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데이터 없는 ‘주먹구구식’ 정책 비판…“근본적인 문제 해결 안돼”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금융위원회와 신용회복위원회가 내놓은  ‘취약채무자 특별 감면제도’와 ‘주택담보대출 채무조정 다양화 방안’을 놓고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일부터 취약계층이 3년간 성실히 빚을 갚으면 남은 채무를 최대 95%까지 감면해주고,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상환 능력에 따라 장기분할상환, 상환 유예, 금리 인하 등을 적용할 방침이다.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자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는 이들이 적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서민부채를 경감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취약채무자 특별감면제도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증 장애인, 만 70세 이상 고령자, 장기소액 연체자 등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실제 수혜를 입을 사람과 채무 감면액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다.

금융위는 채무 원금이 총 1500만원 이하라면 감면된 채무를 3년간 연체하지 않고 최소 50%를 성실히 갚을 경우 남은 빚이 면제된다고만 밝혔다.

기존에는 일정 수준을 변제해야 잔여 채무가 면제됐지만, 특별감면을 통해 일정 기간을 갚아나가면 변제한 금액과 상관없이 남은 빚을 면제받을 수 있다. 최대 90%를 먼저 깎아준 뒤 남은 빚의 절반을 갚으면 나머지가 없어지는 방식(+5%포인트)이라 최대 95%까지 감면이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감면 수준을 기존보다 높이고, 이후 남은 빚에 대해서는 절반만 성실히 갚아도 나머지를 탕감해준다”며 “앞과 뒤에서 두 차례 감면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당국은 채무 원금 1500만원 이하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증 장애인, 만 70세 이상 고령자, 장기소액 연체자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채무를 3년간 연체하지 않고 남은 빚을 면제받을 수 있는 여력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부의 발표대로 1500만원 이하의 채무 원금에서 감면된 채무를 3년간 연체하지 않고 최소 50%를 성실히 갚을 경우 수혜를 입을 금액도 크게 줄어든다.

최대 95% 감면이라는 수치만 볼 때, 이번 채무조정 개선안은 분명 파격적인 지원이다. 다만 금융위는 ‘도덕적 해이’ 지적을 우려한 듯 무분별한 채무 감면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실효 및 신청자격을 제한하는 등 심사 절차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정책 저변에 깔려 실질적인 혜택의 범위가 더욱 좁아지는 부작용도 동반한 것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서민금융을 위해 기존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진행하는 개인워크아웃이나 법원이 시행하고 있는 개인파산·면책제도도 혜택을 보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제대로 된 데이터 없이 발표하는 ‘주먹구구식’ 채무 감면책은 서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채무탕감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도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서민의 채무에 대한 정책은 매년 수차례씩 쏟아지지만 그때마다 ‘도덕적 해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정책에 대해서도 ‘필요할 때 빌리고 못 갚겠다고 하면 정부가 알아서 탕감해준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 ‘돈을 빌리면 갚아야 된다’는 금융의 기본 원칙을 지키며 성실히 갚고 있는 사람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권에 빌린 돈의 금액이 적든 많은 이행의무를 다해야 하는게 정상”이라며 “빚 탕감을 통해 서민의 재기를 지원한다는 취지에는 공감을 하지만 차라리 소득증대와 양질의 일자리 제공 등을 통한 실질적인 방안 마련이 더욱 시급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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