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금이 은행 왼쪽 주머니에서 나와 다시 오른쪽 주머니로 들어가는 조치 행해”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사진=키코 공동대책 위원회

[월요신문=박은경 기자] 키코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은행들이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분쟁조정안 결정을 미루는 것과 관련해 “감독원의 조정안마저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며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11일 키코공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은행들이 분쟁조정안 결정을 두 차례나 미루는 것에 대해 “은행들은 언제까지 여러 핑계를 대며 미루기만 할 것인가?”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1차 연장 때는 은행이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며 공대위 측이 은행의 결정에 필요한 시간만큼 기다려줬음에도 은행 측은 여전히 키코 피해 배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앞서 지난 7일은 은행들이 제시한 분쟁조정안 2차 수락시한 마지막 날 이었다. 우리은행만 키코 분조위 조장안을 수락하겠다며 배상에 나섰을 뿐, 마저지 은행들은 여전히 분쟁조정에 대한 결정을 미루며 배상을 망설이고 있다. 금감원으로부터 키코 분쟁조정안을 받은 은행 6곳은 신한·우리·KDB산업·KEB하나·DGB대구·씨티은행이다.

키코 공대위는 “금감원 분쟁조정을 통해 은행의 불법판매가 밝혀진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은행들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드렸다.

공대위는 이어 “피해기업들은 분쟁조정안이 부족하지만 상생협력 차원에서 감독원의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였는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은행들의 행태는 파렴치함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또 “돈에 눈이 멀어 키코 상품의 사기판매로, 잘나가던 우리의 중소.중견 수출기업들을 몰살시켜 산업구조를 왜곡시켜 놓더니, 이제는 감독원의 조정안마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며 힐난했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당시 키코 사태로 기업 738개사가 3조2247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으며 919개의 중소기업이 손해 또는 도산됐고 우량 중견기업들이 무너졌다. 

‘키코(knock-in, knock-out)’는 2007년부터 국내 수출 기업에 집중적으로 판매된 파생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상품이다. 그러나 당시 은행들은 기업들에 키코를 판매하면서 달러의 가격이 하락해도 어느 정도 선에서 보장해 주겠다며 불완전판매를 일삼았다.  

특히 공대위 측은 “은행들이 채권확보를 위해 피해기업들에게 당국의 정책의도에 반하는 여러 가지 뻔뻔한 조치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상금이 은행의 왼쪽 주머니에서 나와서 다시 오른쪽 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을 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은행이 자사의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입은 기업에 그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하고서, 은행이 이를 다시 뺏어간다는 것이다.

실례로 피해 기업 ‘일성’은 기업은 해마다 2000억원 이상의 매출울 올렸지만 키코 사태로 피해규모가 커지면서 채무가 1200억원으로 불어나 법정관리를 받게 됐고, 채권단이 경영에 합류하며 지금의 ‘일성하이스코’가 됐다.

이 과정에서 직접적 피해자였던 창업주는 지분을 박탈당하고 그 자리를 ‘유암코’가 채웠다. 유암코는 국내 최대 규모의 부실채권(NPL) 투자회사로, 신한·국민·하나·기업·우리·농협은행이 출자해 2009년 10월 설립됐다.

원래 창업주는 회사 지분의 70%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키코 사태로 인해 5%에 불과하며 현재는 은행권이 설립한 채권투자회사인 유암코가 9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일성’이 받은 키코 사태의 피해 배상금을 ‘일성하이스코’가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은행이 피해 기업에 손해배상을 하고선, 유암코를 통해 손해배상금을 다시 회수하는 상황이 된다.

이에 공대위 측은 “(은행이)책임을 회피하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은행협의체에 나와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며 “만약 은행들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려 한다면, 우리 900여 키코 피해 기업들과 공대위는 우리의 모든 것을 걸고 응징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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