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90% 감면에 “갚는 사람이 바보”…역차별 논란도 나와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금융위원회가 취약계층에 대한 빚을 최대 90%까지 확대해주는 정책을 발표하자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 바보 만드는 정책’, ‘필요할 때 빌리고 못 갚겠다고 하면 정부가 알아서 탕감해준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국도 이번 채무 탕감 확대로 발생할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취약계층이 1500만원 이하의 채무를 10년 이상 장기연체 중인 경우 3년만 성실 상환하면 잔여채무를 면제해주는 특별감면 프로그램이 이르면 6월부터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전북 군산의 공설전통시장과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등 서민금융 현장을 방문해 이러한 내용 등을 담은 개인채무자 신용회복지원제도 개선방안을 18일 발표했다.

금융위는 우선 상환능력이 없는 취약채무자를 대상으로 6~8월 중 특별감면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 대상자는 3개월 이상 연체한 기초수급자(생계·의료)·장애인연금 수령자와 70세 이상 고령자다. 10년 이상 1500만원 이하 채무를 장기연체한 저소득층도 해당한다.

금융위는 이들의 채무에 대해 상각채권은 원금 70~90%를, 미상각채권은 30%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1500만원 이하 장기연체자의 경우 채무조정으로 감면된 채무를 3년간 연체 없이 성실 상환하면 잔여채무를 모두 면제해준다.

연체 90일 이상 채무자 중 금융회사가 아직 채권을 상각하지 않은 사람도 최대 30%까지 원금 감면을 허용하기로 했다.

금융회사는 통상 연체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나야 채권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장부상 손실로 처리한다. 지금은 금융회사가 상각처리하지 않으면 원금 감면이 안 돼 개인 워크아웃에 들어가도 상각 전까지는 이자 면제나 장기 분할상환 등만 가능하다.

금융위는 미상각 채무라도 채무과중 정도에 따라 최대 30%까지 원금을 감면하고 대신 금융회사들이 원금 감면분에 대한 세법상 손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상각된 채무의 원금 감면율은 30∼60%에서 20∼70%로 확대하기로 했다. 더 갚을 수 있는 사람은 더 갚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덜 갚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같은 정책이 발표되자 은행권을 비롯한 업계에서는 도덕적 해이 문제와 형평성 등을 지적하며 오히려 채무 상환 의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채무 탕감이 계속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면서 “꾸준히 빚을 갚아나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아야 될 돈인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탕감해준다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은행이 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당국도 이번 정책을 발표하면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우려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준우 금융소비자국장은 “서민금융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도덕적 해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한다”면서 “고의적 연체를 막고자 채무조정 신청일 1년 이내 대출은 적용하지 않고, 실효 및 신청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방지책도 함께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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