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소비자신용법’ 제정 추진…도덕적 해이·역차별 우려

경제부 고병훈 기자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앞으로 채권이 5년 동안 연체돼 소멸시효를 맞이해도 10년으로 자동 연장되는 관행이 사라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채무자는 5년이 지나면 대출 채권을 갚을 의무가 사라지게 된다.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자 일각에서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정부의 연이은 채무 탕감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만 바보 만드는 정책’, ‘이러면 누가 빚을 제대로 갚겠냐’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8일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5년이 지난 대출채권 소멸시효 연장과 채권추심 발행 등의 내용을 담은 ‘소비자신용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우선 이르면 오는 2021년부터 채권이 5년간 연체돼 민법상 소멸시효를 맞이해도 법원 지급명령으로 그 시효가 10년으로 자동 연장되는 관행이 사라지게 된다.

현재 민법상 채권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법원의 지급명령만 있으면 시효가 자동으로 10년으로 연장된다. 금융회사들은 소멸시효가 다가오기 전에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해서 돈 갚을 의무를 10년으로 연장, 변제 의무기간을 늘려왔다.

또한 현재 우리 금융권에는 채무자 재기지원보다는 과도한 추심압박을 통한 회수를 극대화하는 관행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금융권은 연체가 통상 30일 이상 지속되면 기한이익을 상실하게 해 원리금 전체의 일시 상환을 요구하거나, 회수되지 않은 보유채권의 소멸시효를 일률적·반복적으로 연장하고 있다.

이명순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연체기간이 길어질수록 채무자 상환능력은 급격히 감소하지만 추심강도와 상환부담을 계속 증가하는 문제가 있다”며 “이는 채무자 재기지원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채권회수율 개선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위는 금융권의 관행적 소멸시효 연장을 막고, 회수가능성 판단에 기초한 ‘소멸시효 완성관행 확산’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즉 금융사가 연장해오던 5년이 지난 대출채권 소멸시효의 경우, 소득·재산이 있는데도 갚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될 채무자를 제외하고는 소멸시효를 5년으로만 확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권을 비롯한 업계에서는 도덕적 해이 문제와 형평성 등을 지적하며 오히려 채무자의 상환 의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의 취지는 이해를 하지만 ‘5년만 버티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돌려받지 못하는 채권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또 꾸준히 빚을 갚아나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이명순 국장은 “5년이 지나면 대출채권을 다 소멸시키라는 것이 아니라 금융권에 회수가능성 등을 따져보고 소멸시효 연장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라며 “이 제도개선이 채권자에게 반드시 불리한 결과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금융위는 내년 1분기 TF 논의결과를 토대로 ‘금융권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및 소비자신용법 제정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내년 하반기엔 현행 대출계약 체결단계를 규율한 ‘대부업법’을 연체발생 이후 추심, 채무조정, 상환, 소멸시효완성 등 대출 관련 일체행위를 포괄하는 ‘소비자신용법’으로 확대 개편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