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6일, 나라를 위해 온몸 바쳐 싸우신 선열들을 기념하던 날. 현충원 단상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무거운 표정으로 추념사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모진 수모를 당하면서도 끝내 조국을 버리지 않은 독립운동가들,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한국전쟁의 병사들을 지나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대목에 이르렀을 때, 대통령은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조국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과연 베트남 파병은 조국경제를 위해서라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대통령의 언급은 한국전쟁 덕분에 죽어가던 경제가 되살아났다는 일본인들의 논리와 왠지 비슷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소식이 베트남에 알려짐과 동시에 반한(反韓) 감정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사태를 주시하던 베트남 외교부는 엿새가 지난 6월 12일, 자체 홈페이지에 항의 성명을 게재했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 베트남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가 결코 아물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이고,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지 되짚어보아야겠다고.

나는 1998년, 베트남 전쟁이 막을 내린지 24년이 지나서야 태어났다.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매우 단편적인 몇몇 조각들뿐이었다. 참전 군인들이 벌어들인 외화로 경제성장이 가능했지만, 민간인 학살이나 성폭행 같은 부끄러운 오점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베트남 참전용사였던 먼 친척을 뵈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명절날 세배를 드리면 곧잘 용돈을 주시던, 서글서글한 분이었다. 그분이 매일 같이 술을 드시며 가족의 생계를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뵈었을 때도 초점 잃은 눈을 껌벅거리고 계셨었지. 아마 전쟁의 후유증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가슴 아픈 역사의 맥락을 들여다보고 싶어 펼쳐든 책이 『베트남 전쟁』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저자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외국 군대가 한국의 방위를 지켜주는 상황에서 한국군이 다른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파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시 한국군의 전력은 북한에 비해 그리 우세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금의 공백이라도 생긴다면 휴전선에서의 방위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파병을 강행한 이유는 미국의 주한미군과 한국군 동시 감군 정책 때문이었다. 미군의 철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이었던 군의 감축 역시 용납할 수 없었기에 박정희 정권은 필사적으로 베트남 파병에 나섰던 것이다. 거기다 하나를 덧붙인다면 미국을 도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대의명분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의 이러한 목적 내지 기대는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주한미군 감축은 차근차근 진행되었고,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지지부진했다. 곳곳에서 게릴라전이 벌어짐에 따라 사상자 역시 꾸준히 늘어났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이 전쟁에 아무런 명분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부패한 남베트남의 독재정권은 자유민주주의는커녕 이미 국민들로부터 완전히 신의를 잃은 상태였다. 많은 사람들이 정권에 맞서기 위해 베트콩에 합류했고, 미국과 한국의 군인들은 베트콩을 사살한다는 이유로 민간인마저 학살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군인들 역시 국가에 의해 동원된 피해자였다. 병사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전장에서의 일상이 비참하기 그지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새로운 명분을 찾아냈는데, 바로 경제적인 이익이었다. 당시 한국군이 받는 전투 수당은 미국의 4분의 1, 그리고 심지어 필리핀이나 타이보다도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병 군인들이 수당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송금했기에, 정부는 여기에 수수료를 부과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곳곳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일했던 근로자와 기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후반, 국민총생산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은 바로 이들의 피 묻은 돈 에 의지해서였다.

외화벌이에 대한 정부의 욕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70년대 초, 미군과 필리핀군, 타이군이 물러나는 상황에서도 철수 여부를 정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결국 북베트남의 총공세로 수많은 장병과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던 마지막 순간에서야 정부는 후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타이와 캄보디아 파병을 추진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누구를 위한 경제 성장이었을까? 아직도 한국에는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참전용사들이 있다. 고엽제 피해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는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 성폭행을 당한 할머니들이 존재한다. 국가는 이들에게 한번이라도 무릎 끓고 사과한 적이 있었던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여전히 진물이 흐르고 있다. 부끄러운 역사를 직시할 때라야만 훗날 비슷한 역사가 반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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