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백' 미끼로 캐피탈 할부계약 체결...소비자 피해 구제 어려워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김혜선 기자] 최근 ‘페이백’으로 소비자를 유인해 저가 상품을 비싸게 구매하도록 간접 할부 계약을 체결한 뒤 업체를 폐업, 돈만 챙겨 달아나는 수법의 ‘신종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간접할부계약은 소비자가 물품 대금을 판매자를 대신하는 제3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이다. 캐피탈사는 소비자에 신용대출을 해주고 제휴업체에 중개수수료와 물건 값을 내준다. 하지만 제휴사가 약속된 페이백을 거절하고 폐업해버리면 소비자는 울며겨자먹기로 할부금융사(캐피탈) 측에 매달 할부금을 갚아야 한다. 

이 같이 간접할부금융을 악용한 페이백 사기는 사실상 형사처벌도 어렵고 개별 소송을 거는 것 외에 구제 방도가 없어 금융 당국의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홍모씨(29·주부)는 S업체로부터 “음식물 분쇄기 무료체험을 신청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S업체는 “3개월 동안 음식물 분쇄기를 무료체험한 후 구입을 원하면 현금 4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며 “매달 3만9900원의 렌탈비를 내면 통장으로 3만9900원을 페이백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홍씨는 3개월 간 S업체의 음식물 분쇄기를 사용했고, 이후 현금 40만원을 계좌이체해 물건을 구입했다. 그러나 물건을 구매한 후에도 렌탈비가 매달 청구돼 이상하게 여긴 홍씨가 알아보니, 한 캐피탈 업체에 90만원가량의 간접할부 계약이 체결돼 있었다. 

뒤늦게 홍씨는 계약취소를 위해 업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자금 융통이 안 돼 어렵다”는 설명만 들었고 해당 업체는 잠적해버렸다. 홍씨는 “40~50만원대의 음식물 분쇄기를 130여만원에 구입한 셈”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23일에도 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이 ‘피해자모임’ 카페를 개설했다. 이들 피해자는 “CCTV를 설치하고 영화사 쿠폰을 매장에 비치하면 일정 금액을 페이백해주겠다”는 영업사원의 말에 캐피탈 할부 계약으로 CCTV를 설치했지만, 이 업체는 약속된 페이백을 하지 않고 경영난을 이유로 돌업 폐업했다.

<사진=피해자 모임 카페 캡쳐>

피해자들은 “매장에 설치한 CCTV도 품질이 떨어져 알아보니 8개 세트에 50만원대의 저가형이었다”며 “황망하여 캐피탈에 문의하니 업체측에서 이미 돈을 일괄로 지급받아 사라졌고 피해자들은 남은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처지”라고 호소했다.

피해 규모도 광범위하다. 피해자 카페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피해 확인이 된 사람만 150여명이 넘어간다. 최소 240만원부터 많게는 1000만원 넘게 사기 당한 사람들이 강원도부터 부산까지 전국적으로 있다”며 “이미 당한 금액도 수십억원 단위”라고 주장했다.

CCTV 피해자 카페가 단체로 고소장을 접수한 부천 원미경찰서는 “현재 비슷한 내용의 고소장이 70~80장 가량 접수됐다”며 “현재 문제 업체의 대표의 주거지를 확인하는 중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캐피탈-페이백 사기 피해, ‘소비자’ 구제는?

페이백을 이용한 간접할부계약 피해가 줄줄이 발생하지만, 피해를 입은 소비자의 구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이면계약’ 사실로 인해 분쟁이 일어나면 소비자가 불리한 상황”이라며 “페이백 계약은 캐피탈 측이 아닌 판매업체와 맺은 것이기 때문에 (페이백을 못 받아도) 할부 계약을 맺은 캐피탈 사와의 채무관계는 계속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매업체에도 ‘사기죄’를 적용하기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페이백 사건은 해당 회사가 부도가 났는지, 의도를 갖고 잠적했는지 알아봐야 한다”며 “업체가 계속 페이백을 해 왔다면 사기로 볼 수 없지 않나”고 답했다. 사기죄 성립을 위해서는 피해자를 속였다는 ‘기망행위’를 입증해야 하는데, 고의성 없는 단순 부도로 인한 폐업한 경우 업체 측에 사기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금감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캐피탈 사는 업체와 간접할부금융 제휴 계약을 할 때 어떤 품목을 얼마에 팔지 심사해야 한다”며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캐피탈 사가 ‘불량 업체’를 제대로 걸러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유의’도 필요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 2015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무료이용 빙자한 할부계약에 주의하라는 내용의 소비자 경고 정보지를 발행한 바 있다”며 “무심코 할부계약 등을 체결할 경우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판매업체가 제시하는 할부계약 조건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인데다, 캐피탈 측에서도 제휴업체의 이면계약 등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캐피탈 측이 제휴계약 체결 단계에서 상품을 적절한 가격에 판매하는 지 적절하게 심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캐피탈사와 판매업체 간 간접할부금융 제휴에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은 전무한 상태로, 금융 당국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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