한 추측도 제기됐다. 윤상현 특사는‘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나 친서가 있느냐’는 질문에 “친서는 없다. 러시아 전승절 축한 차원으로 갈 뿐이다”고 밝혔다.

◇ 문재인 대통령, 취임 6일만에 5개국 특사 확정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에 주변 주요국에 특사 파견을 확정지었다. 이는 한반도 주변의 외교적 상황을 심각하게 본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최근 한반도 상황은 북한 핵 문제와 사드배치 문제로 갈등이 심화돼 외교적 노력이 시급하다.

문 대통령은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해찬 전 국무총리, 문희상 전 국회 부의장, 송영길 의원,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특사로 임명했다. 5명의 특사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EU 및 독일에 파견돼 임무를 수행한다. 이번 문 대통령의 특사파견은 각 나라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로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중 주목할 특사로 홍석현 이해찬 의원이 꼽힌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은 지난 참여정부였던 2005년 주미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미국통'이다. 미국 정부와 언론, 민간단체에 폭넓은 인맥을 갖추고 있어 적임자로 꼽힌다. 다만 트럼프 백악관을 움직이는 실세들과 교분을 얼마만큼 갖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럭비공 스타일도 예측불허여서 홍 특사의 임무 수행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 의원 역시 중국통으로 적임자라는 평가다. 참여정부 때도 중국에 특사로 파견된 경험이 있는 만큼 그의 역할이 기대된다. 특히 사드 보복으로 중국 진출 한국기업의 피해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주경 기자  drem05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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