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기업 총수로서 할 수 있는 일 해달라” 이례적 당부
이재용 부회장 “심려 끼쳐 송구”…2·3차 심리 후 최종 결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파기환송심 1차 공판을 마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 공여 등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이 40여분 만에 첫 공판을 끝냈다. 이 부회장 측은 앞서 대법원이 추가로 인정한 뇌물 혐의에 대해 유무죄 여부를 다투지 않고, 양형을 줄이는 데만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부회장 변호인은 25일 오전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대법 판결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달리 다투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주로 양형에 대해 변소할 생각이며 사안 전체와 양형에 관련된 3명 정도의 증인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 값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등 대법원이 추가로 인정한 뇌물 등의 유무죄보다는 양형 심리에 집중해 집행유예 판결을 받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8월 29일 뇌물 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상고심에서 2심과 달리 말 3마리 값과 영재센터 후원금 등 약 50억원을 모두 뇌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날 재판부는 심리에 앞서 “이 사건 수사와 재판을 위해 많은 국가적 자원이 투입됐다”며 “다음의 몇 가지 점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이 이 사건 같은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첫째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효과적인 기업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며 “삼성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고 있었다면 이 법정에 앉아있는 피고인들뿐 아니라 이 사건에서의 박 전 대통령, 최씨도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둘째 이 사건은 대기업집단, 재벌 총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며 “국내외 각종 도전이 엄중한 시기에 총수가 재벌체제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부회장은 인정신문에서 자신의 이름과 주소지를 밝히고 직업을 묻자 “삼성전자 부회장”이라고 답했다. 법정에 출석하는 과정에서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지 600여일 만에 법정에 선 심정을 묻자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파기환송심의 최대 쟁점은 말 3마리 값과 영재센터 후원금 등 약 50억원을 뇌물로 확정할지 여부다. 대법원의 선고로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는 말 사용이익(36억원)까지 더해 86억원으로 늘어났다. 현행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됐던 ‘승계작업’ 관련 입증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에서 확보된 자료를 증거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은 승계작업을 매우 포괄적으로 인정했고 부정한 청탁도 포괄적으로 인정해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며 “양형이 핵심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형량과 관련해 이 부회장 변호인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근 대법원 확정판결 등도 증거로 신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정농단 사건에 함께 연루된 신 회장은 70억원의 뇌물 공여 혐의 등으로 기소된 뒤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받았다.

이에 법조계에선 신 회장 사건 판결과의 형평성을 고려하게 되면 이 부회장 또한 실형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이 부회장이 제공한 뇌물이 정치권력에 의한 수동적 뇌물인 점, 앞서 그가 횡령액을 변제한 점과 1년 간의 수감 생활을 한 점 등은 작량감경 요소가 될 수 있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를 반영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판부는 내달 22일 열리는 2차 기일에 유무죄 관련 부분을 정리하고, 12월 6일 열리는 3차 공판기일에 양형 관련 양측 주장을 들을 계획이다. 선고는 이르면 올해 내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여론은 대내외 산업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삼성의 ‘총수 부재’가 국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이 부회장을 구속해선 안 된다는 동정 여론이 우세하다.

최근 빅데이터뉴스 조사에 따르면 지난 7월 24일부터 이달 23일까지 3개월간 블로그·카페·커뮤니티 등 개인 의견 피력이 가능한 9개 채널을 대상으로 여론을 빅데이터 분석한 결과 총 3만1222명 가운데 55.7%(1만7,391명)가 이 부회장에 대해 긍정 의견을 피력했다. 부정적인 의견은 44.3%(1만3,831명)였다.

파기환송심 재판부 또한 이 부회장에게 “심리 기간 중에도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길 바란다”며 기업 총수로서 그의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대법원 판결 직후 논평을 내 “대법원의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이번 판결로 인한 삼성의 경영활동 위축은 개별기업을 넘어 한국경제에 크나큰 악영향을 더하지 않을까 우려돼 향후 사법부가 이러한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피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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