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메이슨, 총 9천억 손배 요구
대우일렉 국제중재 패소…대응책 마련 서둘러야

[월요신문=지현호 기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이어 메이슨마저 ISD에 중재의향서를 접수, 우리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나서서다. 최근 외국계 기업이 낸 ISD에서 첫 패소를 겪은 만큼 소송 전 충분한 준비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공단 스스로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위해 합병 시너지 자료를 조작한 사실을 인정해, 이번 소송전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졌다.

국민연금은 지난 3일 내부감사결과 당시 조작을 주도한 직원 1명을 해임하고, 1명에게 불문경고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측은 "국민신뢰 회복을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 대한 내부검사를 실시하고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위반 직원에 대해 해임 등 엄중 문책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표가 나가면서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엘리엇과 메이슨이 유리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은 지난달 8일 우리 정부에 투자자-국가간 소송(ISD)를 추진, 관련 중재의향서를 접수했다.

중재의향서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상대 정부를 제소하기 전 소송 대신 중재 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서면 통보로, 중재의향서를 접수하고 90일이 지나면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메이슨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과 관련된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로 인해 최소 약 1880억원(1억7500만 달러)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내용으로 앞서 엘리엇 역시 중재의향서를 접수했다. 엘리엇은 7182억원(6억7000만달러)대 피해를 주장했다. 엘리엇측은 "박근혜정부 시절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과 주주들이 6억700만달러 상당의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반대세력이었던 이들은 각각 7.12%, 2.2%의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이 해당 사건에 대해 조작·개입을 인정한 만큼 향후 중재재판에서 우리 정부는 불리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패소 시 최대 약 9000억원에 달하는 혈세를 외국기업에 뜯기게 되는 셈이다.

최근 ISD 국제중재에서 패소한 선례도 있어 불안감은 가중된다.

우리 정부는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관련, 이란 엔텍합의 대주주 다야니측이 제시한 ISD 국제중재에서 사실상 패소했다. 다야니측이 청구한 935억원 중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받은 것이다.

다야니는 엔텍합이 2010∼2011년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공평한 대우 원칙을 위반했다며 2015년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당시 자산관리공사(캠코)가 포함된 채권단은 우선협상대상자였던 엔텍합이 대금지급기일을 넘기자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엔텍합은 2011년 매각 진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결국 국제중재로 넘어갔고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캠코가 한국 정부 국가기관으로 인정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한국 정부에 730억원 상당을 다야니에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대우일렉트릭스와 삼성물산 합병 건은 사안이 다르다"며 "엘리엇, 메이슨이 각각 제기한 국제중재는 관계 부처 합동 대응체계를 갖추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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