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궁의 건축재료로 쓰기 위해 에도시대 때부터 엄격히 관리해온 일본 아자카와 편백 숲. <사진=고규홍>

‘일본의 삼대 아름다운 숲’의 하나로 꼽는 숲으로 아자카와 숲이 있다. 일본 토종나무인 편백이 주종을 이루는 참 아름다운 숲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천연의 숲은 아니다. 대략 삼백 년 동안 철저하게 인공적으로 관리한 숲이다.

일본의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쟁이 잦아들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자 일본 사회에는 건축 붐이 일었다. 생활의 안정감을 얻었다는 신호였다. 건축 재료로 가장 선호한 나무는 편백이었다. 자연스레 숲에 서있는 크고 좋은 편백은 마구 베어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카자와 숲에서 자라는 편백은 그 가운데에도 가장 큰 피해를 받았다. 이 지역에서 자라는 편백의 목재가 우수하다는 평이 있었던 까닭이다.

일본 신궁의 건축재료로 쓰기 위해 에도시대 때부터 엄격히 관리해온 일본 아자카와 편백 숲. <사진=고규홍>

아카자와 숲은 황폐화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신궁(神宮)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구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질 좋은 목재로 유명했던 아카자와 숲의 편백을 엄격히 관리한 건 당연한 순서였다. 숲의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조례를 발표됐다. “나무 한 그루에 사람 목 하나, 나뭇가지 하나에 사람 팔 하나”라는 무시무시한 조례였다.

나무를 베어내는 사람은 사형에, 나뭇가지를 잘라낸 사람은 팔 하나를 잘라낸다는 살벌한 조례였다. 이처럼 엄격한 관리가 시작된 게 삼백 년 전이다. 지금 이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큰 나무들은 그때부터 이 숲에 살아남은 편백들로, 대략 수령 삼백 년 정도 된 나무다.

조선의 궁궐 건축을 위해 금송령을 내려 지킨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의 겨울풍경. <사진=고규홍>
조선의 궁궐 건축을 위해 금송령을 내려 지킨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의 겨울풍경. <사진=고규홍>

우리나라에도 그런 숲이 있다. 조선시대 때에 우리 숲의 나무들은 민간에서 땔감으로 많이 이용했다. 이같은 사정이 지속되자, 궁궐 건축을 위한 목재를 구하기가 몹시 어려워졌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좋은 소나무가 자라는 지역에 황장금표를 설치하고, 소나무를 베는 일을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숲이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이다. 이 숲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우리나라 궁궐 건축에 가장 많이 쓰였던 금강소나무다. 조정에서는 소광리 숲의 금강소나무를 이용하기 위해 숲 입구에 황장봉계표석을 세우고, 숲의 나무를 엄격히 관리했다.

물론 숲을 지키기 위한 여러 흔적들은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 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 황장봉계표석만큼 엄격히 관리한 흔적은 없다. 그같은 금송(禁松)정책으로 우리의 소나무는 지켜졌다. 일본의 아카자와 숲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 역시 궁궐 건축 재료로 쓰기 위한 목적으로 지킨 숲이다. 즉 더 잘 쓰기 위해, 달리 이야기하면 더 효과적으로 베어내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나무를 지킨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 그 자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경우는 없을까. 우리의 경우에는 나무를 마치 조상의 흔적, 혹은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여기며 지켜온 사례가 많이 있다. 이는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살아온 모든 민족에게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서 마을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지켜낸 상주 용포리 느티나무 한 쌍. <사진=고규홍>

경북 상주 용포리라는 작은 마을의 입구에는 한 쌍의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 한 쌍의 느티나무는 마을을 처음 일으킨 마을 입향조가 마을을 일으킨 뒤에 손수 심은 나무라고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조상의 혼이 담긴 나무로 여기며 해마다 당산제를 지내며 애지중지 모신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서 마을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지켜낸 상주 용포리 느티나무 한 쌍. <사진=고규홍>

이 나무에 위기가 찾아온 건 지난 2009년이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가 마침 사유지였는데, 땅 소유자가 땅을 파는 바람에 나무까지 팔려나갈 상황이 되었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나무가 서 있는 땅의 비용을 모두 물어내면서라도 나무를 지켜냈다. 나무수집상이 사들인 비용은 당시 비용으로 3천3백만원이었고, 열다섯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는 총 비용을 가구수로 나누어 부담했다. 빚을 내고 심지어 농협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사람들은 비용을 마련했고, 마침내 나무수집상과 합의를 이루어 땅과 나무를 온전히 돌려받았다. 나무를 더 잘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무 그 자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선조의 혼으로 여겨온 결과다. 이처럼 나무를 목재로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무 그 자체의 가치를 존중해 지킨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는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나무를 더 잘 활용하기 위해 지키는 것이든, 혹은 조상의 얼을 지키기 위한 것이든, 또는 자연 경관을 지키기 위해서든……. 목적이야 제가끔 다르지만, 사람을 더 이롭게 한다는 결과에서만큼은 다를 게 하나 없다.

미세먼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또 목조 문화재 복원을 위해서도 나무를 지켜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목적이야 무엇이든 좋다. 사람이 더 평화롭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무가 없으면 안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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