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소재 대체제 마련 부심…삼성, 협력사에 지원 요청
최소 6개월 장기전 예고…정부·업계, 초당적 대응 한뜻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국내 전자·디스플레이 업계의 대응이 전방위적으로 뻗어 나가는 분위기다. 현지 상황 점검에 이어 ‘탈(脫) 일본화’ 생산 시도, 협력사까지 동원하는 노력 끝에 이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정부도 한마음 한뜻이다. 일본의 2차 경제 보복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범국가적 대응을 위해 비상협력기구를 설치하기로 하는 등 초당적 대응에 나섰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전자·디스플레이 업계가 국산 불화수소(불산)의 테스트를 진행 중인 가운데,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CE(소비자가전)부문과 IM(IT·모바일)부문은 최근 구매팀 명의로 국내 협력사들에 공문을 보내 일본산 소재·부품 전 품목에 대한 90일치 이상의 안전재고 확보를 요청했다. 재고 확보 시한은 이달 말까지 늦어도 8월 15일까지로 정하고, 재고 관련 모든 비용은 삼성전자가 부담하는 조건이다.

일본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양국의 갈등이 격화되며 소재 분야 수출 규제가 확산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불화수소 등 3개 품목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려는 추가 조치도 예고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조치를 두고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주문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협력사에 보낸 공문에서도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한국에 대한 일본 업체의 수출 규제 품목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전자·디스플레이 업계는 일본 소재의 대체제 마련에 부심 중이다. 당장 급한 것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 공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달 초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발표된 직후 국산·중국산·대만산 등 불화수소의 품질 테스트에 돌입했으며, LG디스플레이 또한 디스플레이 공정 과정에 쓰이는 일본 불화수소 대체를 위해 국산 제품 성능 테스트 중이다.

일각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국산 소재를 활용해 빠르면 이달 말 시험생산에 돌입할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국산 불화수소 테스트 등 생산 차질이 없도록 구매선을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일본 불화수소 대체제를 찾아 곧 시험 생산한다는 것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7일 일본으로 긴급 출국해 현지 반도체 소재 수출 업체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고, 최근 김동섭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사장)도 원자재 수급 관련 협의를 위해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반도체 등 일본산 소재에 대한 국내 업계 의존도는 40%~90%로, 이번 수출 규제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업의 움직임이 발빠르다.

이처럼 국내 전자·디스플레이 업계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대체제를 활용해 기존과 같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까지는 수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체제 활용에 대해 대부분의 기업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현재로선 대체 생산을 통한 완성품의 품질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시험 생산 등 결과에 대해서도 소요 시기 등을 예단할 수 없지만 품질 검증에만 최소 6개월가량이 걸릴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범국가적 차원의 비상협력기구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과 여야 대표는 오늘(19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자유무역 질서에 위배되는 부당한 경제 보복”이라며 “일본 정부는 조치를 즉시 철회하고, 외교적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18일) 산업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반도체 R&D(연구개발) 분야 근로자들에 대한 주52시간 근무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국가 차원에서도 이번 수출 규제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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