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 자욱한 ‘너구리 골목’…진정한 소통 공간 만들기에 동참해야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일명 ‘너구리 골목’이라 불리는 여의도 증권가의 흡연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 문제가 되는 너구리 골목은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부터 한화투자증권, NH투자증권, KTB투자증권, 유화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증권사 건물이 나란히 서있는 약 200m 남짓 되는 거리를 말한다.

이 골목은 인근 직장인들의 휴식공간이자 소통의 장소로 늘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점심시간은 물론이고 출퇴근시간까지 하루 종일 담배연기가 자욱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평일 점심시간대에 비흡연자와 어린이들은 이곳을 지나다니기 힘들다는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여의도 금융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구역의 흡연 문제에 대한 대책을 고심해왔다. 골목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야 된다는 목소리와 골목 내 흡연구역을 명확히 지정해 거리 전체가 담배연기에 뒤덮히는 것을 막아야 된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금융감독원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 구역 인근 증권사 사장들에게 ‘담배 연기 없는 거리 만들기’에 적극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 권희백 한화투자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등에게 임직원들이 거리에서 흡연하는 것을 자제할 수 있도록 하고 별도의 흡연 부스를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직접 부탁하기도 했다.

또한 이곳이 사유지라는 이유로 흡연 단속에 난색을 표하던 영등포구청도 지난해 말 ‘서울시 영등포구 금연구역 지정 및 간접흡연 피해방지 조례’를 개정하고 해당 구역에서의 흡연 단속과 금연구역 지정을 검토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일명 ‘너구리 골목’이라 불리는 여의도 증권가 골목. / 사진=고병훈 기자

건축법에 따르면 공개공지와 대형건축물(연면적 5000㎡이상)이 속한 대지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으며, 땅 소유주는 ‘공개공지 등 금연구역 지정신청서’와 소유자 1/3 이상이 참여한 ‘금연구역 지정동의서’, 해당 공개공지 등 도면에 관한 서류 등을 제출해야 한다.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공개공지 또는 사유지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될 경우 흡연자는 과태료 1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흡연 단속과 ‘사유지에 대한 금연구역 지정’ 법이 마련됐음에도 너구리 골목의 풍경은 법 개정 전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담배 연기 없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조례를 개정했지만 구청에서 단속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금연구역 지정에 앞서 흡연구역 마련이 우선시돼야 하는데, 주변 금융회사들의 협조 없이는 흡연구역을 마련하는 것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증권사 직원 A씨는 “건물 내에서는 흡연 자체가 불가능하고, 외부에는 제대로 된 흡연구역이 없다보니 결국 이곳에서 흡연을 하게 된다”면서 “흡연구역이 명확히 지정된다면 골목 전체가 지금처럼 흡연 골목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고병훈 기자

또 다른 증권사 직원 B씨는 “이 골목은 담배 연기도 문제지만 담배꽁초와 일회용 플라스틱 컵, 쓰레기 등도 심각한 문제”라며 “비흡연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골목인 만큼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너구리 골목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와 인근 커피숍에서 판매된 일회용 플라스틱 컵, 각종 음료캔 등이 매시간 나뒹굴고 있다. 쓰레기통이 곳곳에 배치돼 있긴 하지만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국이다.

너구리 골목이 여의도 증권맨들의 ‘넓고 쾌적한 소통 공간’으로 오랜 시간 남아있기 위해선 무엇보다 제대로 된 흡연구역 설치가 시급해 보인다. 물론 이곳을 청정구역으로 만들기 위한 증권맨들의 자발적 노력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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