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웃을 수 없는 ‘선진국 대열’ 합류…성장 정체·고용 부진·양극화 심화

경제부 고병훈 기자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선진국 진입 기준으로 여겨지는 3만달러를 처음으로 돌파했다. 인구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GNI가 3만달러 이상인 ‘3050클럽’에 7번째로 진입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2018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1349달러로 1년 전(2만9745달러)보다 5.4% 늘었다. 1인당 GNI는 한 나라의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통계다. 한 국가 국민의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총소득이 67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최빈국이었다. 이번 국민총소득 3만달러 돌파는 전쟁 후 폐허 속에서 압축적으로 경제성장을 일궈 온 전 국민의 피땀 어린 노력이 담긴 것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우리는 사상 최초로 수출 6천억 불을 달성했으며,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었다”면서 “세계 6위 수출국이 되었고, 세계에서 7번째로 경제 강국 ‘30-50클럽’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국민은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걸맞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며 성과를 자축했다.

하지만 정부의 평가와는 다르게 국민들은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자축할 틈도 없이 오히려 삶이 더 팍팍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들이 경제 성장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고용 시장은 얼어붙어 있고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조차 “고용 시장 상황은 개선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데다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어 반쪽짜리 성과”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고용탄성치’(고용 증가율/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는 0.136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었던 2009년(-0.518) 이후 최저였다.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주력 산업이 노동집약형에서 자본·기술 집약형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

주력 산업 중 그나마 고용 효과가 큰 자동차, 조선 업황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성장세를 이끈 반도체의 경우 고용 유발 효과가 크지 않다.

<사진=뉴시스>

실제로 지난해 고용지표는 줄줄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전년 대비 취업자는 9만7000명 늘어 글로벌 금융위기에 시달리던 2009년(-8만7000명) 이후 최소였다.

실업률은 3.8%로 2001년(4.0%)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15∼29세 청년 실업률은 9.5%로 전년보다 떨어졌지만 2000년대 들어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

양극화도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구 월평균 명목소득(2인 이상 가구)은 전년 대비 역대 최대인 17.7% 감소했다.

반면 최상위 20%(5분위) 가구 명목소득은 통계 작성 후 가장 큰 폭(10.4%)으로 늘었다. 5분위 가구의 소득을 1분위 가구 소득으로 나누어 계산하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작년 4분기 5.47로, 통계를 낸 이래 같은 분기 기준으로 최고였다.

전체 숫자로 성장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상위 소수에 성장의 과실이 쏠리다 보니 대다수 서민이나 하위계층은 성장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경제 성장세가 빠르게 꺾이고 있는 점을 이유로 국민총소득 3만달러 돌파에 축배를 들며 안주할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본격적인 선진국이 되려면 3만달러대를 빠르게 돌파하고 성장세가 더욱 확대해야 하는데 생산가능인구 감소, 고령화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국은 선진국 주변에 머물러 있을 우려가 크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2006년(2만795달러) 2만달러를 처음 돌파하고 12년 만에 3만달러 고지를 밟았는데, 이는 미국(9년), 영국(11년), 독일(5년), 일본(5년)보다 한참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소득분배지표가 나빠서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며 “저소득층은 당연히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돌파를 체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외형적인 소득 지표로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양극화 확대, 일자리 부진 등으로 서민, 저소득층은 경제 성장의 과실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인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외형적 지표의 성장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유엔의 2018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57개국 중 57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세계에서 7번째로 ‘3050’ 클럽에 가입한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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