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예능이 아닌 방송 콘텐츠를 '본방사수'하기 위해 기다려본 일은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저녁 8시 20분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를 보기 위해 TV앞·유튜브 생중계 채널에 모여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뜨거운 관심 속 스트레이트 시청률은 17.2%를 기록했다. 지난주 9일 시청률(2.4%) 대비 무려 7배나 오른 이유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아내 김건희씨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 때문이었다.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기자 이명수씨와 김 씨는 지난해 8월 2일부터 6개월여에 걸쳐 무려 7시간이 넘는 통화를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가 이 통화 녹취록을 MBC 스트레이트 쪽에 넘긴 것이다.

이를 두고 여·야의 반응은 극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알권리를 외치며 녹취록 반영을 사수했다. 국민의힘은 녹취록 공개는 사생활 침해일 뿐 아니라 정치공작이라며 방송 가처분 신청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원했던 것은 비단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는 일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세계에 어울리는 처세를 아직 익히지 못한 김 씨의 발언들이 논란이 될 만한 것이길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 논란을 넘어 어쩌면 '김건희 게이트'로 발전해 윤 후보의 지지율이 다시 하락하는 시나리오를 바랬을 것이다.

기대감에 가득 찬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시한폭탄을 끌어안은 듯 했을 것이다. 당사자인 김 씨가 정작 통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 사전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을 해야 했으므로 14일 MBC를 방문했다. 녹취록 공개는 선거에 관여하는 행위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진보단체와 몸싸움이 벌어졌다. 윤 후보도 그저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을 택했다.

녹취록 공개 순간이 다가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측 모두에 동일했다. '미지(未知)'는 기대감과 불안감을 한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다.

김 씨와 이 씨는 서로를 '동생'·'누님'이라고 부르며 친근했다. 김 씨는 이 씨에게 윤 후보의 캠프 관련 일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강의를 해준 그에게 105만원의 돈을 건네기도 했다.

김 씨는 '쥴리' 의혹에 억울함과 함께 결백함을 당당하게 주장했다. 김 씨는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떨 듯 이 씨에게 정치 사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밝혔다.

김 씨가 유력 대선후보의 아내라는 점은 김 씨의 발언에 무게를 더한다. 게다가 지금은 대선 정국이다. 그의 발언을 그저 일반 유권자들이 가족·친구와 정치 얘기를 하는 정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 씨의 발언이 실제로 무슨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했는가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김 씨 녹취록을 두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 '판도라 상자가 아니었다'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대선 정국을 휩쓸 '김건희 게이트'를 원했을 더불어민주당은 아주 머쓱해졌다. 본방사수를 격려하며 시청자를 끌어모아 김 씨의 해명 방송을 보게 한 꼴만 됐다.

애써 김 씨의 미투 발언을 부각하려 하지만 과거 민주당 측의 '피해 호소인' 발언이 재조명돼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김 씨를 최순실과 엮으려는 시도도 무리수가 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대통령 부인을 공적 존재라고 한 적 있었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비밀리에 대통령 일을 맡았던 최 씨와 대국민 사과를 하며 국민 앞에 스스로를 내보인 김 씨가 같을 리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주먹을 맞아가며 김 씨 녹취록을 무마하려 했던 국민의힘 측은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안도감에 일단은 한시름 놓고 있는 중이다. 물론 '서울의소리' 측이 7시간짜리 녹취록을 전부 공개하겠다고 나섰기에 아직 김 씨 녹취록 사건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까지 헤쳐나가야 할 것들이 많다. 이 후보의 '형수 욕설'·'대장동 게이트'·'변호사비 대납'까지 다 굵직하고 어려운 것들뿐이다. 김 씨의 녹취록 논란을 키우는 것이 정말 선거운동에 도움이 되는 행보일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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