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고은별 기자] 월 2만원대 보편요금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 심사를 통과했다. 국내 대표 이동통신 3사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업계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일제히 아쉬움을 표했다.
14일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이통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앞서 규개위 심사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난감한 입장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개정안이 이미 규개위 문턱을 넘어 이통3사는 뚜렷한 대응책 없이 관련 법안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통사 한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사업자 영역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며 “이통사들은 지난해 선택약정 할인율 확대, 취약계층 요금 감면 등 자체적으로 (가계통신비 인하에)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이런 부분은 인정받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통사 관계자도 “보편요금제가 민간기업에 대한 직접적 가격통제로 작용할 수 있는 점이 우려된다”면서 “가계통신비 경감을 위한 이통사의 노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듯해 아쉽다”고 비슷한 입장을 전했다.
앞서 대통령 직속 규개위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7시간에 걸친 마라톤 논의 끝에 보편요금제 도입 내용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의결했다.
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은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사회적 필요성 부분이 많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며 “자세한 내용은 추후 전달받아야 하겠지만 우선 원안대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보편요금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보편요금제는 현재 월 3만원대에 제공 중인 통신서비스(데이터 1GB, 음성통화 200분)를 월 2만원대에 제공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에 보편요금제 도입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다만 업계는 SK텔레콤이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면, 경쟁사인 KT·LG유플러스 또한 유사 요금제 출시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통3사는 보편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기존 요금제 가격에도 연쇄 인하 효과가 발생해 수익에 큰 타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통3사는 지난해 말 시행된 선택약정 할인요율 상향과 취약계층 요금 감면 등 규제환경을 이유로도 올 1분기 경영실적에서 쓴맛을 봤다.
SK텔레콤의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 20.7% 감소했으며 KT는 매출·영업이익 두 지표에서 1.8%, 4.8% 각각 줄어들었다. LG유플러스는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3.4% 소폭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7.5%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장 낮은 요금제 자체가 기존 3만원대에서 2만원대로 내려가게 되면 요금제 책정 기준점이 하향 조정됨에 따라 상위 요금제도 값이 함께 내려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금 보편요금제 도입 자체는 SK텔레콤에서 해야 한다는 건데, 시장 경쟁체제인 KT와 LG유플러스도 보편요금제를 자연적으로 도입하게 될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이통3사 수익 구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현재 정부는 보편요금제 도입 시 이통3사의 직접 매출 감소분이 7812억원이고, 이를 통해 생기는 이용자 편익은 연간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증권사와 이동통신 업계에선 보편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연간 2조2000억원의 손실이 따를 것으로 추산했다.
만약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정부는 2년마다 요금 및 데이터 제공량을 재산정할 수 있다. 요금제 가격이 인하되거나 또는 동일한 요금에 음성·데이터 제공량을 더 늘려야 하면 이통사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이 이통3사가 모두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면 알뜰폰 사업자의 경쟁력은 급감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금의 알뜰폰 사업자에겐 이통3사보다 저렴한 요금제가 경쟁력이다. 알뜰폰 업계에선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최소 80만명에서 150만명까지 가입자가 이탈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1일 규개위 2차 회의에 참석한 알뜰폰 사업자 대표 박효진 세종텔레콤 상무는 “보편요금제는 알뜰폰 시장인 중저가 시장의 이통사 진입을 법제화하는 것으로 (알뜰폰 사업 기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며 “2만원대 요금제에 대응하려면 (알뜰폰 사업자는) 1만4000원대 요금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를 거쳐 빠르면 다음 달 국회로 이송될 전망이다. 국회 내에서도 개정안을 놓고 영업의 자유 및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 이통사 한 관계자는 “향후 국회에서 법안에 대한 합리적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