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편슬기 기자] '국위선양'급의 선풍적 인기를 끄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작품이 있다. 굳이 꼽지 않아도 이미 짐작했겠지만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다.
케데헌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매력적인 캐릭터, 몰입도를 높이는 직관적이고 명확한 서사 등이 있지만 가장 큰 공은 바로 '한국'이라는 배경 그 자체다. 김밥과 컵라면, 목욕탕에 주차금지 표지판까지 익숙한 문화가 한국 시청자를 비롯해 글로벌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우리말 더빙도 빼놓을 수 없다. 넷플릭스 관계자 발에 의하면 케데헌 흥행에 있어 우리말 더빙이 큰 몫을 차지했을 만큼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는 전언이다.
이에 넷플릭스는 11일 '넷플릭스 해외 콘텐츠 한국어 더빙 이야기' 자리를 마련, 상암에 위치한 픽셀로직코리아의 스튜디오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콘텐츠가 한국어 더빙을 통해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는지와 그 영향력에 대해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 "더빙? 어린애들이 보는 거 아냐?" 아닙니다
아직까지 우리말 더빙에 대한 국내 인식은 약한 편에 속한다. 어린애들이 보는 것 내지는 과장된 연기와 어색한 목소리 등이라는 표현으로 더빙 자체를 낮잡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넷플릭스와 픽셀로직코리아 그리고 국내 성우진들은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 바쁘게 뛰어다니며 땀을 흘리고 있다.
최민디 넷플릭스 더빙 매니저는 "더빙이라고 하면 어린이용 콘텐츠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막을 읽을 수 없는 고령층, 시각 장애인, 운동이나 요리를 하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멀티 태스커들, 심지어 자녀 교육용으로 더빙판을 애용하는 해외 한인층 등 더빙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필요가 더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셈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0년 넘게 '우리말 더빙' 콘텐츠를 꾸준히 선보이면서 실제로 더빙에 대한 편견은 조금씩이나마 해소되고 있다. 더빙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우리말 더빙 콘텐츠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김민수 픽셀로직코리아 디렉터는 "최근 더빙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콘텐츠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더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에 성우의 캐스팅을 다양화하거나 장르에 맞는 특별한 번역가를 기용하기도 하고, 팬들의 반응을 분석해서 성우 캐스팅에 반영하는것도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한 (더빙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도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 "셀린과의 대치 장면 힘들었다" 성우들이 밝힌 명장면
이날은 특별히 케데헌에서 주인공 루미 역을 맡은 신나리 성우와 진우 역을 맡은 민승우 성우도 함께 자리했다. 케데헌을 통해 더빙의 흥행을 이끌어낸 주역인 만큼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케데헌에서 루미를 연기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신나리 성우는 케데헌 도입부 장면을 꼽았다. 콘서트 무대에 서기 위해 전용기를 타고 콘서트장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가장 즐겁게 작업했다는 후문이다. 평범한 소녀들의 얼굴을 했다가 헌터로 변해 악귀들을 물리치고, 반파된 비행기에서 멋지게 하강하는 모습은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 그 자체다.
반면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으로는 스승이자 부모와 같은 셀린과의 대치 장면을 꼽았다. 신나리 성우는 "모든 일들이 절정에 치닫는 장면인데 줄곧 루미는 자신에게 악귀의 문양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타의에 의해 드러나게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 장면에서 루미가 괴로운 반면 해방감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후련한 동시에 삶을 체념하며 셀린에게 처분을 맡기는,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는 장면. 루미가 안타까운 만큼 더 잘 표현해주고 싶었고 어려웠던 만큼 기억에 남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민승우 성우의 경우 "상투적인 답변일 수 있겠지만 정말 많은 장면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루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 놓는 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진우가 빌런임에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보는 이들로 하여금 연민과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키는 면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더빙판' 예쁘게 봐줬으면
이날 행사에서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더빙판'을 열린 마음으로 예쁘게 봐달라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부 시청자들에 의한 더빙판 멸시가 지속돼 왔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석 픽셀로직코리아 PD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 속에 단단한 문을 걸어 잠그고 계신 것 같다. 더빙은 어색하다며 볼 시도도 안하는 게 느껴진다"며 "그런데 조금만 문을 열고 진심으로 느낀다면 원작과는 다른 재미, 한국 정서에 맞는 여러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신나리 성우는 "케데헌을 더빙판으로 즐겨 본 시청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작품을 볼 때 한국어 더빙은 어떻게 돼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준다면 너무 기쁠 것 같다. 성우로서도 더 큰 힘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앞으로 더 좋은 연기로 보답할 수 있을 거 같다.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승우 성우는 "연기가 과장됐다, 어색하다, 몰입을 방해한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노력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정말 적합한 한식 정찬이 나왔다. 이걸 계기로 더 좋은 선례가 생겨 '한국어로 듣기'로 더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와 같은 노력 반복하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