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구두는 5년 전 판 것, 직원들 떠올라 가슴 아팠다”

문재인 구두로 알려진 '아지오' 브랜드를 세웠던 유석영씨. <사진=유석영 원장 제공>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신은 구두가 화제를 모았다. 밑창이 닳고 찢어진 낡은 구두를 신은 문 대통령을 보고 ‘검소하다’, ‘인간적이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문 구두’가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수제화 ‘아지오(AGIO)’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지오는 2010년 1월, 당시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장이었던 유석영씨가 세운 사회적 기업 ‘구두 만드는 풍경’에서 만든 브랜드다. 이 공장은 지난 2013년 8월 설립 4년여 만에 폐업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유석영씨와 직접 통화했다. 유씨는 현재 경기도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다음은 유석영씨와 일문일답.

- ‘구두만드는풍경’에서 만든 문재인 대통령 구두가 화제다. 문 대통령이 이 구두를 오랫동안 신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나.

그렇다. 사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비서로부터 전화가 한 통 왔었다. 대통령이 구두를 신고 있는데 재구매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구두만드는풍경이 문을 닫아 어려울 것 같다고 정중히 얘기를 드렸다. 문 대통령이 찾으시니 제작이 어렵겠냐고 재차 물어와, 혹시 다시 만들게 된다면 연락을 따로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야기가 끝이 난 줄 알았는데 얼마 뒤에 아지오 구두가 화제가 되더라.

-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적 있나.

2012년 가을에 뵌 적이 있다. 당시 아는 사람을 통해 국회의원회관에서 좌판을 벌여 구두를 팔았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구두를 많이 샀다. 그때 윤후덕 의원이 문 대통령을 데리고 와 함께 구두를 샀다. 문 대통령이 그때 구입한 구두를 계속 신고 있는 것이니 정말 오랫동안 신은 것이다.

- 문재인 구두가 화제가 된 사실을 알고 기분이 어땠나.

많이 울었다. 가슴이 많이 아팠다. 대통령이 신어서 구두는 유명해졌지만 공장이 문을 닫았을 때, 청각장애인들과 헤어질 때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문 대통령께서 구두만드는풍경에서 만든 구두를 오랫동안 신으면서 애써주셨는데 (버티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도 컸다.

- 유시민 작가가 아지오 구두 모델을 했던 것도 화제다. 어떻게 모델이 됐나. 유 작가가 자청했나.

유시민 작가하고는 예전부터 알고 지냈다. 1989년도에 유 작가가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을 할 때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세연이라는 한 장애인 친구가 진로문제로 이해찬 의원실에 편지를 보냈다. 그때 당시 보좌관이었던 유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됐었다. 그걸 기회로 유 작가와 자주 보는 사이가 됐다. 유 작가는 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지지를 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구두만드는풍경의 모델도 부탁을 하게 된 것이다. 모델료로 아지오 구두를 한 켤레 줬다.

과거 구두만드는풍경 직원들이 아지오 구두를 만드는 과정. <사진=유석영 원장 제공>

- 구두만드는풍경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당시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운영하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범사업을 했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청각장애인들이 일정한 직업도 없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들에게 구두공장을 제안했다.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공장을 만들 테니 일을 하겠느냐 물어보니 좋다고 하더라. 그렇게 청각장애인들과 의기투합해 겁 없이 공장을 세웠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았지만 이미 청각장애인들하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사비를 내고, 정부 기관에서 보조금을 받아 설립했다.

구두공장을 만들고 나서는 구두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청각장애인들에게 구두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줄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구두 장인들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니 전부 월급을 많이 달라고 했다. 다행히 40년 경력의 구두장인 한분이 허락을 해셨다. 이 분은 아버지가 청각장애인이었던 분이었다. 그 분을 엄청 쫒아 다니면서 못살게 굴어 모셔왔다. 그렇게 구두장인 한 분, 청각장애인 여섯 명, 사회복지사 두 명 이렇게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 청각장애인들을 참여시킨 이유는 뭔가.

예전에는 유명 구두 브랜드 회사에 청각장애인 생산직원들이 80%가 넘었었다. 근데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중국에 생산 하청을 주게 되다 보니 청각장애인들이 일할 곳이 사라졌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던 터라 청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구두공장을 떠올리게 됐다. 또 경찰이 신는 구두를 각 청에서 공동 구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한몫했다. 구두만드는풍경이 청에서 공동구매하는 구두가 된다면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사화, 숙녀화 라인은 그대로 두고 경찰 구두를 따로 만들어 팔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청각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불편한 점은 없었나.

나도 장애인이다. 시각장애 1급이라 장애인 심정을 잘 안다. 청각장애는 듣지 못하지만 볼 수 있고 시각장애는 볼 수 없지만 들을 수 있다. 오히려 서로 불편한 점을 보완해주며 함께 일했다.

- 아지오는 어떤 뜻을 담고 있나.

이탈리아어로 편하다. 안락하다는 뜻이다. 당시 이름을 공모했는데,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구두를 통해 건강도 지켜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게 맘에 들어 채택했다.

- 아지오 구두의 종류와 가격대는 어떻게 되나.

20가지 종류가 조금 안됐으며, 15만원에서 20만원 선에서 판매가 됐었다.

- 아지오는 2013년에 문을 닫았다. 폐업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아지오 구두는 신세계백화점 쇼핑몰까지 입점했었다. 판매 루트는 개척했지만 자본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여윳돈이 있었으면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해서 발전할 수 있었을텐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 또 구두 판매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나중에는 돈이 없어 운영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그런데다 내가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을 나와야 될 상황이 되면서 사업을 접게 됐다. 함께 일했던 청각장애인들과 헤어질 때 많이 울었다. 인생의 황금기를 그 일에 다 바쳤다고 생각한다.

- 구두만드는풍경에서 일했던 청각장애인 직원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한번 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지오에 대한 옛 추억을 되살리고, 아지오를 다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을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눴다.

- 아지오를 다시 운영할 계획이 있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때만큼의 에너지는 없다. 하지만 당시 일했던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뭉치자고 결의하면 기꺼이 동참하겠다.

아지오 구두가 진열 된 모습. <사진=유석영 원장 제공>

- 구두만드는풍경은 청각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처음에는 장애인들이 만든 구두라고 해서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그런 인식을 바꾸고 사회적기업으로서 공신력을 얻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사실 사회적 기업은 국가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구두만드는풍경은 아무리 힘들어도 의존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두장인 월급 정도만 지원 받고 어떻게든 버텼다. 돌이켜보면 지원을 많이 받아 구두만드는풍경을 유지했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 장애인복지관장을 지냈는데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장애인들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중 하나가 일자리다. 일한만큼 소득을 갖게 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장애인 직업재활은 꼭 필요하다.

- 문 대통령 구두를 구입하고 싶다는 글이 인터넷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구입할 방법이 있나.

현재 구두만드는풍경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어렵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고 아쉬울 따름이다. 아지오 구두를 계속 만들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리더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 장애인의 입장에서 문 대통령에게 소원 한 가지 청한다면.

대통령께서 일자리를 최우선의 과제로 정한 건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시장과 연결고리를 잘 만들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장애인에게도 계획성 있는 일자리가 주어지고 지속적으로 육성시켜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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