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박순관 대표가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로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사진=뉴시스
아리셀 박순관 대표가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로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6월 24일 23명의 사상자를 낸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와 관련해 박순관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단순히 형량의 높고 낮음을 넘어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래 '최초의 의미 있는 강력 처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재판부가 "합의 시 선처를 기대하는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산업재해 악순환 차단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이례적인 고강도 형량이 선고된 배경과 이번 판결이 드러낸 한국 산업의 불안한 실체, 그리고 고질적인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주목된다.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는 이번 화재 참사를 '예고된 인재'로 단정했다. 재판부는 리튬 배터리의 폭발 위험성이 널리 알려졌고 아리셀에서 이미 여러 차례 유사 폭발 사고를 경험했음에도 피고인들이 생산량을 맞추는 데 급급해 아무런 대비 없이 공정을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생산량 증대를 위해 불법 파견 근로자들을 투입하고 이들에 대한 안전 교육이나 소방 훈련이 내실 없이 이뤄진 점, 파견 근로자들이 평소 드나들 수 없도록 보안 장치가 된 곳에 비상구 통로가 위치했다는 점을 피해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박순관 대표가 재판 과정에서 '명목상 대표이사'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박 대표가 아리셀 설립 초기부터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해온 '사업 총괄 책임자'라고 판단하며 책임 회피 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기업의 총체적인 안전 관리 부실과 경영 책임자의 명백한 귀책 사유가 결국 중대재해처벌법 최고 형량의 배경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공장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의 1심선고가 열린 23일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수원지법 형사14부(고권홍 부장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아리셀 박순관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사진=뉴시스
공장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박순관 대표의 1심선고가 열린 23일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수원지법 형사14부(고권홍 부장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아리셀 박순관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사진=뉴시스

이례적인 고강도 형량의 배경에는 재판부의 이러한 판단뿐만 아니라 산업재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업가는 평소 기업 운영에 있어 근로자의 안전·보건에는 비용을 최소화해 이윤을 극대화하다가 막상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유족은 생계유지를 위해 선택의 여지없이 합의에 이르게 돼 기업가가 선처를 받게 되는 선례가 많다"고 강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피고인들이 유족과 합의했다는 사정은 제한적으로만 양형 사유로 고려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산업재해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며 합의를 통한 면책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처럼 전례 없는 고강도 처벌과 사법부의 강력한 경고가 이어지자 산업 현장에서는 이번 판결의 파급력을 예의주시하며 경영의 패러다임 변화를 준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아리셀 화재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산업 현장에 만연한 불안한 실태와 고질적인 '위험의 외주화' 관행을 드러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사망자 23명 중 상당수가 안전 교육이 미비했던 비숙련 외국인·일용직 파견 근로자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입증한다.

그들이 고용 불안정 속에서 위험한 공정에 투입되었고, 사고 발생 시 비상구조차 막혀 탈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은 기업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위험한 작업을 협력업체에 전가하고 안전 책임마저 외면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결국 아리셀 판결은 기업 경영진이 '안전은 비용'이라는 인식을 버리고 '안전은 생존이자 최우선 가치'라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확립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담고 있다. 재판부의 준엄한 판결과 이에 따른 산업 현장의 자성 움직임은 시작에 불과하다.

기업은 스스로 모든 근로자의 생명 안전을 최우선하는 문화와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정부 역시 취약한 노동 계층의 안전망을 견고히 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월요신문=김윤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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