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월요신문 편집인.

언론은 사회의 공기인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원 구조’ 오보가 없었다면 최소한 여러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쯤 되면 언론은 사회적 공기가 아니라 흉기나 다름없다. 속보경쟁이 낳은 한국 언론의 민낯을 드러내는 대표적 예다.

더 심각한 것은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을 때 다수 언론은 침묵했다. 오히려 합병에 힘을 실어준 언론도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가 한창일 때 일부 언론은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으로 인해 손해 본 것 없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 언론사는 6월 8일 서울지방법원의 판결 내용을 잘 읽어보고 오류를 바로잡기 바란다.

한국 언론의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정글의 법칙’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무관심하다. 그게 뭐냐고?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대표적인 예 하나를 꼽아보자.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600일 넘게 천막 농성 중이다. 진보 성향의 언론사를 제외한 다수 언론은 이들의 호소를 외면하거나 겉 핧기식 보도를 해왔다.

삼성 백혈병 피해자를 도운 일등공신은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정부는 노골적으로 삼성 편을 들었고 언론은 사회의 공기로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의 오불관언적 행태는 산 증거다. 근로복지공단은 법원의 삼성 백혈병 피해자 산재 인정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피해자 유가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복지공단이냐”며 오열했지만 귀 기울인 언론은 소수에 불과했다.

추측컨대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지 않았으면 삼성 직업병 문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이재용 체제로 바뀌면서 삼성은 반올림과 협상에 임했지만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아일랜드 태생의 비평가 사무엘 베케트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언론의 존재와 역할을 심각하게 부정했다.

"저널리스트는 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이 필요하면 보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떠드는 동안 보도가 진실이 되기를 바란다"

이 말은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그래도 처칠의 언론관보다는 낫다. 윈스턴 처칠은 "신문은 바지의 주름과 같은 것이다. 바르게 날을 세워두는 것보다 구겨져 있는 편이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 이면에는 숱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자본가 정치인 등 사회의 내로라 하는 유명 인사들이 보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눈이 밝은 독자들은 기사의 행간을 읽는다. 그런 독자가 많아질수록 언론은 긴장하고 사회는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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