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임민희 기자]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비리의혹이 정치쟁점화 되면서 핵심이슈들이 실종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개헌안과 추경예산안 처리는 물론 대정부질문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등 국회마비 사태가 초래됐다.

금융권 상황은 더 심각하다. 금융권 채용비리 의혹과 하나금융지주 지배구조 검사(김정태 회장 3연임 적정성 등), 삼성·한화 등 대기업계열 금융그룹 통합감독 방안 마련, 여기에 최근 불거진 신한금융지주 임직원 자녀 채용비리 의혹과 삼성증권 배당사고까지 금융현안은 산더미인데 전·현직 수장의 잇단 비리의혹으로 금감원은 정상적인 업무추진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권 내에서는 김 원장의 비리의혹 사태로 인해 현 정부가 추진해온 금융개혁과 적폐청산 작업이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금감원은 금융권내 적폐 1호로 지목된다. 금감원은 정부기관인 금융위원회와 달리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민간인 신분임에도 금융회사 감독 및 검사 등의 공적업무를 담당하기에 감독당국으로 대우를 받아왔다. 하지만 금감원이 민간금융사를 대상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인사 등에 개입하고 고위퇴직자들이 법무법인 등에서 경력세탁을 거쳐 금융사나 금융협회 등의 주요요직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금피아’ 비판을 사고 있다.

또한 2008년 은행 키코(KIKO) 불완전판매 사태,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2013년 동양그룹 사태(동양증권의 계열사 기업어음 불완전판매), 2014년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사고, 지난해 금융권 채용비리, 올해 삼성증권 배당사고 등 굵직한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감원은 감독부실 논란에 휩싸였지만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금융사와의 유착문제 해결을 위해 부서간 교차인사를 해왔으나 진정한 의미의 인적쇄신은 아니었다.

역대 금감원장은 민간출신인 최흥식 전 원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료출신들이 맡아왔다. 11명의 원장 중 3년 임기를 제대로 채운 사람은 윤증현(5대)·김종창(7대) 전 원장 등 단 2명에 불과하다. 역대 원장들이 중도 퇴임한 사유를 보면 대체로 정권교체나 금융사고·감독부실 등 업무소홀로 인한 문책성 사임사례가 주를 이뤘다.

특히 유력 관료출신 인사들을 제치고 금감원 수장에 오른 최흥식 전 원장의 낙마는 뼈아팠다. ‘첫 민간출신 금감원장’이었던 최 전 원장이 채용비리 의혹으로 6개월만에 불명예 퇴진한 후 바통을 이어받은 김기식 원장마저 비리의혹으로 자진사퇴를 종용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 원장은 지난달말 금감원 수장으로 내정됐을 때만해도 각종 비리로 실추된 금감원의 위상을 바로 세울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재벌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그간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경제·금융개혁을 위한 거침없는 쓴소리를 내왔기에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김 원장은 과거 국회의원 시절의 ‘외유성 출장 논란’과 ‘후원금 유용 의혹’ 등으로 취임 2주만에 사퇴기로에 놓였다.

김 원장이 관련 의혹에 대해 공익적 목적의 출장이었으며 후원금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출연하거나 국회관행을 따랐다는 해명을 내놨지만 오히려 ‘거짓해명’ 논란으로 확대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김 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행위 중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야권과 성난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김 원장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오고 후원금을 임의로 사용한 점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자신들도 그리 떳떳하지 않은 자유한국당 등 야권이 민생현안을 뒤로한 채 6월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전략으로 김 원장의 비리의혹을 이용하는 것은 오히려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검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조사에서 김 원장의 위법성이 밝혀진다면 법적절차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김 원장 역시 자신의 거취를 청와대에 일임할 게 아니라 과거 행적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었다면 스스로 물러나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인재를 등용하는 일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의미한다. 금융개혁과 적폐청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를 두고 시도자체를 비판하며 구태인사(관료출신 인사) 시절로 회귀하는 건 옳지 않다.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금융개혁 작업이 흔들림없이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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